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을 넘어 영동(嶺東) 지역의 강릉 굴산사 터와 신복사 터를 답사후 위로 올라가 양양 진전사 터와 선림원 터를 답사하였다. 선림원 터를 보고 구룡령을 넘어 다시 내륙쪽으로 오면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에 절 터가 하나 있다.
지금은 양양고속도로가 뚫려 교통이 편해졌지만 그 전까지만해도 홍천에서 내촌면 - 상남면을 지나 조침령을 넘어 양양으로 넘어가는 불편한 산골이었는데 이곳에 절 이름은 몰라 그저 '물걸리 사지(寺址, 절터)'라고 부르는 곳이 있으니 보물 5점이 있어 강원도에서 한 곳에 보물이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 홍천 물걸리 절터(寺址) (강원도 기념물 제47호)
절 이름을 알 수 없으나 전해오는 말로 홍양사(洪陽寺)터 라고 한다. 1967년 4월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상 1구(아래 사진 참조)를 비롯하여 고려 철불 조각 4점(아래 사진 참조)이 발견되었으며 4년뒤 발굴 조사에서 석조여래좌상과 비로자나불좌상, 불대좌, 불대좌및 광배, 삼층석탑이 발굴되어 1971년 5점을 보물로 지정하였다.
또한 발굴과정에서 각종 기와조각과 조선시대 백자조각 등이 발견됨으로써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절이 유지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1982년 현 보호각을 새로 짓고, 불상을 옮겨 보존하고 있는데 하나의 절에 4구의 대형 불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절의 규모가 상당히 컸던 것으로 보이며 주변에는 아직도 많은 석재들이 흩어져 있고 사유지로 둘러싸여 충분한 발굴이 되지 않은듯 하니 향후에라도 추가적인 발견으로 많은 사실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해본다.
이곳 절터에서 유일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상륜부가 없어지고 기단 갑석(덮개돌) 일부가 훼손된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양호한 모습이다.
두툼한 네모난 지대석 위에 2중 기단을 올렸는데 하층, 상층 기단 모두 모서리 기둥(우주)과 가운데 기둥(탱주)을 하나씩 새겼으며 2, 3층은 1층에 비하여 절반이하로 급격하게 작아져 전체적으로는 탑을 안정되어 보이게 한다.
각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우주)만 새겼으며 지붕돌의 경우 1, 2층은 층급받침이 5단이나 3층은 4단이고 처마 끝이 들려져 제법 날렵해보인다.
물걸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42호), 석조대좌(보물 제543호), 석조대좌 및 광배(보물 제544호)
팔각받침돌의 8면에는 각각 안상을 큼직하게 새긴 후 전설의 새 가릉빈가와 향로를 조각하여 눈길을 끈다. 승탑의 몸돌이나 지붕돌 등에 새겨진 가릉빈가는 보았지만 연화대좌 받침돌에 새긴 가릉빈가는 드문 일이다. 맨 오른쪽 석조대좌의 받침돌도 이와 비슷하다.
큼직한 두겹 연꽃잎을 복련으로 새긴 하대석은 8각의 각진 곳마다 귀꽃을 돌출시켜 새겨 멋스럽고 8각 중대석은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을 새겼으며 각 면마다 입상을 새겼는데 보살이나 불상으로 보이나 문화재청 설명에는 팔부중상이라고 하니 조금 혼란스럽다.
상대석은 볼륨감이 풍성한 연화 대좌(臺座)인데 앙화로 된 연꽃잎을 서너겹 포개어 새겼는데 그 안에 활짝 핀 연꽃무늬가 새겨있어 아름답다.
ㅇ 물걸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石造毘盧遮那佛坐像) (보물 제542호)
불상의 머리는 왼쪽의 석조여래불이 마멸되어 불분명한데 비하여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은 나발(螺拔)이 뚜렷하고 상투 모양으로 솟아오른 육계가 분명하다.
법의는 양어깨를 걸친 통견인데 전체적으로 흘러내리는 주름진 형태가 옆에 있는 석조여래불과 비슷하나 지권인을 모으고 있어 가슴에 매듭은 보이지 않으며 양 어깨로 옷자락 몇 겹을 접어서 얹은 것이 다르다.
비로자나불의 수인인 지권인을 반대로 취한 역지권인인데 가부좌로 앉은 자세도 왼발을 위로 얹은 항마좌로 옆에 있는 석조여래불이 오른발을 위로 올린 길상좌(또는 연화좌)를 취한 것과 대비된다.
커다란 두겹의 연꽃잎들을 복련으로 새긴 하대석은 귀꽃이 없이 평범한 모습이며 조금 낮은듯한 중대석은 8각의 모퉁이에 기둥을 새긴후 각 면마다 향로와 공양상, 보살상, 악기연주상 등을 다양하게 새겼다.
상대석은 역시 볼륨감이 풍성한 연화 대좌(臺座)인데 앙화로 된 연꽃잎을 서너겹 포개어 새겼는데 그 안에 활짝 핀 연꽃무늬가 새겨있어 아름답다.
ㅇ 물걸리 석조대좌 (石造臺座) (보물 제543호)
두광은 대부분이 깨어지고 둥근 모습의 아래쪽만 남아 있다. 전체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신광은 (바라보는 방향에서) 왼쪽은 대체로 외곽까지 남아있으나 오른쪽은 외곽이 많이 깨어져 아쉽다.
커다란 신광 바깥쪽에는 일정하게 반복되는 불꽃무늬를, 2겹선 안쪽으로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두광은 아래쪽에는 구름무늬를 위쪽(안쪽 원)으로는 연꽃무늬를 화려하게 조각했다.
8각 중대석은 석조여래좌상 중대석과 같이 8면의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기고 각 면에는 두광을 갖춘 보살입상들을 새겼다.
상대석은 역시 볼륨감이 풍성한 연화 대좌(臺座)인데 앙화로 된 연꽃잎을 서너겹 포개어 새겼는데 그 안에 활짝 핀 연꽃무늬가 새겨있어 아름답다.
ㅇ 물걸리 석조대좌 및 광배 (石造臺座 및 光背) (보물 제544호)
나뭇잎(葉) 모양, 또는 배(舟) 모양의 전체 광배는 날렵해보이는데 광배의 중앙에는 두광의 중앙이 되는 둥근 원을 그리고 주변으로 활짝 핀 연꽃잎을 둘러 새겼다.
나머지 부분에는 구름무늬와 불꽃무늬를 채웠으며 둥글게 돌아가며 화불(化佛) 9구를 돋을새김으로 조각하였는데 각기 다른 수인을 하고 있다고 하나 육안으로 또렷하게 식별되지는 않는다.
하대석의 연꽃과 귀꽃 새김은 바로 옆에 있는 석조여래좌상 좌대와 비슷하며 중대석의 8면에는 (다른 것은 모서리 기둥을 세우고 네모진 평면에 조각을 하였으나) 각 면마다 둥근 지붕창 형태로 파내고 그 안에 불, 보살과 신장상등을 다양하게 돋을새김으로 조각하였다.
상대석은 역시 볼륨감이 풍성한 연화 대좌(臺座)인데 앙화로 된 연꽃잎을 서너겹 포개어 새겼는데 그 안에 활짝 핀 연꽃무늬가 새겨있어 아름다운데 보호각 안에 있는 대좌 4개의 상대석은 거의 비슷한 모양을 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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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군(郡)이며 높은 산악지형으로 둘러쳐진 곳이다. 물걸리 절터를 둘러보고 홍천읍쪽으로 나오다보면 공작산 아래 천년고찰 수타사(水墮寺)가 있고 읍내 홍천미술관 앞에 괘석리 사사자 삼층석탑(보물 제540호)과 희망리 삼층석탑(보물 제79호)이 있고 읍내 하천변에 희망리 당간지주(보물 제80호)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볼 만하다.
홍천미술관은 옛 홍천군청과 읍사무소 등으로 사용되다가 홍천미술관으로 재개관하였는데 강원도내 유일하게 원형을 가진 군청사로 등록문화재 제108호로 등재되었으며, 옆에 있는 홍천성당은 6.25전쟁으로 불타 없어져 군인들이 다시 지어주었다고 하는데 50년대 석조건축의 모습을 간직하여 등록문화재 제162호로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