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12.15 13:41 | 수정 : 2020.12.15 13:46

(8회) ‘우리는 왜 현재를 현재로서 경험하지 못할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럴 상황이 아닌데 화를 버럭 내거나 너무 과장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되지요. 예를 들어 볼까요? 온 가족이 TV 프로그램을 즐겁게 시청하는 중에 k라는 연예인이 나오자, 아버지는 얼른 리모컨을 집어 들더니 채널을 돌려버린 겁니다. 물론 이런 일이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해요.

또는, 집으로 친구를 초대하여 식사 대접을 하면서 구운 김 몇 장 가져와 4등분으로 잘라 접시에 놓았습니다. 그 순간 친구는 “아니, 그냥 온 것으로 먹게 하지 왜 하필 가위로 잘라?”라고 하면서 따지듯 예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누가 봐도 상황에 맞지 않는 반응들인데 왜 이런 반응들을 보인 걸까요? 이 사례에서는 표현해서 풀지 못한 과거의 억눌린 감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소화되지 못하고 마음속에 체한 상태로 남아 있는 묵은 감정들이 이런 행동의 원인을 제공했다고나 할까요?

여기서 체했다는 것은 먹은 음식물이 소화 흡수되지 못했다는 것인데 체하면 더는 음식을 먹을 수가 없지요. 먹으면 또다시 토하고 그런 상태를 계속 반복하기 때문에 이럴 때는 체했던 음식을 다 토해내서 속을 완전히 비워내야 합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체한 상태에서 음식을 먹으면 우리의 미각이 그 음식의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없는 것처럼 과거에 풀지 못하고 마음속에 억눌러버린 감정은 현재를 현재로 경험하지 못하게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우리는 시간적으로는 현재를 살면서 현재를 바라보는 마음의 눈은 과거라는 안경을 쓴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앞의 사례에서 k라는 연예인만 나오면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버리는 아버지에게는 이런 풀어지지 않은 감정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가 동업을 하면서 아버지가 그 친구에게 사기를 당한 겁니다. 그 후로 이분은 불우한 환경 속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었지요. 물론 그 충격으로 이분의 아버지는 정신없이 술을 마셔대며 건강을 잃게 되었고 몇 년 후에 결국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아뿔싸! 그런데 아버지에게 사기를 쳤던 아버지의 친구가 k라는 연예인과 비슷한 외모를 갖고 있었던 겁니다. TV에서 k씨가 나오면 아버지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고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못했던 그 옛날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이 무서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버렸던 겁니다.

두 번째 사례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친구는 1남 4녀 중 세 번째 딸이었습니다. 그 옛날 김이 귀하던 시절 식사 시간에 할머니는 항상 남동생에게는 구운 김 1장을 주셨는데, 손녀딸들에게는 김 1장을 4등분 해서 1/4조각씩 나누어주셨다고 합니다. 이런 할머니의 행동이 이 친구에게는 굉장한 차별로 느껴졌고, 그래서 매번 분노했지만, 그 감정을 누구에게도 표현하지는 않았다고 해요.

이처럼 억누른 감정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현재의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어서 현재를 현재로 경험하지 못하게 합니다. 다시 말해 살아있다는 것은 현재를 사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풀어지지 않은 과거의 감정으로 인해 현재를 맘껏 누릴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속 깊이 억누른 묵은 감정들은 그것이 아무리 오래된 것이라 할지라도 풀어낼 필요가 있지요. 예를 들어 어린 시절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크게 상처를 받았는데 그 상처받은 마음을 풀지 못하고 마음속에 억눌러버린 여아가 있다고 칩시다.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그 선생님과 비슷한 외모나 성격의 직장 상사를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도 선생님으로부터 상처받은 마음이 직장 상사에게 전이되어 그 상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대할 수 없을 겁니다. 혹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OO 씨는 이럴 때 너무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요”라는 피드백을 받아 본 적이 있으신지요?

-'신중년 신노년의 마음공부' 저자 강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