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세월이란 밥을 많이 먹으면 어떤 줄 아나? 알겠지만, 내 말도 잘 들어봐. 먼저 입술이 언제나 조금 열어져 있게 돼. 이빨도 틈새가 그만큼 벌어지게 되지. 그건 내 뜻이 아니야. 생각날 때마다 다물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어. 세월 지우기 말이야. 하하, 그게 어디 쉽게 되어야지 말이야. 뭔 욕심이 그리 남았는지, 물론 나도 그래.
어디 조금씩 틈이 벌어진 곳, 어찌 입술과 이빨 틈이겠어. 살갗이 쭈글거린다든지, 머리카락 빠진 구멍이라든지, 갈라진 발톱, 뭐 그냥 그래. 더 예를 든다는 건 우리네의 다음 모습을 그리는 것 같아 그만두려네. 그게 다 시간이 흘러간 자국들이라네그려. 다시 와 박히길 바라는바, 뉜들 안 그러겠나.
그러고 보니, 세월이든, 시간이든 색깔이 있다는 걸 말해 두는 것이 좋을 듯하네. 먼저 몇 개 언급해 보세나. 이건 그냥 떠오르는 대로 나열한 것이니 어떤 우선순위는 없지. 살아있는 것 모두 사라지는 순서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는 것과 뭐 비슷하지.
빨간 건, 우리의 뒤를 볼 시간을 주지 않고, 보는 것마다 휘어 감는 재주가 있지. 그때는 무척 즐거운 손짓과 괴성 같은 웃음의 연속, 그래 앞으로만 쏟지. 물론 검은 것도 있네. 언제나 끝나지 않는 실끝을 보고 싶은 듯, 욕심덩이가 꽁꽁 뭉쳐져 있어. 그 실끝이라며 쫓고 쫓아, 사람들 이름을 매다는 재주가 기특해. 하얀 시간도 있다는 걸 믿어 주게. 맨날 혼자만 다녀. 아픈지 배고픈지 슬픈지 느끼지 못하고 멍청하게 돌아만 다녀. 무엇 하나 생각나지 않게 한다니까.
아 참, 내가 한때 좋아했던 하늘색도 있군. 허, 무엇을 좋아한다는 건 뭐 이유가 없어야 하는 법. 코흘리개가 학교에 들어갈 때, 뭐 많은 단어를 알았을까? 위를 보면 하늘, 땅을 보며 땅. 하하 하늘색, 그냥 땅색. 앞, 뒤, 옆, 위 따질 필요 없이 하늘색 계열이 내 색깔이 가끔 되어주곤 했지. 하늘색은 그냥 꿈이야. 꿈만 꾸다가 세상 보고 웃게 한다니까.
눈과 코를 세게 누르며 얼굴을 비비는 잠들려는 사람, 누구나 가지는 시간이겠지만, 그 시간을 우리는 회색 시간이라 부르지. 우리가 눈 감으면 제일 많이 보이는 색이 바로 회색이라는 걸 강조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 세상사 모든 것, 그냥 외면하는 색깔이지.
뭐 다른 색깔도 많이 있겠지만, 그만두려네. 우리 인간은 가급적 많은 색깔의 세월 같은 시간이 있었음을 기억했으면 해. 몇 개 색깔은 더욱 좋았다는 말을 남기며 말일세. 소문에 의하면, 언제 말해도, 같은 시간 색깔 하나쯤은 지금 가지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네그려.
어쩌면 순간마다 우리들은 스스로 자신의 색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일세. 만들어질 때마다 느끼는 새로운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어서이지. 하하, 그러나 그 색을 만들어낸 순간, 그만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지. 어때 재밌지 않은가? 숨 한 번 쉴 때마다 잊으면서도 또 만들고 싶지? 후후, 누군들 안 그렇겠어.
그렇지만 수없이 잊고 잊는 것이 사는 일이었지만, 잊은 것들이란 몸에 덕지덕지 두툼하게도 쌓이고 쌓이지. 쌓일수록 더 가끔은 구름을 보고 싶은 날, 그래서 손을 하늘로 들고 볼 적, 그 쌓인 것들이 '여기 있다'며 손가락 틈새로 번쩍이기도 해. 눈부시게 번쩍거리며 웃지. 그렇게 지난 것들이 웃으면, 문득, '저것이 내 색이다, 지금 보았다'며,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고, 내 손이라며 보는 것이지. 우리는 그것을 평생 흩뿌려 놓은 내 모든 세월의 색깔에 대한 손짓이라고 부르네. 뭐 추억이란 말 가지고 말꼬리 놀이 하지 말라고? 허허, 그러지, 뭐.
세월이란 밥을 먹으며 우리는, 남은 밥그릇을 바라볼 적, 가까운 사람에게 내 세월의 색깔을 자꾸 말해주려 하지. 어떤 경우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때도 많아. 누가 보고 쉽게 느끼도록 말일세. 아니,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기길 바라는 욕심, 이것이 더 맞나? 그래 맞아. 맞다고, 그렇게 무한대의 색깔마다 제 욕심이 또 무한대로 있으니 맞지. 암, 맞지.
허, 그런가? 산다는 것 자체가 욕심인가? 욕심이 있어야 사는 것? 뭐 그도 맞을 것. 이다음 언제 즈음, 욕심이 있거나 없거나 아무렇지도 않을 즈음 말일 세만, 내 세월 색깔은 뭐가 되어 있을까? 하하, 뭐 아무려면 어때! 내 세월 색깔 내가 지우든 말든, 아니 지워지든 말든,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