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이 넘어 한글을 배우시던 어느 어르신은 농사 중에 ‘글 농사’가 가장 어렵다며 배움에는 때가 있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맞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나이 때에 해야 할 일이 있지요. 이것을 심리학 용어로는 ‘발달과업’이라고 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시니어들의 발달과업 중 하나는 ‘나 자신과 화해하기’입니다. 우리는 신생아기, 영아기,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성인기 그리고 노년기를 거쳐 마지막 단계인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기가 처음에는 누워있지만, 그다음에는 앉고 설 수 있어야 자연스럽게 뛰게 되는 것처럼 노년기에 ‘나 자신과 화해하기’라는 발달과업을 잘 이루어야 인생의 마무리인 죽음도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눈을 못 감아’라는 식의 말을 하는 것처럼 모든 마음의 근심이 풀어져서 평안해져야 죽음도 평온하게 맞을 수 있을 겁니다. 나아가 우리는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생긴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서로 화해했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화해했을 때 비로소 마음이 파도치듯 요동치지 않고 편안해지는 걸 살면서 한 번쯤은 경험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화해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나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 더 우선 되어야 하는데, 그럼 ‘나 자신과 화해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바로 내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진 감정들을 풀어내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그동안 나를 조정해온 억눌린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고 또 마음의 평화도 찾아오지요.

더욱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응어리진 감정들이 잦아들기는커녕 우리 자신을 더욱더 힘들게 합니다. 왜일까요? 이렇게 비유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명절날 혹은 잔치 준비를 위해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칼에 손을 베었어도 아픈 줄 모르고 계속 일을 할 때가 있지요. 하지만 마지막 정리까지 끝내고 잠자리에 누우면, 그제야 음식 장만을 하면서 베인 손의 통증이 느껴질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먹고살기에 바빠서 아등바등했지만 50, 60대 이후가 되면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고 또 자녀들도 독립해서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생기고 그러다 보니, 그동안 살아오면서 표현하지 못하고 억눌렀던 감정의 응어리들이 자신들을 알아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그제야 들리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연유로 어르신들을 만나 상담을 하다 보면 잡념 때문에 밤새워 뒤척이셨다고들 하시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잡념이라는 것들이 바로 그동안 살아오면서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꾹꾹 눌러둔 감정의 응어리들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노인을 가리켜 ‘이야기 덩어리’라 칭하듯이 노인이 되면 말이 많아지고 또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마음속 응어리들이 자신들을 알아달라고 우리의 의식 주변을 맴돌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손자에게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라느니 손자의 재능이나 계획과 상관없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라고 하신다면 이 반복되는 말들에는 그분만의 사연(억누른 감정이 들어있는 사무친 이야기)이 내포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혹이라도 부모님이나 친구, 그리고 주변 이웃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그만하라고 면박을 주기보다는 공감의 말을 하면서 잘 들어주어야겠습니다.

그럴 때 이야기를 하는 상대방은 맺힌 것이 풀어지는 치유의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과의 화해까지 이루어 갈 수 있겠지요.

이렇듯 노년기의 발달과업 중 하나가 ‘나 자신과 화해하기(내 안에 응어리진 감정들을 풀어내기)’인데, 그렇다면 지금 나 자신과 화해를 이루어나가야 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신중년 신노년의 마음공부' 저자 강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