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무학대사(無學大師) 승탑(僧塔)과 탑비(塔碑)
무학대사(無學大師) (1327-1405)
조선국태조왕사무학대화상(朝鮮國太祖王師無學大和尙)이 공식존칭이며, 경남 삼기 (三岐:합천군 삼가면)출신으로 속성은 박씨이고, 휘는 자초(自初), 법명은 무학(無學), 당호는 계월헌(溪月軒)이다.
1344년(충혜왕 5) 송광사로 출가하였고, 용문산과 금강산 등에서 수도하다가 1353년(공민왕 2) 원나라 연경으로 유학가서 지공을 만났고 이어서 나옹선사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으며 1356년 귀국하여 나옹에게 의발(衣鉢)을 받아 법맥을 잇게 된다.
1376년(우왕 2) 나옹선사가 회암사 중창 회향(준공) 법회를 앞두고 왕명으로 밀양으로 내려가다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자 나옹의 빈자리를 물려받기를 거절하고 자취를 감춘 무학대사는 명산을 두루 주유하며 때를 기다리는 잠행에 들어갔는데 이때 큰 뜻을 품은 무장(武將) 이성계를 만나 왕이 될것이라고 예언을 하게 된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왕사에 책봉되었고,'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전불심인 변지무애 부종수교 홍리보제 도대선사 묘엄존자(大曹溪宗師 禪敎都摠攝 傳拂心印 辯智無碍 扶宗樹敎 弘利普濟 都大禪師 妙嚴尊者)'라는 호를 받았으며, 태조의 명에 따라 회암사에 머물렀다.
태조 이성계의 정신적 스승이자 절친한 친구로 조선 건국과 한양 천도에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던 무학대사는 1405년 금강암에 거처하다가 입적하였으며 태조 이성계는 태종에게 무학대사 승탑과 탑비를 세우도록 하였는데 회암사에 남아있는 이 승탑은 조선조 최고의 걸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탑비는 순조때 파손되어 다시 세운 것이다. 승탑앞에는 쌍사자 석등이 세워져 있는데 이 역시 보기드문 수작이다.
무학대사(無學大師) 승탑(僧塔) (보물 제388호)
8각의 지붕돌은 목조건축을 모방하였으며 추녀끝은 가볍게 들려있는데 끝부분에는 용머리를 새겼다. 지붕 위로는 둥근 보주를 하나 얹었다.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의 무학대사 승탑은 조선조를 통틀어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데 탑비의 기록을 보면 입적 2년후인 1407년에 세웠다고 한다.
무학대사(無學大師) 승탑앞 쌍사자 석등(石燈) (보물 제389호)
석등의 지대석과 하대석이 하나의 돌인데 연꽃잎을 큼직하게 복련으로 새겼다. 중대석 자리의 쌍사자는 토실토실한 모습에 머리칼(갈기)과 꼬리도 복실복실하게 부풀려 귀여운 느낌이며 두 팔을 들어올려 둘이 함께 상대석을 받치고 있다. 상대석의 아랫부분은 큼직한 연꽃잎을 앙련으로 새겼으며 윗면은 평평한 사각으로 마감하여 화사석의 아랫부분을 겸하게 하였다.
화사석(火舍石)은 2개의 석재를 나란히 놓아 가운데 앞뒤로 열린 2개의 공간이 화사창이 되었으며 윗덮개 없이 바로 지붕돌을 덮었는데 지붕돌 처마부분이 바짝 치켜 올려져 멋스럽다. 지붕위에는 둥근 보주 하나를 얹어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폐사지 답사를 처음 시작한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 승탑 앞에 있는 쌍사자 석등과 비슷한 느낌으로 조선초기 석등의 형태로 생각된다.
석등과 승탑 사이에는 큼직한 네모꼴 석상이 있는데 커다란 무늬를 새긴 둥근 모양의 받침돌 하나가 버티고 있는 단순한 구조이다.
무학대사(無學大師) 탑비(塔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
무학대사 출생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의 인연으로 무학대사는 전설처럼 많은 일화를 남긴 스님이다. 대사의 출신지는 경남 합천으로 되어 있으나 충남 서산에서도 무학대사의 출생을 기념하는 비석을 세워 기리고 있으니 그 사연이 궁금하다.
경남 합천 삼기에 살던 무학의 부모는 어느날 해안을 침입한 왜구에게 잡혀가다가 혈투를 벌여 탈출하였으나 부친도 적의 칼에 팔을 다쳐 바다를 표류하다가 서산 간월도 인근에 정착하였으며, 굴을 따고 삿갓을 만들어 파는 등 어렵게 지내던중 관아에서 50냥을 빌려쓰고 갚지 못하여 끌고가려 왔으나 마침 출타중으로 집에 있던 만삭의 부인을 끌고 가다가 길 옆 우물가에서 출산을 하니 그가 무학이다. (즉 서산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원들은 아기를 풀섶으로 덮어놓고 산모를 강제로 데려갔다가 오히려 군수에게 혼이 나고 아기에게 달려가보니 학(鶴)이 아기를 품고 있다가 날아가기에 무학(舞鶴)이라고 지었다는 것이며, 아버지는 부상이 악화되어 사망하고 모친이 아기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하여 충남 서산에서도 무학대사 출생지라고 이를 기리고 있다.
*** 회암사지 답사기는 총 4편으로 마무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