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5.18 10:17 | 수정 : 2021.05.18 10:22

(28회) ‘비교와 해석’

언젠가 들었던 말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한 확실한 방법을 뭐라고 한 마디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불행해지는 확실한 방법은 있다. 뭐냐면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이다.” 라는 것이었지요.

맞습니다. 그놈의 ‘비교’가 문제입니다. 우리 시니어들이 부모로서 한 번쯤은 이런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어버이날 자녀들로부터 받은 꽃과 선물이 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얼른 자랑하고 싶습니다. 며칠 후 드디어 친구들을 만났고 한껏 자랑을 하였지요. 그런데 친구가 받은 선물 이야기를 듣자, 그 기쁨이 달아나버린 느낌이라고 할까요? 갑자기 자신이 받은 선물이 별루로 여겨지는 겁니다.

‘비교’와 관련하여 이런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자신의 월급이 20만 원 올랐을 때보다, 친구와 비교하여 자신이 10만 원 더 받을 때 훨씬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는 비교의식이 깊이 뿌리박혀 있는데, ‘비교하는 것’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왜 뉴스를 보면 가끔 행복지수에 대한 연구보고 결과가 나오지요. 2015년에는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왔는데, 그렇게 못사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요?

짧게 설명을 하면 이렇습니다. 행복지수를 구할 때는 자신의 소유물을 욕구로 나누어서 구하는데, 이 말은 행복지수가 올라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구보다 소유한 것이 훨씬 많거나 아니면 반대로 자신의 욕구가 소유물보다 아주 작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잘사는 나라의 사람들을 보면 소유한 것이 많아서 쓸 것이 충분해도 남과 비교하면서 더 많이 갖기를 바라는 욕구가 크기 때문에 행복지수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반면에 방글라데시 같은 못사는 나라의 사람들일수록 다른 사람과 자신을 별로 비교하지 않습니다. 물론 비교라는 말이 사치일 정도로 먹고 살기에 급급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요.

그 말은 소유물이 적어도 자신이 쓸 만큼만 있으면 만족하기 때문에 즉 남과 비교해서 남보다 더 갖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행복지수가 높은 겁니다. 결국 남과 비교하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결과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과 비교하는 습성을 버려야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인간은 원래부터 ‘비교’라는 것이 필요 없는 존재들이지요.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원래부터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똑같은 장난감을 수십 개 주면 싫어하듯이,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생겼다면 재미도 없겠지만 서로를 구분할 수가 없어서 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질 겁니다. 그래서 조물주는 우리가 서로를 구분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다르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구별’이란 단어를 ‘차별’이란 단어로 바꾸어서 서로 끝없이 비교하며 행복하게 살아가지를 못하지요.

게다가 우리는 원래부터 서로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에 비교의 준거가 되는 기준조차 필요 없습니다. 사과나 배는 그것들만의 고유한 맛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더 맛있다고 판단을 내릴 수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나 자신의 외모뿐만 아니라 소유물이나 재능, 나아가 살아온 삶을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또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늘 비교하며 살아가는 대신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은 나의 삶을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해서 의미를 부여해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80대의 어느 어르신은 한글도 깨우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남과 비교하며 한탄을 하기보다, “내가 글을 모르기 때문에 살아오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것이 일찌감치 좋은 아주머니 댁으로 식모살이를 간 계기가 되었고 그래서 현재의 남편도 만날 수 있었지. 금쪽같은 자식들도 얻었고.”라며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해석을 하십니다. 또 다른 분은 어쩔 수 없이 아내와 이혼하였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혼자 사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현재 벌어지는 일들이 고통스러운 경험들일지라도, 그 일들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면 의미가 생기고 그래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저는 “행복은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들을 잘 해석해서 삶에 의미를 부여해가는 것”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습니다.

-'신중년 신노년의 마음공부' 저자 강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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