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4.21 09:48

(24회) ‘검은 점과 흰 여백’

얼마 전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중학교의 한 교실에서 일정에 없는 쪽지 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험지엔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흰색 A4용지 한 가운데에 검은 점만 찍혀있을 뿐이었지요.

시험이 끝나고 선생님은 제출한 답안들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는데, 주로 “점이 보입니다. 점은 검정색입니다. 점은 동그란 모양입니다. 점은 정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점의 지름은 약 1cm정도입니다.”라는 것들이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모두가 흰 종이 가운데에 있는 검은 점에만 집중을 했네요. 종이의 흰 부분에 대해 쓴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다양한 것들이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많은데, 우리는 단지 한 가지에만 사로잡혀 많은 부분들을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지만, “난 건강이 점점 안 좋아져. 대출한 돈을 아직도 다 갚지 못했어. 자식들 둘 다 취업을 못했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흰 종이 위에 있는 검은 점에만 집중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검은 점은 흰 종이에 비하면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어려움들도 때로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나의 인생 전체에서 보면 일부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시선을 검은 점으로부터 흰 종이의 여백으로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는 이런 경험을 했을 겁니다. 집이나 직장에서 어떤 물건이 생소하게 눈에 띌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이 물건을 누가 갖다 놓았는지 물어보면, 원래 거기 있은 지 오래 되었는데 몰랐냐며 되물어 온 경우가 있었을 겁니다. 심지어는 매일 지나치는 동네 슈퍼마켓 옆에 있는 커피전문점 이름도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고요.

이처럼 우리는 흔히 보이는 것을 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것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예컨대 자신은 배우질 못해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검은색 점에만 집중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배우지 못해서 잘 못하는 것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흰 종이 위에 있는 검은색 점에만 초점을 두는 거와 다름이 없는데, 그 이유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느 누구도 잘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퍼즐 맞추기를 할 때 한 조각이라도 없으면 퍼즐이 완성될 수 없잖아요. 그것처럼 이 세상이라는 퍼즐에서 우리들은 모두 없어서는 안 될 하나의 조각이기 때문에 누구도 어떤 할 일 즉 자신만의 역할이나 잘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나만이 잘 할 수 있는 나의 재능, 내 성격의 좋은 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칭찬받았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나’라는 사람의 검은 점이 아니라 흰 여백에 초점을 맞추어 가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검은 점 흰 여백’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또 한 가지는 현재 나 자신이 처한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 상황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의 삶은 끝나는 순간까지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코로나를 예측하지 못했듯이 삶이란 그야말로 한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는데, 이 말은 죽을 때까지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죽을 때까지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겠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청년들의 말을 들어보면 군대 내무반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문장이 크게 적혀있다고 하던데, 지금 혹 큰 어려움 속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그건 고속도로의 터널을 지나듯 조만간 지나갈 겁니다. 힘들지만 그 어려움이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검은 점 대신 흰 여백으로 시선을 돌리듯이, 그렇게 절망에 집중하기보다 희망을 품으면 좋겠습니다.

-'신중년 신노년의 마음공부' 저자 강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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