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어느 날 저녁, 미용실 간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날이 추워 걸어가기가 힘들기에 차를 태워 달라고 했다. 웬만하면 걸어오라고 하려다 요즘 아내의 위상이 높아져 아내의 말을 수용키로 했다. 오십대 중반으로 가는 마당에 아내의 위치가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 필자보다 우월하다. 언제 회사에서 잘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안정된 직업을 가진 아내가 집안 경제에서 더 큰 버팀목이다. 더구나 아이들 교육과 가사까지 겸하고 있기에 아내의 말에 순응해야만 했다.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집 앞 사거리를 지나고 다음 사거리를 향해 주행 중 갑자기 오른쪽에서 차가 튀어나왔다. 급하게 핸들을 왼쪽으로 꺾으면서 왼쪽에서 주행 중인 차의 오른쪽 앞 뒤, 문짝과 부딪치는 접촉 사고가 났다. 정확히 저녁 7시 8분에 일어난 사고였다. 35년 동안 접촉 사고 한번 없었던 필자는 몹시 당황했다. 필자 앞으로 갑자기 튀어나온 차는 안중에도 없었고 옆 차에 온 신경이 갔다. 다행히 옆 차의 운전사는 다친 곳은 없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접촉 사고의 후유증
이후 보험사에 연락 후 정신을 좀 차린 시점에 사고 원인 제공 차량에 책임을 물으려고 찾으니 차는 이미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몹시 괘씸했다. 본인의 부주의로 차량 두 대가 사고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도 없어 가버린 것이다. 보험사 직원이 현장에 도착하여 블랙박스를 통해 함께 사고를 분석했다. 우선 필자 왼쪽에서 주행 중인 차에 대해선 필자가 100% 과실로 예상되고 다만 필자 앞으로 갑자기 튀어온 차에 대해선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했다.
처음 겪어 본 접촉 사고를 통해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했다. 한편으론 필자나 옆 차 운전사 모두 사고에 따른 신체 이상이 없었던 것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타인의 잘못에 의해 일어난 사고인데 정작 사고 원인 제공자는 사과 한마디 없이 사라진 상황에 대해 매우 화가 났다.
사실 인명 사고가 아닌 단순한 차량 접촉사고라 경찰서 신고 없이 차량 파손에 대해 보험 처리하는 것으로 정리하려 했다. 다치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일을 크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보험사 직원으로부터 사고 원인 제공자에게도 책임을 물릴 수 있다고 파악되어 경찰서 신고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이런 부분에 전혀 지식이 없었기에 보험 회사의 조언에 따라 사고 후 며칠 뒤 경찰서 교통조사계에 신고했다. 경미한 사고이기에 며칠 만에 정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경찰서 조사관 얘기인즉 보다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여 결과는 한두 달 소요 될 것이라 얘기했다. 그렇게 걸리더라도 쌍방 보험사 간 처리를 할 부분이라 크게 개의치 않았다.
사고 후 이틀 뒤 정비공장에 차를 맡긴 후 다음날 차를 인수하러 다시 공장을 방문 했다. 차량 수리비가 360만원 청구됐다. 최대 300만원 예상을 했는데 예상을 훌쩍 넘은 비용에 적잖이 당황했다. 어차피 보험으로 진행되는 부분이기에 정비사에겐 세세히 따지지 않았다. 정비사 얘기인즉슨 모든 비용이 100% 보험 회사에서 지불하는 것이 자차의 경우 일부 비용은 차량 소유자가 지불해야 한다고 하여, 360만원 중 50만원을 필자가 지불했다.
차량 수리 비용이 상대측에서 제시한 가격이 적정한지에 대해 분석할 수 없는 점이 좀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반박도 하고 할 텐데…. 자동차 수리비용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 입장에서 적정한 비용임을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 후 며칠이 지났지만 속상한 기분이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았다. 내 실수가 아닌 타인의 실수로 여러 사람이 피해를 보았고 그러한 피해에 대해 원인 제공자가 사과 한마디 없이 사라진 상황이 안타깝다. 인명사고 없는 단순한 접촉사고이지만 쉽게 분한 마음을 다스릴 수 없는 것이 필자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