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11.27 10:01

인류가 삼삼오오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유유상종이란 말. 이래저래 인간과 비슷해져 가고 있는 로봇 세상의 초입인 지금도 유유상종은 그대로다. 허, 참 그런데 말이다, 나이가 한 살 먹어감에 따라 사람이 서로 비슷해져 감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춥든 덥든, 추웠다 덥다가를 되풀이하든, 그 어느 나라든 또한 마찬가지. 그렇게 몇 년도란 숫자, 내가 지구를 몇몇 바퀴 돌았다는 숫자가, 또 한 개 두 개 더해지는 일이, 그래서 나이를 먹는 일이란 서로 무엇인가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허, 또 요즈음이다.

비슷한 곳에서, 또 비슷한 그때마다, 비슷한 자세로 잠드는, 그래서 배운 것이 비슷하기에 표정이든 몸짓이든 버릇이든 비슷해지는, 아니 무엇이든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다. 어쩌면, 인간이 지구에 존립하기 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기에, 앞 사람들이 해왔듯, 우리는 서로 비슷해지려는 것 아닐까?

그러나 비슷해지려는 것과 다르게, 우리는 무엇인가 하나는 다르다며 우기고 싶어 한다. 나만의 것이 있다며 큰소리치는 것이야, 누구라도 그 누구에게 그 어떤 말로 댓글을 달 수 있으랴. '나도 그러하니 너도 그러해라, 아니면 네가 저러하니 나는 이러하다'라며 서로 모른 채 살아가는 수밖에.

비슷한 것을 쫓지만, 그러나 같은 것을 보면 서로 외면하는 사람, 바로 이웃, 우리네들이다. 평등해지고 싶은 욕심, 그러다가 더욱 자신이 먼저이고 싶은 욕심이 마지막이길 바라는 우리네들. 그래서 그런가? 그 욕심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가. 사람을 더 살게 하는가. 막상 같아지는 순간 서로 누르려는 것은 생명을 가진 생물체의 본능일까? 그런 것 같다, 나처럼. 욕심 이외 다음 것이란 희생인 바, 언감생심 나는 아니다. 그래 희생이란 나와 거리가 멀어야 하는 것. 그래서 나를 위한 욕심만이 나를 있게 한 것을 어찌 모른 체하랴.

비슷해진 사람들끼리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며, 이제 막 비슷해지려는 사람들을 견제하는 일이 아마 사회라는 집단을 만들어온 힘이라는 생각에 고개 숙인다. 그래서 내가 그랬듯, 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 거래하며 산다. 이제 곧 가까워져 같아질 텐데, 맞다, 약간은 서로 다르다고 믿고, 하나가 비슷한 것을 만나 새로운 하나가 되어 그 다른 것을 함께 공유하는 것 아니냐는 말, 맞을 성싶다. 그러한 새로운 하나들이 다시 커져 또 다른 하나가 되는 우리네 욕망은 생존을 위한 면죄부를 스스로 만드는 것 아니냐는 것. 이렇듯 살아있기 위해 서로 비슷하게 손을 내미는 또한 우리네 들이다. 물론 맞다, 위대한 변명의 하나라 믿고 싶기에.

그런데, 나이 하나를 더 어깨에 멜 때마다 비슷한 변명들이 점점 초라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어찌 된 일일까? 위대한 느낌이라고 스스로 키워왔던 변명이 지나고 나, 그래 지금은 초라해져 있음을 어찌 부정할 수 있을까. 그 초라해진 것을 만지며, 나이 무게만큼 점점 아파져 오는 곳을 하나씩 더 느끼며, 그 하나가 더욱 커진 순간을 몇 번 견디며, 그래도 존재하고 있구나 확인하는 지금, 그래 비슷하거나 위대하거나 초라하거나 결국 또 지금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럴까, 그래서 어떠한 변명이라도 지금만 남아있는 것일까.

그러나 아닐 때가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하나의 새로움과 함께 사라지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말이다. 그것도 보이지 않는, 알려지지 않은 새로움이 만들어졌다가 그 순간 사라지고 있는 것, 이러함이 이 지구를 지켜온 우리네 삶들이 아닌가. 나도 그러길 바라며 나를 만지고 있어야 하는 일 아닌가.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이란, 새로움이란, 행복이란, 아니 내 어떤 느낌이란 모두 매우 작을 거란 말, 또 맞는 말인 듯하여, 고개를 들어 목을 한 바퀴 더 돌린다.

그래, 틀리지 않는다. 나의 모든 것은 문득 내 목을 돌리는 이 작은 움직임에서 다시 시작되리란 것. 하하, 한 번 옳다고 믿어왔던 것을 그대로 한 번 더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행복인지, 얼마나 맛있는 새로움인지, 하하, 어떻게 언제까지 말해야 할까. 그럴까, 이럴 땐, '변명이란, 그 어느 지금을 그냥 지나쳐왔음이란 말'로 둔갑하는 순간일까. 그래, 지금 이 행복한 순간엔!

어린아이였을 때 한꺼번에 열 몇 살 더 먹었으면 했었고, 청소년 때 어른이 되어 마음대로 해보았으면 했었고, 어른일 때 나이 들면 어쩔까 다짐해 보았고, 더 어른일 때 늙으면, 그다음 또 어른일 때 갑자기 크게 아프면, 그래, 더 어른 되어 늙어 아프면, 아프다 죽으면, 하는 등등의 뭐 한 때 그런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누구나 한번은 저런저런 생각을 하며, 지금을 한 번은 이래이래 지나쳤을 거고, 지나칠 거다.

숨을 일부러 마셔 본다. 다시 뱉어 본다. 그래, 지금만 있다. 지금은 그 언제 적 숨 맛과 비슷함을 느끼니, 그래 됐다. 지금은 보이는 느껴지는 것 모두 또 비슷하니. 비슷하지 않으면, 이미 나는 인간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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