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간관계 속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형 중에 ‘수동 공격적 성향’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유형은 소극적이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불만이나 분노를 표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화는 나는데 상대방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니면 화는 나는데 상대방과의 관계가 이 일로 나빠지기를 원하지 않을 때, 상대방의 기분을 거스르게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동 공격적’이라는 단어가 생긴 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상당수 군인이 뽀로통한 태도를 보이거나 고집을 부리면서 상사가 시킨 일을 지연시키는 모습을 보고 정신분석가 윌리엄 메닝거가 만들었습니다.
수동 공격적 성향은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요. 예를 들면 미적미적하다가 아슬아슬하게 일을 끝내서 상대방의 애를 태우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런 건 “당신,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또, 직접 거절을 하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삐딱하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죠. 예컨대 모임에 계속 늦거나 빠지는 건데, 이런 사람은 이 모임에 오기 싫다는 걸 말로 하지 않고 수동 공격적인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런 예도 있죠. 오랜만에 온 가족이 외식하기로 하였어요. 아들이 “아빠·엄마 어디로 갈까요?” 그러자 두 분 다 “우리는 어디든 괜찮아. 아들들이 정하렴.” 하고 말했지요. 그래서 작은아들이 “그럼 우리 패밀리 레스토랑 갈까요?”라고 하였고 그곳엘 갔습니다.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서로 “우~와, 여기 분위기 좋은데.” 하면서 “음식 냄새부터가 다른 것 같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곤 주문한 음식이 나와서 맛있게 먹고 있는데 아버지가 “근데 여기 스테이크 너무 질긴 거 같아. 소스도 너무 맵고….” 하는 순간, 즐겁게 오가던 대화가 끊기면서 갑자기 분위기가 쏴 해졌습니다. 동시에 아버지가 왜 그런 식으로 삐딱하게 말씀을 하시는지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서로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수동 공격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현재의 분위기나 맥락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으로 함께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문제로 삼기도 모호합니다. 왜냐하면, 위의 사례에서 아버지가 이 레스토랑의 스테이크가 질기고 또 소스도 맵다고 한 것처럼 딱히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상황에 어울리는 말은 분명 아니라는 겁니다. 마치 자기 눈만 가리고 숨었다고 착각하는 아이들처럼 자신은 티를 내지 않고 불만을 표현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지요. 위의 사례에서 아버지가 지금 기분이 나쁘다는 걸 가족원들이 모두 알아챈 거처럼 말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이런 수동 공격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거나 일을 하다 보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잘 모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트레스로 느껴지는 강도는 커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동 공격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왜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무엇보다도 자기표현 특별히 감정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다고 볼 수 있어요. 이를테면 누군가에게 화가 났을 때는 왜 화가 났는지를 표현해서 상대방에게 알려야 하는데,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잘 모르거나 아니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을 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나 걱정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수동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동 공격적 성향의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큰 스트레스를 안겨줄 수밖에 없는데, 그럼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수동 공격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그것이 성격처럼 굳건히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성격은 자신이 노력하지 않는 한 쉽게 바뀌지 않고 또 다른 누군가가 바꿀 수도 없는 것처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기 때문에 이런 사람으로 인해 나 자신이 화가 나고 그래서 화를 내기보다는 ‘이런 사람은 이런 식으로 화를 내는 사람이로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괜찮습니다. 이 말은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어떻게 그런 식으로 날 무시하느냐?’라고 따져봤자 이들의 애매모호함 때문에 사과를 받아 내거나 잘잘못을 가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아주 가까운 사이일 경우에는 차근차근 대화를 시도해볼 수도 있겠지요. 어찌 됐든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도 화나는 감정이 밀려오면 어느 때고 수동 공격적 성향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신중년 신노년의 마음공부' 저자 강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