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움직이며 활동하는 우리는 매일 누군가와 상호작용을 하며 살기 때문에 감정이 생겨나지요. 다시 말해 감정은 관계 속에서 어떤 자극이 주어지면 그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으면 기쁜 감정이 솟아나고 비난을 받으면 감정은 위축되기 쉽습니다. 예로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 자녀로부터 “맛있게 먹었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 좋은 감정이 올라옵니다. 하지만 마트 계산대 앞에서 누군가가 내 앞으로 새치기를 한다면 불쾌한 기분이 들 겁니다.
이런 자극들에 대한 반응으로 자녀에게 감사 인사를 받으니 기분이 좋다는 표현을 한다든지 새치기를 한 사람에게 자신의 편치 않은 감정을 표현해서 사과를 받는다면, 감정은 그런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나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그 감정을 표현하면 사그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감정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살아있는 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 때 그 감정을 표현하면 감정은 흘러가고 그래서 사그라지지요. 이런 걸 ‘감정의 법칙’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어떤 관계나 상황 속에서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상담 중에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옛날에는 주로 명절 때만 동네 목욕탕을 가셨는데, 때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게 창피해서 집에서 대충이라도 때를 한 번 밀고 목욕탕에 가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몸의 때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여전히 몸에 그대로 쌓여 있잖아요.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생겨난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서 흘러가지 못하고 마음속에 쌓인 감정은 스스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없어지지 않고 몸에 난 상처처럼 남아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마음의 상처’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관계 속에서 종종 “나 그 사람으로부터 상처받았다”라고 말을 하는데, 마음의 상처란 어떤 감정이 생겼는데 그것을 표현하지 못했을 때나 표현을 하기는 했지만, 그 표현한 감정을 상대방이 온전히 받아주지 않을 때 생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마음속 깊숙이 밀어 넣는 경향이 있는데, 문제는 그 마음의 상처를 알아줄 때까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사례가 있어요. 평상시 건강하시던 80세 할아버지가 고열로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 가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시는 동안 몸의 염증과 고열로 식사도 못 하시고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한 후에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50년 전 슬레이트 공장에서 일하면서 시꺼먼 석면 가루를 몇 년 동안 흡입했고 그것이 폐에 들어갔는데 그 석면 가루가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다가 나이 들어 면역력이 떨어지니까 몸에 염증을 일으켰고, 그 염증이 원인이 되어 열도 나고 기침 가래가 끊이질 않는데 가래가 석면 가루 때문에 시꺼멓다는 겁니다.
참으로 놀랍지요. 50년 전에 폐에 들어간 석면 가루가 이제 와서 할아버지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표현하지 못하고 또, 표현을 했어도 수용 받지 못한 감정인 마음의 상처도 그렇습니다. 슬플 때 슬픔을 표현하면 슬픔이 사라지지만, 표현하지 못한 슬픔과 표현했어도 공감을 받지 못한 슬픔은 50년이 지난 후에라도 우리 자신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겠습니다.
-'신중년 신노년의 마음공부' 저자 강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