내 마음 상태를 나타내주는 감정은 말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얼굴 표정이나 몸짓으로도 드러나는데, 일반적으로 말로 표현되는 감정과 비언어적인 것으로 표현되는 감정이 서로 다를 때, 사람들은 비언어적인 것으로 표현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족관계 속에서 배우자 또는 자녀의 얼굴 표정이나 몸짓으로 드러나는 비언어적인 표현을 통해 식구들의 기분을 알아차릴 때가 많습니다. “나 화났어”라고 말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인상을 쓰거나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릴 때 우리는 상대방이 화가 많이 난 상태라는 걸 더 잘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나 자신이 어떤 감정 특히 부정적 감정을 단순히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부정적 감정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는 겁니다. 인상을 쓰고서 “나 화 안 났다니까”라고 한다면 그 말을 믿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말만 그렇게 했을 뿐 그의 얼굴 표정과 목소리 톤을 보면 누가 봐도 화가 났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말은 ‘예스’인데 표정이 ‘노우’이거나 말은 ‘노우’인데 표정이 ‘예스’일 때, 이런 일도 벌어질 수 있어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얼굴을 붉히며 대화를 하고 있는데 초등학생 손녀가 학교에서 돌아온 겁니다. 손녀가 할머니에게 “할머니, 엄마랑 싸웠지?”라고 물었는데, 할머니가 자신의 얼굴 표정과는 다르게 “아니, 얘가 지금 무슨 뚱딴지같은 말을 하는 거야. 할머니가 싸우긴 왜 싸워?”라고 한다면 손녀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할머니와 엄마의 표정을 보면 두 사람이 싸운 것이 분명한데 싸우지 않았다고 하니까, 손녀는 점점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갖지 못할 겁니다. 마치 신호등에 초록불과 빨간불이 동시에 들어왔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나 할까요?
이를테면 학교 수업 중 선생님이 질문했을 때 손녀는 설령 답을 알아도 손을 들고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할머니가 자신의 판단(할머니와 엄마가 다투었다는)이 잘못된 것이라고 야단쳤던 경험이 여러 번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도 내 대답이 틀렸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정답을 알아도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결국 손녀는 성장하면서 자신감 없는 성인으로 자랄 가능성이 크겠지요.
얼굴 표정과 관련하여 이런 실험 결과도 있어요. 아이들과 노인들 두 그룹으로 나눈 다음에 각각의 그룹에 희로애락의 표정을 짓게 한 후 그 표정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그런 다음 대학생들이 희로애락의 감정을 표현한 각각의 사진들을 고르게 했습니다.
이를테면 아이들을 대상으로 희로애락의 표정을 짓게 한 후 찍은 사진에서는 즐거워하는 표정이나 슬픈 표정 혹은 화난 표정을 쉽게 가려낼 수 있었는데,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희로애락의 표정을 짓게 한 후 찍은 사진에서는 이 얼굴 표정이 즐거운 것인지 아니면 슬픈 것이나 화가 난 것인지 가려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어르신들의 경우 살아오면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 환경이나 상황에서 살아왔기에, 무조건 감정들을 억누르기만 하다 보니 희로애락의 표정이 한두 가지 표정으로 굳어졌다고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손자와 눈을 맞추며 안아주려고 하는데, 어린 손자는 할아버지의 표정을 보고 무서워서 안기지 않으려는 황당한 일도 벌어지지요.
이처럼 관계 속에서 혹은 대화 중 표정이나 몸짓은 중요합니다. 더욱이 말로 표현하는 메시지와 표정이나 몸짓으로 보내는 메시지가 서로 다르면,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것은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겠습니다.
-'신중년 신노년의 마음공부' 저자 강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