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선종(禪宗) 종찰(宗刹)
설악산 자락에 자리잡았던 진전사(陳田寺)는 우리나라 선종(禪宗) 불교의 종찰(宗刹)이자 시원지(始原地)로 손꼽히는 곳인데 이는 우리나라에 선법(禪法)을 최초로 들여와 선종의 종조(宗祖)로 추앙을 받는 도의선사가 주석한 곳이기 때문이다.
선종(禪宗) 종조(宗祖) 도의선사(道義禪師)
지금(2021년)으로부터 1200년전인 821년, 당나라로 유학갔던 신라의 도의(道義) 스님이 37년간 치열하게 수행을 하고 귀국한다. 스님은 6조 혜능의 법통을 이어받은 서당 지장으로부터 법(法)을 인가받고 온것이니 남종선(南宗禪)이 마침내 이 땅에 들어온 것이다.
당시 이 땅에 불교가 전해진지는 이미 500여 년이 지났고 국교(國敎)의 수준으로 대우받는 가운데 이미 자장, 의상, 원효와 같은 고승들이 나왔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익숙한 상황이었으나 문자로 된 교리(敎理) 암송에 치중하던 교종(敎宗) 입장에서는 '말이나 문자로가 아니라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라는 선(禪)사상은 낯설뿐만아니라 멀리 해야할 악마의 말(魔語)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배척당한 도의선사는 서울인 서라벌로 가지 못하고 설악산 자락 진전사(陳田寺)에 들어가 40년동안 선정을 닦으며 염거화상에게 법을 전하고 열반에 드니 지금의 선종(禪宗) 조계종에서는 도의선사를 종조(宗祖)로 삼는 것이다.
이는 불교가 전해진지 500년쯤 지나 중국으로 건너 온 달마대사가 양무제를 비롯한 중국인들이 복(福)을 비는 불교만 알지 선(禪)으로 깨닫는 것을 모르기에 양자강을 건너 북방 소림사에서 면벽 9년으로 때를 기다린것과 같다.
이렇게 도의선사에 의해 시작된 선종불교는 2조 염거화상에 이어 3조 체징이 장흥 보림사에 주석하면서 가지산문을 여니 9산선문의 시작이다. (홍척이 세운 실상산문의 실상사가 개산(開山)은 먼저이나 선을 들여온 시기는 가지산문 도의선사가 더 빠르다.)
최초의 선(禪) 전래?
중국의 선종은 5조 홍인 이후 남종선의 혜능과 북종선의 신수로 나뉘어지는데 (훗날 혜능이 6조가 되고 북종선은 남종선에 흡수된다.) 도의선사는 821년 혜능스님의 법통을 이어받은 제자들에게서 남종선을 전수받아 귀국한 것이나
그에 앞선 7세기 중엽 법랑(法郞, 생몰 불명)스님이 4조 도신으로부터 법(法)을 배워 귀국하였다고 하는데 관련 기록은 남아있지 않고 그의 제자 신행(神行 또는 信行, 704∼779) 스님이 다시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신수의 제자 지공으로부터 법을 받아 귀국하니 사실은 북종선이 먼저 이 땅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이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잊혀지고 말았으며 다시 세월이 흘러 도의선사가 들여온 남종선도 처음에는 배척을 당하였으나 도의 - 염거 - 체징으로 내려가며 가지산문을 이루어 번성하고 비슷한 시기에 선(禪) 사상을 들여온 스님들에 의해 구산선문이 생김으로써 한국의 불교가 선종(禪宗)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 양양 진전사 터(陳田寺址) (강원도 기념물 제52호)
양양을 지나 한계령과 설악동 사이, 설악산 품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길이 끝나고 커다란 저수지 하나 있는 둔전리 계곡 끝에 진전사가 있는데 옛 진전사를 복원한다는 목표아래 2005년부터 조금씩 복원하는 중이다.
옛 진전사는 특이하게도 현 진전사 옆에 일반적인 석탑을 닮은 스님의 승탑 하나가 있고 산 아래 지금 절집 못 미처 도로변에 삼층석탑이 하나 서 있는데 산 위와 산 아래의 상관관계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이곳은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둔전사지(屯田寺址)로 알려졌을 뿐 도의선사가 주석한 우리나라 선불교의 시원지임은 아무도 몰랐는데 1965년 단국대학교 박물관이 일대를 시굴조사하는 과정에서 ‘陳田(진전)’이라 새겨진 기와를 발굴하면서 둔전사가 아니라 진전사의 옛 터였음을 알게 되었다.
진전사는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 스님이 출가한 사찰이기도 한데 조선초기까지 선종의 핵심 사찰로 유지되다가(1467년까지는 존속) 어느 시기에 폐사된 후 수백년을 폐사지로 남아있었으며 발굴조사로 알려진후 2005년부터 옛 진전사를 되살리는 불사를 추진중에 있다.
두툼한 느낌의 지대석 위에 낮은 하층 기단과 높은 상층 기단은 모두 모서리 기둥(우주)과 가운데 기둥(탱주)를 새겼을뿐 별다른 조각이나 장식은 없으며, 몸돌을 받치기 위해 별도의 굄돌을 얹었는데 아래쪽에는 앙련의 연꽃조각을 둘러 새겼고 윗면은 8각으로 만들었다.
높직한 8각 몸돌의 남면에는 문(門) 모양의 네모를 새겼고 나머지 부분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사리공은 몸돌이 아닌 아래 굄돌 윗면에 있었다고 한다. 8각 지붕돌은 기와골 무늬는 새기지 않았으며 아랫면은 편편하고 윗면은 부드럽게 곡선으로 지붕 끝을 들어올려 단순하면서도 아름답다.
지붕돌 위에는 앙련 연꽃잎이 받치는 큼직한 보주를 하나 얹었는데 보주와 맞닿는 지붕끝에는 연꽃잎을 복련으로 둘러 새겼다.
전체적으로 단순 검박한 느낌이며 우리나라의 최초 승탑이라는 의미가 있어 몇 번이고 되돌아 보게 되었는데 다만 도의선사 승탑이라는 확증이 없어 아쉽다.
진전사지 삼층석탑 (陳田寺址 三層石塔) (국보 제122호)
탑은 2중 기단에 3층을 올린 석탑으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통일신라시대 3층석탑이다. 도로변에서 조금 올라간 지형에 자리 잡았는데 주변은 절터로 추측되어 발굴 조사가 진행된 바 있는 곳이다.
하층 기단과 상층 기단 공히 모서리 기둥(우주)과 가운데 기둥(탱주)를 조각하였으며 각면을 2분할하여 모두 8면을 만들었는데 하층기단에는 천인상(天人像)을, 상층기단에는 8부신중(八部神衆)을 새겼다.
1층 몸돌에는 4면에 사면불을 새겼는데 모퉁이 일부가 깨지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양호한 상태이다.
2, 3층 몸돌은 적당한 비례로 줄어들어 전체적인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지붕돌은 공히 5단의 층급받침을 두고 처마 끝이 살짝 들어올려져 경쾌한 느낌이다. 상륜부는 노반과 함께 제 짝인지 의심스러운 돌이 하나 덮여있다.
탑이 있는 하대 지역을 2017년 발굴중 국보급 불상이 발견되었는데 드물게 여래가 아닌 보살이 본존불로 된 6세기경 금동삼존불로 높이 8.7cm의 손바닥 크기로 본존불 위에 화불(化佛)이 특이한 모습이어서 눈길을 끈다.
진전사터 주변에는 또다른 폐사지가 2곳 있는데 위쪽으로는 설악동 들어가는 중간에 위치한 '향성사 터'와 아래쪽으로는 오색약수터 지나 '오색석사 터'가 있으나 현재는 석탑 하나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 선종을 처음 들여와 9산선문을 여는 효시가 된 도의선사가 주석한 진전사지에 이어서 그의 제자 염거화상이 머물렀다는 설악산 억성사(億聖寺)가 있었던 곳으로 추측되는 선림원 터는 다음순서에 별도로 답사하기로 한다.
[계 속]
내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 https://band.us/@4560dapsa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