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이제 28년 차 직장인. 94년 입사 때만 하더라도 한 회사에서 이렇게 오래도록 다니리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어느덧 이렇게 세월이 흘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28년 전과 현재의 회사 분위기는 감히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입사 후 가장 필자를 놀라게 했던 것은 임원이 밑에 부하 직원을 일렬로 세워 놓고 질책하면서 발로 부하 직원의 무릎을 냅다 차는 모습이었다. 무슨 조폭 영화에서 조직 보스가 부하 건달들 다루듯 하였다. 그때의 충격이 28년이 지난 현재에도 뇌리에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요즘 상사가 이렇게 행동했다면 아마 대한민국 방송과 신문이 해당 기사로 도배가 되었을 것이다. 부하 직원에게 격한 감정으로 한마디 욕설을 해도 문책당하는 세상이 되었다. 직장 생활하기 딱 좋은 세상이다.
말 나온 김에 ‘라떼는 말이야’에 대해 잠깐 더 설을 풀자. 10여 년 전 일이다. 상사가 아침 8시에 업무 지시를 하고, 돌아서서 1시간이 채 안 되어 지시한 일에 대한 결과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지시한 일이 예상보다 어려움이 있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자 간단한 지시에 대해 시간을 끌고 있냐면서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질책이 10분 이상 이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여차저차 해서 시간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순간 육두문자가 쏟아질 것이 예상되어 시정하겠습니다. 다시 작성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라고 했다. 그제야 상사는 화를 누그러뜨리고 최대한 빨리 보고서를 마무리하라고 한 번 더 다그치고 자리로 돌아갔다.
이런 사례가 비단 필자의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필자와 같은 586세대로서 같은 시대에 직장 생활을 했던 직장인은 어느 정도 공감할 것이다. 이렇게 20여 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해왔다.
몇 년 전 모 항공사 임원이 직원에게 폭언해서 고소당한 기사를 보았다. 속으론 약간 웃음이 나왔다. 보고가 상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물병과 볼펜이 공중으로 왔다 갔다 했던 경우에 비하면 사자성어로 조족지혈이라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조직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기에 이윤이 발생하지 않으면 그 존재의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예 회사의 존립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이윤 추구를 위해 다른 회사보다 앞서가야 하고 앞서가기 위해선 그 조직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을 상사는 강하게 챌린지할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입학 시 학력 수준이 거의 동등한 김 군, 박 군이 있었다. 박 군은 김 군보다 공부를 더 잘해서 더 좋은 대학을 가고 싶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군이 놀 때 같이 놀고 김 군이 영화 보러 갈 때 같이 영화 보러 가면 될까? 김 군이 6시간 잘 때 박 군은 4시간 자야 하고 김 군이 영화 보러 갈 때 박 군은 그 시간에 영어단어 한자라도 더 외어야 김 군보다 더 좋은 성적 나아가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
마찬가지 이치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 전자업체, 예를 들면 소니, 도시바 등과 국내 전자업체 삼성, 엘지를 비교하면 그야말로 대학생과 초등학생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무얼 해도 이길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20여 년의 시간이 흘러 지금은 어떤가? 가전 즉 TV, 핸드폰, 냉장고, 세탁기 등 웬만한 가전은 매출 규모 면에서 일본을 앞질렀다.
20여 년 전 이런 일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그럼 이런 상상하기도 힘든 일을 국내 전자업체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것은 단 하나의 이유, 국내 전자업체 구성원의 땀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니 직원이 8시간 일할 때 삼성, 엘지 직원은 10시간 혹은 12시간 일했다. 소니 직원이 일요일 집에서 편안히 쉴 때, 삼성, 엘지 직원은 출근해서 비지땀을 흘리면서 일했다. 왜? 실력이 뒤지면 동일한 조건에서 견주면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대한민국의 국민성, ‘빨리빨리’란 말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라 생각한다.
세상 이치가 그러하듯 어떤 일에는 항상 명암이 따르기 마련이다. 밝은 면이 있다면 반드시 어두운 면이 있다. 성장하기 위한 노력의 결실로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은 이루었지만 그에 따른 희생도 많았다. 6시 출근 밤 10시 퇴근을 20여 년 하면서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없었고 그 결과로 가족과의 관계가 많이 소원해 졌다. 경제적인 부를 이룩하기 위한 목적이 가족을 위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가족과의 관계 소원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다. 30여 년을 정말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토끼처럼 빠르게 달려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힘도 없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21년은 소의 해다. 30여 년이 지난 시점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면 토끼처럼 살아온 것과 소처럼 살아왔을 때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별로 차이가 없다. 인생은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30여 년을 토끼처럼 살아왔지만 이젠 소처럼 느리지만 천천히 묵묵히 살아가는 삶이 더 좋아 보이는 나이가 되었다. 소처럼 살고픈 신축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