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가끔 이런 얘기들을 하지요. 드라마가 사랑받고 또 인기가 있어서 너무 좋았는데, 자신이 맡은 역할이 ‘못된 남편’ 혹은 ‘못된 아내’여서 힘들었다고요. 그 말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욕도 먹고 때로는 자기에게 침을 뱉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말인데, 그런 말을 들으면서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답은 그 배우와 배우가 맡은 역할을 혼동하기 때문인데, 어떤 역할이 그 사람 자체는 아니지요. 역할은 그저 역할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역할처럼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나타내는 말인 페르소나는 원래 배우가 배역을 맡기 위해 썼던 탈, 즉 가면을 뜻하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나에게 여러 가지 역할과 지위들이 주어지는데, 이때 내가 맡은 역할과 지위에 충실하다 보면 그 역할을 진짜 나로 착각하기도 하고, 반대로 상대방이 내가 맡은 역할을 진짜 나로 착각해서 벌어지는 갈등들이 꽤 많습니다.
예를 들면 권력의 우위에 있는 자가 행하는 ‘갑질’이 매스컴 상에서 자주 보도가 되고 있습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아래에 속한 자신의 지위를 진짜 자기 자신이라고 동일시를 시켜서 스스로 위축되고 그래서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결국 페르소나는 가정이나 사회 속에서 나에게 기대되는 모습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내가 만든 나의모습이라고 할 수 있죠. 다시 말해 페르소나는 완전100%의 내 모습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서 내가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또 교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니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페르소나와 관련하여 몇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어요. 첫 번째는 어떤 역할이나 지위로 인해 갖게 된 페르소나를 자기 자신과 완전히 일치시켜서 거기에 매몰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어떤 드라마에서 공주 역할을 한 사람이 집에서도 아니면 친구를 만날 때도 자신을 공주 대접해달라고 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 ‘성격’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바로 ‘페르소나’인데, 이건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요? 바로 성격이란 타고난 본래의 모습이라기보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해나가기 위해 각자가 필요해서 만든 나름의 생존방식이라는 겁니다. 물론 성격에는 타고난 면도 있는데, 성격의 그런 점은 특별히 ‘기질’이라는 표현을 쓰지요.
예를 들면 집에 손님이 오셨는데 다섯 살짜리 손녀가 그 손님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고 손님은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이후 그런 일이 반복되면 이 손녀는 ‘인사성이 밝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성이 밝은 성격으로 비칠 겁니다.
마지막으로 페르소나와 그림자의 관계입니다. 페르소나는 내가 남에게 보여주는 모습이잖아요. 그런데 ‘그림자’는 페르소나인 가면 안에 있는 것으로,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열등감이나 상처 같은 것이라고 바꾸어 표현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마더 테레사’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이 분에게 오로지 친절하고 배려 깊은 모습만 있지는 않겠지요. 인간에게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친절하고 배려 깊은 모습만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그림자’가 무엇일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자를 살펴보는 한 가지 방법은 어떻게 해서 친절하고 배려 깊은 모습이 몸에 배었는지 그 계기를 살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면 가정형편이 아주 어려웠던 중학교 때, 도움을 받았던 선생님에게 은혜를 갚는 방법이 선생님처럼 다른 사람을 배려해주고 또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행동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자신을 이해하게 되면, 자신의 또 다른 마음인 분노나 슬픔이 올라올 때 그 마음을 무조건 억누르거나 감추려 하지 않고, 그런 마음이 올라오는 이유를 살펴서 좀 더 성숙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그림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에게서 물러가게 될 겁니다.
-'신중년 신노년의 마음공부' 저자 강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