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5.13 10:33

올 1월 지인이 암호 화폐에 1천만원을 투자했다. 그러면서 필자에게도 약간의 여유 자금이 있으면 투자해보라고 권유했다. 주식은 어느 정도 기업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지만, 암호 화폐는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고 변동성이 워낙 크다 보니 그곳에 투자하는 것은 투기에 가깝고 원금까지 한 방에 날릴 수 있다는 생각에 지인의 권유에도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인도 필자의 확고한 생각을 이해하고 더 권유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 올 4월 초 지인으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다. 로또가 당첨되어 저녁 식사를 한 끼 산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1등이 당첨되었으면 당첨 자체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을 텐데 본인 입으로 당첨되었다고 얘기하는 걸 봐서 아마 나름 큰 금액이 당첨되었다고 추측했다.

공짜 밥을 사 준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기에 식사 장소에 갔다. 식사하고 나서 근처 커피숍에 들러서 커피를 한잔하며, 그제야 지인이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사실은 로또가 아니고 올 1월에 필자에게 추천한 그 암호 화폐가 가격이 많이 올라 수익이 좀 났기에 밥을 한 끼 산다고 말했다. 3개월 만에 수익이 났다고 해서 많아야 2~30% 정도 이익을 얻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몇 초 뒤 지인의 입에서 나온 수익률을 듣고 믿을 수가 없었다. 10%도 아니고 20%도 아니고 무려 100%의 이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100%라면 3개월에 1천만원을 벌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로또 당첨이었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필자처럼 50대 중반의 세대들은 어느 정도 시대와 맞아떨어져서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20여년 직장 생활을 했다면 크게 경제적인 여유는 없을지라도 그럭저럭 아파트 한 채 장만하고 애들 대학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2~30대에겐 꿈같은 일이 되어 버렸다.

예를 들어 연봉을 5천만원 받는 직장인이 세후 월 실수령액이 300만원이라 해보자. 이 돈을 가지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월 200만원을 저축한다고 했을 때 1년이면 2,400만원, 10년이면 2억4천, 100년이면 24억이다. 쉽게 말하자면 강남 요지에 30평 아파트를 한 채 마련하려면 100년을 알뜰히 저축해도 힘들다. 이런 현실에 직면한 그들의 허탈함, 자괴감은 이루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생에는 서울에 집을 살 수 없다는 자조 섞인 말을 하는 이들에게 갑자기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암호 화폐 투자다. 위에서 언급한 지인의 예가 절대 과장되지 않음을 신문 지상을 통해 알 수 있다. 올 1월부터 급등하기 시작한 암호 화폐는 그 수익률이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했다. 불과 3개월 만에 1천만원이 1억, 5천만원 투자한 사람이 7억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종종 흘러나왔다. 이런 소식을 접한 2~30대에겐 그야말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을 것이다. 물론 변동성이 워낙 크다 보니 한 번에 많은 돈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해 보면 비록 희박한 확률이지만 그들에게 상상 이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요즘 벼락 거지라는 말이 유행처럼 회자하고 있다. 나는 성실하게 돈을 벌어 한푼 두푼 아껴 저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이 바쁜 회사 업무 중에 월차를 내어 아파트를 알아보고 주식을 알아보고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들은 수억대의 자산가가 되었고 그렇게 하지 않고 일만 우직하게 한 사람은 항상 그 자리에 머물렀다. 한마디로 상대적으로 벼락 거지가 된 셈이다.

회사 일에 100% 올인한 사람과 회사 일은 6~70% 정도 하고 나머지 시간을 부동산 공부에 투자한 사람의 5년 뒤에 부의 축적 관점에서 너무나 차이가 난 현실 앞에서 과연 누가 올바른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돈이 인생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인생을 좀 더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만들어 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암호 화폐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 많은 언론이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도 암호 화폐에 몰리는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고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금은 필자 또한 이곳에 약간의 금액을 투자했다. 왜? 부동산처럼 남들이 할 때 하지 않으면 또 한 번 벼락 거지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세상이 왜 이래’라는 원로가수의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큰 강물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려는 노력보다 그냥 큰 강물의 물줄기에 몸을 맡기고 그 물줄기가 가는 대로 함께하는 것이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 혼자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세상을 이길 수 없는 게 세상 이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부의 축적은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다. 개인이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그건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시대의 흐름에 동참해서 부를 거머쥔 사람에 비해 그 대열에 동참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벼락 거지가 되어 버린 현실. 설령 암호 화폐로 큰돈을 잃을지라도 부자가 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어쩌면 암호 화폐가 마지막 희망의 사다리라는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이렇게 만든 이 사회의 잘못이 더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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