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5.14 13:57

당진 안국사 터는 서산 보원사 터에서 멀지 않다.
행정구역으로는 당진군이지만 끄트머리에 있어서 서산에 가깝기 때문인데 이 지역에 이렇듯 큰 사찰의 흔적인 폐사지들이 남아 있고, 서산마애삼존불이나 태안마애삼존불 등이 모여있는 지리적 이유는 한성에서 밀려 내려온 백제가 공주나 부여에서 중국으로 오가기 위해서는 태안반도로 나가야하기때문으로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바램과 물류가 오가는 이동로상에 자연발생적으로 대찰(大刹)이 생긴 결과였을것으로 짐작된다.

당진군 정미면 수당리 은봉산(안국산) 아래 원당골이라 불리는 곳에 안국사 터가 있는데 변변한 절터나 부지 정리된 모습은 없이 비구니 몇 분이 계시는 작은 절집 뒤로 삼존석불과 석탑, 매향바위 하나씩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안국사 터에 남아있는 석탑(보물 제101호), 미륵삼존불(보물 제100호), 매향바위(충남 기념물 163호). 어설픈 축대위에 석불과 석탑이 있고 뒤편에 커다란 쌀알처럼 생긴 바위가 하나 있다.>
<그 왼쪽으로는 ㄱ자 건물터가 있고 여러 개의 주춧돌이 노출되어 있다.>

▩ 당진 안국사 터 (安國寺址) (당진시 향토유적 제6호)
안국사의 창건연대에 관해서는 확실히 전해오는 기록은 없고 백제 말엽에 창건되었고 한 때는 수 백명이 수도하던 큰 절이었다고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전설 차원의 이야기이다.

다만 '태평십(太平十)’명 명문 기와 발견으로 고려 현종 21년(1030년)을 안국사 창건기로 보고 있으며, 지금 남아있는 미륵불과 석탑, 기타 출토된 흔적들을 보면 고려 때에는 크게 번성하였던것으로 보이는데 현지에서는 '고려 현종 21년(1030년)에 거란족의 침입으로 이반된 민심을 수습하고자 지은 천년 호국사찰'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조선 중종 때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안국산이 해미현 북쪽 38리 지점에 있고 안국사는 안국산에 있다’고 되어 있어 이때까지는 사찰이 유지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고 있지만 그 후의 기록에서는 보이지 않다가 도지(道誌)에 의하면 임용준이 1929년에 재건하였으나 다시 폐사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최소한 두 번이상 소실된것으로 보인다.

이곳 안국사 터가 대규모로 본격 발굴조사된 적은 없으며 2004년과 2011년 미륵삼존불 복원작업과 지표조사 정도가 진행된것으로 알려졌고 절터에 대한 문화재 지정도 국가지정이나 도지정이 아닌 당진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는등 상대적으로 등급이 낮게 책정되어 있다.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石造如來三尊立像) (보물 제100호)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보물 제100호). 무릎아래는 땅에 묻혀 있었던것을 복토를 제거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거쳐 좌대와 발 부분을 노출시켰는데 육안으로도 흙에 묻혔던 부분은 색이 달라 보인다.>

삼존입상은 화강석재로 만들어졌으며 중앙에 보개(갓)를 쓴 본존불 좌우에 보살상을 세웠는데, 대좌에서부터의 높이가 중앙 본존불이 580㎝, 서편의 우 협시보살이 323㎝, 동편의 좌 협시보살이  292㎝이며 좌 협시보살은 머리부분이 파손되어 없어지고 그 자리에 보관을 얹어놓았다.

본존불은 인체구조나 옷 주름등의 표현을 생략하고 커다란 돌기둥에 얼굴과 손 정도만 표현하였으며 발 부분은 별도로 조각하여 붙여놓았는데 좌 우 협시보살도 발은 좌대에 별도로 새겨놓은 특이한 모습이다.

<본존불과 좌우협시불 모두 몸체에는 발이 없이 돌기둥 형태로 좌대에 접합시켜 세운 뒤에 발 부분은 별도로 조각하였는데 좌우협시불은 좌대에 돋을 새김으로 표현하였고 본존불은 별석(別石)으로 발가락을 새겨 본체앞에 붙여놓았다.>

본존불은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고 왼손은 배꼽근처에 놓았는데 아미타부처님의 수인(手印)처럼 손가락을 오무리고 있다. 머리는 몸과 하나의 돌로 되어있는데 비례가 넘쳐 커보이며 이마에는 백호 흔적 위에 또 하나의 흔적이 남아있고 화불이 장식된 보관 위로 면류관 형태의 커다란 사각형 보개를 얹었다.

서편의 우협시 보살상은 머리에 당초문이 장식된 높은 보관을 쓰고 있고 이마에는 백호가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보이고 그 아래에 목걸이 장식이 있다. 법의는 우견편단이며 양 팔뚝에 팔찌가 새겨져 있다. 양손은 모두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한채 오른손 가슴 부분에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으며 본존불에서는 생략한 옷주름이 발까지 물결치듯 흘러내린다.

동편의 좌협시 보살상은 손 모양이 다를뿐 우협시 보살과 비슷한데 조금 더 호리호리한 모습으로 머리가 없음에도 더 커보인다.

삼존불 앞에는 봉로석(奉爐石)이 1개 놓여 있는데 옆면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으며 윗면에는 3엽의 단판연화문이 새겨져 있다.

안국사지 석탑(安國寺址 石塔) (보물 제101호)
<안국사지 석탑. 기단부가 특이하게도 지대석위에 받침돌과 덮개돌만 얹은 형태이며 1층 몸돌위에 지붕돌만 4개가 얹혀있어 최소한 5층탑으로 추정된다.>

투박한 모습의 지대석이 두텁게 깔려 있으며 윗면에는 굄이 솟아있어 받침돌을 올렸는데 역시 제대로 다듬지 않아서 기둥표현은 보이지 않으며 면석도 고르지 않아 보인다. 그 위에 덮개돌은 큼직하여 2장으로 하였는데 역시 다듬지 앟아 거친 느낌이다.

유일하게 남은 1층 몸돌은 모서리 기둥(우주)을 넓게 표현하였으며 한 면에는 문비모양을 새기고 나머지 세 면에는 여래좌상을 양각으로 새겼는데 사방불이 아닌  이런 경우는 드물어 특이한 경우이다.

4개가 포개진 지붕돌은 몸돌보다 크고 두꺼워 무거운 느낌인데 처마곡선은 유연하게 표현하였다. 밑면으로는 4단의 층급받침을 새겼고 반전이 커서 치켜올려진 모양이며 상륜부는 남아있지 않고 보주 모양 석재가 하나 올려져 있다.

석탑 옆에는 역시 불상이 새겨진 몸돌이 하나 놓여 있어서 원래 쌍탑이었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안국사지매향암각 (唐津安國寺址埋香岩刻) (충남 기념물 제163호)
<삼존불 뒤편에는 쌀알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미륵이 내려와 극락이 이루어지기를 빌면서 향(香)을 묻고 빌었다는 것을 새긴 '매향(埋香)바위'라고 한다.>

배(船)처럼 생겼다해서 '배바위' 또는 고래처럼 생겼다고 '고래바위'라거나 베틀에 딸린 북처럼 생겼다고 '북바위'라고도 한다는데 자연석 통바위로 높이 2.93m, 길이 13.35m, 폭 2.5m에 달하며 바위에 새긴 명문(銘文) 2건이 식별된다.

매향(埋香)은 향나무를 땅에 묻는 민간 불교의식으로 향나무를 통해 소원을 비는 자와 미륵불이 연결되기를 바라는 신앙의 한 형태인데 매향의식을 치루고 그 내용을 바위에 간략히 새긴 것이 매향바위이다.

<매향바위에 새겨진 명문(銘文), 동쪽과 서쪽 2곳에 새겨졌는데 각각 그 새긴 시기가 다르다. 전국에 모두 16곳 정도의 매향기록이 있는데 그중 년도가 명시된것은 5곳이라고 하니 중요한 기록으로 보인다.>

위 각자(刻字) 내용은
          庚午 二月日  
          余美北天口    
          浦東際埋香       
          一丘 化主兗先    
         結願香徒
경오년(庚午年) 2월 일 여미(余美) 북쪽 천구포(天口浦) 동쪽에 매향(埋香)하였다. 화주(化主) 연선(兗先)과 결원향도(結願香徒) 라고 새겼는데 경오년(庚午年)은 1930년, 1870년, 1810년순으로 60년씩 내려가는데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다른 편에는 경신년(庚申年) 十月(시월) 日에 향을 묻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흥미로운것은 현지에서는 위 매향바위와 기록이 일치하는 매향침목이 안국산 너머 바닷가에서 발견되었다는 주장인데 잘 보존하고 있으며 안국사가 복원되면 인계받아 공개될것이라는데 반신반의하는 심정이다.

현재 안국사지는 지금까지 둘러본 페사지들에 비하여 국가차원의 사적지정이나 광역자치단체 수준의 지정이 아닌 당진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상대적으로 관심이 소홀하거나 본격적인 대규모 발굴조사나 복원추진계획등이 미흡한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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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당진을 포함한 이 근처 마을을 일컬어 내포(內浦) 지역이라고 하는데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이곳(내포)의 땅은 기름지고 평평하면서 넓다. 또한 소금과 물고기가 많아서 대를 이어서 사는 사대부가 많다.”고 평했다.

그만큼 문물이 풍부하고 살기 좋은 곳이란 의미로 보이는데 백제가 수도를 공주나 부여로 옮긴 후에 중국과 연결되는 교통로가 태안반도를 통하여 오고가다보니 이곳 서산과 당진, 태안등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지금 폐사지 답사를 통하여 드러나듯이 보원사나 개심사, 안국사 등이 있었으며 본사가 확인되지 않는 서산마애삼존불이나 태안마애삼존불등의 귀중한 불교유적이 남아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태안 마애삼존불 (국보 제307호). 태안반도로 가다보면 백화산 아래 암벽에 새겨진 백제시대 마애삼존불이다. 서산마애삼존불과 함께 내포지역에 위치한 국보급 마애불이다.>

[계 속]

내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 https://band.us/@4560dapsa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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