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12.07 15:52

(7회)‘내 행동의 숨은 동기’

“나 결혼하고 싶어”, “엄마를 위해 나에게 좋은 사윗감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우리 동생에게 좋은 형부가 될 사람이 나에게 허락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 문장들은 표현만 다르게 했을 뿐 결국 같은 의미인데 뒤의 두 문장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바를 직접 드러내지 않고 에둘러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도 색깔은 좀 다르지만, 그럴듯하게 둘러댈 뿐 자신이 한 행동의 진짜 이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내용인즉 여우가 길을 가다가 담장이 높은 곳에 있는 포도나무를 보고 따먹으려 했으나 자신의 키보다 높은 곳에 달려있어서 따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변 친구들에게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저 포도는 시어서 먹을 수가 없을 거야”라고 이야기를 하고 다녔지요.

독일의 작가 에리히 캐스트너는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를 현대판으로 재구성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여우는 포도 따기에 실패한 후 수없이 노력을 해서 결국 포도를 따는데 성공했지요. 그런데 여우가 포도를 먹어보니 정말로 신맛이었어요. 이 순간 여우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와! 포도가 어쩜 이렇게 달콤할까!”하면서 실제로는 시어서 먹기 힘든 포도를 계속 따먹다가 결국 위궤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 1,2’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진짜 이유나 감정을 숨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물론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기보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과 행동이기 때문에 당연히 거짓말은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우리 중 어떤 누구도 이런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한 마디로 답하기는 쉽지 않지만 마음의 상처들(표현하지 못해서 혹은 표현을 했으나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아서 흘러가지 못하고 마음속에 쌓인 감정)이 우리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어떤 행동을 하게 하는 ‘숨은 동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한번 들어 볼까요? 비만 오면 기분이 좋아지는 한 남편이 있었어요. 이 분은 자영업에 종사하시는데 비만 오면 모든 일손을 멈추고 집에 와서 아내에게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졸라댔지요. 찻집도 비 내리는 걸 잘 볼 수 있는 통유리가 있는 곳을 좋아했어요. 아내는 평소 무뚝뚝한 남편이 불만스럽긴 했지만 한 번씩 비가 오면 이렇게라도 분위기를 내는 덕에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어느 해인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우면산 아래에 있는 아파트들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재난 방송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남편은 아내에게 찻집엘 가자고 졸라댔답니다.

비만 오면 센티해지는 이 남편은 원래부터 분위기를 타는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남편의 이런 행동에는 자신만의 사연, 즉 숨은 동기가 있었습니다. 이 남편은 시골출신인데 초등학교 시절에 맘껏 놀 수가 없었답니다. 이유는 학교에 갔다 오면 아버지가 항상 소를 끌고나가서 소꼴을 먹이라고 일감을 주셨기 때문이지요. 그 어린 시절 다른 친구들은 가방 내팽개치고 노는데, 자신은 소꼴을 먹이러 가는 일이 얼마나 싫었겠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서 아버지에게 일주일 중 하루만이라도 친구들과 놀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했답니다.

그런데 비가 오면 상황이 달라졌지요. 비가 오면 소꼴을 먹이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놀 수 있었던 것이 너무 좋았던 겁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덧 6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건만 비만 오면 왠지 센티해져서 분위기 있는 커피숍을 찾는 겁니다.

이처럼 살아오면서 특별히 어린 시절에 표현하지 못했던 욕구나 감정이 나도 모르게 현재의 내 행동에 숨은 동기로 작용할 수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신중년 신노년의 마음공부' 저자 강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