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주 미륵대원지(彌勒大院址) (사적 제317호)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옛부터 미륵불이 있어 '미륵댕이'라고 부르던 동네였는데 6. 25 전쟁이 끝나고 한 수행자가 암자를 짓고 미륵에 치성을 올리며 지내던 곳이었다. (석등같은 석물들은 대부분 땅에 묻혀 있었다.)
1976년 어느날 절터의 집을 옮기는 과정에서 석물(石物)이 드러났다. 미륵대원(彌勒大院)이 1000년만에 잠에서 깨어나 세상에 나오는 것이었으니 이어진 발굴조사에 의거 사찰 이름이 대원사라는게 밝혀졌고 동쪽 언덕에서 원(院)이나 역지(驛址), 군사시설 흔적 등이 발견되었다.
삼국유사 '왕력' 편에 적힌 '계립령미륵대원동령시야'의 미륵대원이다. 사찰인 대원사와 관리들의 숙소 격인 미륵대원이 유기적으로 존재했음을 알수 있다. (충주시)
지금의 월악산 국립공원지역에 포함되는 미륵대원지는 과거 신라 아달라왕에 의해 개척되었다는 계립령(하늘재)에 연결되는데 2년 뒤 죽령이 뚫리면서 이 두 고개가 소백산맥을 넘는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다가 고려말쯤 문경새재가 뚫려서 조선시대에는 이곳이 주요 교통로가 되니 소백산맥을 넘는 주요 고개인 죽령과 계립령(하늘재), 새재에 둘러싸인 험준한 산골짜기 북쪽 기슭에 미륵대원지가 있다.
이 절터에 언제 절집이 지어졌는지는 전해지지 않으나 발굴 당시 ‘미륵당초’라고 새겨진 기와가 나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의 사원으로 추정되는데 드물게 북향으로 지은 석굴사원으로 평가된다. 폐사 기록도 정확하지 않은데 큰 화재를 만났는지 목조 부분은 남아있지 않고 ㄷ자로 쌓은 석벽만 남았는데 불에 탄 듯한 모습이며 현재 미륵불 주변의 복원공사가 몇 년째 진행중에 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망한 것을 슬퍼하며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누이인 덕주공주가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남쪽을 바라보는 마애불을 만들자 태자는 북향의 석굴을 지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한다.
현재 미륵대원지에는 석조여래입상(보물 제96호)과 오층석탑(보물 제95호), 석등, 당간지주 등 중요한 석조 문화재들이 남아있다.
석불은 모두 5개의 돌을 이용하여 불상을 만들었고 1개의 얇은 돌로써 갓을 삼았다. 둥근 얼굴에 활모양의 눈썹, 긴 살구씨 모양의 눈,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 등은 고려 초기 커다란 불상의 지방화된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신체는 단순한 옷주름의 표현이라든가 구슬같은 것을 잡고 있는 손의 묘사 등에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간략함을 느낄 수 있다. (문화재청)
얼굴 부분이 유난히 희게 보여서 나중에 따로 만들었나 싶을 정도이며 나발 머리와 이마의 백호가 크고 뚜렷하고 목에는 삼도가 확실하게 표현되었다. 왼손에 무언가 들고 있어서 약합을 든 약사여래인가 했는데 구슬이라고도 하고 연꽃봉우리라고도 하니 약사불은 아닌듯 싶다.
특히 오른손을 위로 세워 든 모양이 커다란 몸체에 해당하는 석재 윗면보다 살짝 더 올라가게 되는데도 윗돌에 새기지 않고 몸체 돌에 새겨서 손 부분만 따로 솟아오르게 만든 석공의 재치가 감탄스럽다.
ㄷ자 내부 석벽의 중간부분에는 감실 형태로 일정한 공간이 확보되었으나 감실내에 제대로 남아있는 조각이나 장식은 없으며 산만하게 남아있는 작은 불상 몇 점이 눈에 띄는 실정이다.
게다가 현재 이 석실과 여래입상은 지난 2014년부터 보수공사가 시작되어 원래는 2017년말에 마칠 계획이었으나 계속 지연되고 연장되어 2021년말까지도 완공이 어려운 실정인지라 내년 이후에나 공개될 것으로 보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석불이 모셔진 자리가 원래 인공석굴사원이라니 절집의 금당에 해당되는 것이며 그 앞에 5층탑을 세우니 1탑 1금당 형식에 해당되는데 석등과 석탑 모두 원래 그 자리에 있는 자연석을 가공하여 세운 탓에 석불과 연결되는 축선이 일직선으로 똑바르지는 않다.
미륵대원지 석등 (石燈) (충북 유형문화재 제19호)
화사석은 불빛이 퍼지도록 4면에 창을 내었으며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가 살짝 치켜올려졌다. 지붕 위에는 8각의 받침 위에 큼직한 보주를 얹어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담백하면서도 흠잡을데 없이 잘 만든 석등이다.
미륵리 오층석탑 (五層石塔) (보물 제95호)
이 탑은 한 눈에 미완성인가 싶을만큼 투박하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자연석으로 받침돌과 기단을 만든 특이한 모습인데 자연석을 깎고 내부를 파내어 만든 큼직한 사각형 기단은 한쪽이 일그러져 있으며 그 위에 두터운 갑석을 얹었다.
탑신(塔身)은 1층 지붕돌만 2장일 뿐 몸돌이나 다른 지붕돌은 모두 1장의 돌로 되어 있고 각 층의 몸돌에는 크기에 비하여 좁은 모서리 기둥(우주)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급격하게 좁아져 석탑 전체의 균형과 미관을 손상시키고 있다.
층급 받침은 5단이지만 추녀가 짧아서 6단인 것처럼 보인다. 처마는 수평이고 지붕돌의 경사는 매우 급한데 귀퉁이의 치켜올림은 거의 없는 편이다.
탑의 꼭대기에는 큼직한 노반과 복발이 남아 있고 그 위로 상륜부 장식을 꾸미기 위한 철제 찰간(擦竿)이 피뢰침처럼 남아있다.
미륵대원지 사각석등 (四角石燈) (충북 유형문화재 제315호)
네모난 지대석이 두툼하며 그 위로 복련 연화문을 큼직하게 새긴 둥근 하대석이 부풀어 오른 모양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대석 윗면에는 홈을 파서 간주석(중대석)을 끼워넣게 되어 있으며 네모꼴 간주석 한 면에는 안상을 새겼는데 그 안에 불꽃무늬를 넣은 것이 서양의 스페이드 무늬처럼 보인다.
네모난 상대석은 하부에 앙련 연화문을 새겼는데 하대석보다는 치밀한 느낌이며 그 위로는 화사석인데 별도의 몸돌 없이 원주형 기둥 4개를 세워 지붕돌을 받침으로써 개방형 화사창(火舍窓)이 되어버렸다. 이런 독특한 기법은 고려석등에서 발견되는 양식으로 석등을 멋스럽게 만들어준다.
옥개석은 하부는 평면으로 다듬고 윗면은 사각형 지붕을 구현하였는데 전체적으로 두툼한 느낌에 완만한 경사를 보인다. 상륜부는 네모난 노반이 올려져 있을뿐 나머지 장식들은 보이지 않는다.
미륵대원지에 있는 석등 2개가 하나는 통일신라 양식, 하나는 고려양식으로 세워져 흥미롭다.
미륵대원지 석조귀부(石造龜趺) (충북 유형문화재 제269호)
거북머리를 앞에서 보면 눈, 코, 입은 새겨져있고 앞발중 오른발은 형태를 보이나 왼발은 보일듯말듯한데 등에는 육각의 귀갑문도 없고 뒷 발이나 꼬리 등의 표현이 미처 새겨지지 못한 상태이며 거북등 중앙에 비신을 꽂는 홈(비좌)은 파여져 있으나 실제 비신을 세웠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워낙 큰 거북이다보니 등에는 올라가는 계단 용도인듯한 홈이 4칸 파여져 있고 그 옆으로 새끼 거북 2마리가 발발거리며 기어오르는 모습을 새겨놓아 절로 웃음짓게 한다.
계립령로(鷄立嶺路) 하늘재 (명승 제49호)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미륵대원지에서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를 연결하는 고갯길이다. 신라시대 계립령, 고려때 대원령으로 불렀는데 대원령을 한글로 하면 한울재가 되고 조선시대 들어 하늘재가 되었는데 이 하늘재를 한자로 표시하니 다시 한훤령이 되어 근처에 한훤령 산성이 있다.
미래 부처님을 뜻하는 미륵리와 현세 보살 관음을 말하는 관음리를 연결하는 고갯길 하늘재는 불교 교리로 보면 대단히 중요한 통로인데 이제 교통로의 역할은 죽령과 새재에게 내어주고 옛 길의 멋진 풍광만 간직하고 있으니 요즘 유행하는 좋은 길 걷기의 일환으로 한번쯤 걸어보면 좋을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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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대원지에서 508번 지방도로를 따라 북향하여 올라가면 닷돈재를 넘어 제천시 한수면인데 덕주산성을 만나게 되고 오른쪽 높이 솟은 월악산 자락으로 꺾어 올라가면 마의태자 누이동생 덕주공주가 세웠다는 덕주사가 있다.
덕주사에서 월악산자락을 40분쯤 올라가면 산 중턱에 역시 덕주공주가 세웠다는 마애불이 미륵대원지 석조여래입상을 마주 바라보며 서 있어 비록 전설이지만 망국의 한을 달랬다는 마의태자 남매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다.
사자들 가운데에는 비로자나불로 보이는 불상이 앉아있으며 하층기단부에 탑의 이력을 적은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어 본래 9층탑이었음을 알 수 있고 고려 현종 13년(1022)에 몹쓸 적들(거란족)이 물러가기를 기원하면서 세운다는 10행 79자의 해서체 글씨가 새겨져 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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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