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4.30 09:49 | 수정 : 2021.04.30 09:51

▩ 서산 보원사터(普願寺址) (사적 제316호)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국보 제84호 '서산마애삼존불'이 있는 곳에서 용현계곡을 따라 2Km쯤 더 들어가면 드넓은 폐사지가 나타난다. 상왕산 보원마을에 있는 이 절터는 '보원사 터'로 추정되다가 발굴 결과 '보원사(普願寺)'라고 명문(銘文)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나오므로써 사명(寺名)이 보원사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보원사 터 전경(사적 제316호).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라말여초(羅末麗初, 통일신라말기에서 고려초기)로 보고 있지만 백제금동여래가 발굴되는 등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도 있다.>

전남 장흥 보림사에 있는 보조선사 체징(體澄)의 탑비에 "보원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827)"고 되어있어 기록상 처음 보원사 이름이 확인되고 있고, 최치원의 화엄 10찰로 명시되어 당시에는 화엄종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언급되는등 16세기까지는 유지된것으로 보이나 서산, 태안의 지방지(地方誌)에 강당사(講堂寺)로 바꿔 기록되거나 '호서읍지(湖西邑誌)(1871)'에는 철불(鐵佛)의 양손이 없다고 기록되어 이때쯤 사세(寺勢)가 많이 기울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지난 70년대에 목장부지로 정리되면서 민가들 철거가 이루어졌으며 특히 지난 2006년부터 10년 넘게 장기간에 걸친 발굴 조사가 진행되어 다수의 유구와 시설물, 기와편, 자기 등 각종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으나 아쉽게도 백제와의 연관성 증명은 부족한 실정이다.

보원사 절터에는 석조(石槽, 보물 제102호)를 비롯하여 당간지주(보물 제103호)·오층석탑(보물 제104호)·법인국사보승탑(法印國師寶乘塔, 보물 제105호)·법인국사보승탑비(보물 제106호) 등이 있으며 이곳에서 발굴된 금동여래입상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철조여래좌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일제강점기때 보원마을 전경. 당간지주와 5층석탑이 마을에 보이는데 승탑이나 탑비는 육안식별이 어렵다./ 사진출처=문화재청>
보원사지 석조 (普願寺址 石槽) (보물 제102호)
<석조(石槽)는 물을 담아 쓰던 돌그릇이다. 네모난 화강석 통돌을 파내어 만들었는데 평평한 바닥에 원형 배수구가 있을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 흔적이 없다. 안쪽과 윗쪽만 다듬었을뿐 외부는 거친표면 그대로 두어 땅에 묻어두고 사용했는지도 모르겠다.>

금이 가 깨진 부분을 접합하였는데 조각수법이 간결하고 소박하면서도 약 4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커 웅장한 느낌을 주는데 이를 통해 당시 사찰의 규모를 짐작해볼 수 있다.

보원사지 당간지주 (普願寺址 幢竿支柱) (보물 제103호)

<용현계곡을 흐르는 계곡물을 건너기 전에 당간지주가 한 쌍 서 있다. 특별한 꾸밈이나 조각은 없이 윗부분을 둥글게 깎고 곡선을 콕 찝은 형태이며 아래로 내려오면서 바깥쪽에 두줄로 띠모양을 새겼다. 윗부분과 안쪽 아래에는 홈을 파서 당간을 고정토록 하였다.>
드물게 당간을 꽂아 받치는 간대(竿臺)가 둥근 모양으로 온전하게 남아 있으나 커다란 사각형 지대석과 받침대는 새롭게 만들어 세운듯 하다.
<일제 강점기때의 보원사 터 당간지주와 오층석탑 모습/ 사진출처=문화재청>
보원사지 오층석탑 (普願寺址 五層石塔) (보물 제104호)
<금당터 앞에 세워진 보원사지 오층석탑. 이중 기단위에 5층을 올린 석탑으로 하층 기단은 한 면을 3칸으로 나누어 12칸에 다양한 모습의 사자상을 새겼고, 상층기단은 한 면을 2칸씩 나누어 8칸에 8부중상을 새겼으며 1층 몸돌의 네 면에는 사각형 문 모양의 문비(門扉)를 새겼다.>

하층기단에는 모서리 기둥(우주)과 가운데 기둥(탱주)을 2개씩, 상층기단은 가운데 기둥을 하나씩 새겼으며, 1층 몸돌 아래에는 별도의 굄돌을 받쳤는데 고려 탑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지붕돌은 모두 4단의 층급받침을 또렷하게 새겼는데 1, 2층 지붕돌은 4개의 돌로 맞추었으며 모든 지붕돌이 얇고 넓어서 백제계 석탑 양식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탑의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고 노반석 위에 쇠기둥(刹柱, 찰주)만 피뢰침 처럼 솟아있다.

<하층기단의 사자 모습과 상층기단의 팔부중상. 일부 마멸현상이 아쉬운데 상층기단 우측은 아수라상이 또렷하게 남아있다.>
보원사지 법인국사탑 (普願寺址 法印國師塔) (보물 제105호)
<보원사 터에 있는 법인국사 탄문(坦文)의 사리탑 보승탑(寶乘塔) (보물 제105호). 바로 옆에 탑비와 나란히 서 있다.>

팔각원당형 승탑으로 팔각의 지대석 위에 팔각 받침돌을 올렸는데 각 면에 안상을 파고 그 안에 다양한 사자 모습을 양각으로 새겼다.

하대석은 통상 상대석과 대칭으로 복련을 새기는데 반하여 전혀 다른 형태로 모난 각을 없앤 둥근모습에 구름문양을 뭉게뭉게 새긴 가운데 실감나는 용의 모습을 표현하였고 모서리 부분에는 꽃모양을 새겼다.

중대석은 아무 장식없이 밋밋한 팔각형으로 상대석을 받치고 있으며 앙련을 새긴 상대석 윗부분에는 난간을 표현하였고 난간 칸마다 꽃무늬를 조각하여 특이하다. 팔각 받침돌부터 하대와 중대, 상대로 올라가면서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좁혀 올라가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추구하고 있다.

높직한 8각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을 표현하고 각 면마다 조각을 새겼는데 앞, 뒤로는 문비와 자물쇠를 새겼고 나머지 면에는 사천왕상과 관(冠)을 쓴 인물상 2구를 새겼다.

팔각 지붕돌은 끝마다 귀꽃을 새겼는데 아쉽게도 많이 훼손되었으며 중대석도 크고 몸돌도 크고 지붕돌도 커서 다소 불안정해보이는데 지붕이 높이들려 경쾌해보이니 어느정도 상쇄되는 느낌이다.

상륜부는 복륜을 새긴 복발과 띠처럼 조각한 큼직한 보륜위에 보주가 올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공력을 많이 들인 승탑이다.

법인국사 탄문(坦文)
북한산 장의사에서 신엄대덕에게 화엄경을 배운 화엄승이나 선종을 수용하여 교선융합에 이바지 한것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기도로 광종이 태어났다고 총애를 받았으며 광종은 그를 왕사로(968년), 국사로(974년) 봉하였으며 마지막에 가야산으로 옮겨 보원사에서 가부좌로 열반에 들자(975년) 시호를 법인(法印), 탑호는 보승(寶乘)이라 내렸다.

<일제 강점기때의 보원사 터 승탑과 탑비 모습/ 사진출처=문화재청>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 (普願寺址 法印國師塔碑) (보물 제106호)
<승탑 옆에 서 있는 법인국사 탑비 보승탑비(寶乘塔碑) (보물 제106호). 사각의 지대석과 한몸인 받침대 귀부를 얹고 비몸을 세운후 이수(지붕돌)를 올린 모습으로 고려 경종 3년(978)에 세워진 연대가 분명한 승탑과 탑비이다.>

눈이 크게 튀어나온 사나운 모습의 거북은 목을 앞으로 빼고 네 발은 바닥에 붙인 채 자그마한 여의주을 물고있다. 거북등 귀갑무늬에는 왕(王)자 표시 없이 작은 꽃무늬를 차분하게 하나씩 새겼으며 네모난 비좌에 비신을 꽂아 세웠다.

크고 높직한 이수(머릿돌)는 구름무늬를 가득 새기고 좌우에서 용 4마리가 모이는 모습을 새겼는데 중앙의 제액(題額)에는 伽耶山普願寺故國師制贈諡法引三重大師之碑(가야산 보원사 고국사 제증시 법인삼중대사지비)라고 써 있다.

보원사지 출토 철불좌상 2구
일제강점기때 이곳에서 출토되었다는 철불 2구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데 따로 만들어 붙였을 두 손은 떨어져 나간 상태인데 석가모니 부처가 취한 항마촉지인으로 보인다.
또한 1968년에는 이곳에서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되어 관심을 끌었는데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중이다.

--------------------------------------------------------
보원사지 못미처 용현계곡 입구에서 옆구리 산자락을 타고 조금 올라가면 그 유명한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국보 제84호)이 있다.

1959년 나뭇꾼이 발견하여 세상에 나온 삼존불인데 그동안 보호각을 지었다 헐었다 사연도 많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귀엽고 깜찍한 마애부처님이다.

사실 이 마애불이 발견되고 국보로 지정되는 등 세상에 알려지면서 보원사 절터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서 12년이라는 긴세월동안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기도 했던 것인데 혹시 이 마애불의 본사가 보원사가 아닐까 하는 가정을 해보았으나 관련된 사실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삼존불' (국보 제84호). 한동안 보호각을 지어 마애불상을 보호한다고 하였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른 햇빛의 변화에 맞추어 불상의 미소가 달라지는것을 못 본다는 지적에 따라 다시 보호각을 헐어버렸다.>

보원사 터에서 바로 뒷산을 넘어 천천히 걸어도 2시간이면 개심사에 닿는다. 반대로 개심사를 둘러보고 보원사 터로 넘어와서 나가면서 백제의 미소 마애삼존불도 보고 가면 하루 일정으로 훌륭하다.


[계 속]

내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 https://band.us/@4560dapsa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