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역 폐사지답사 마지막 순서는 청주의 흥덕사지와 충주의 숭선사지이다.
청주 흥덕사(興德寺) 터(址)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로 찍은 직지(直指), 즉 佛祖直指心體要節(불조직지심체요철)을 주자(鑄字)하고 발간하였던 사찰이며 충주 숭선사(崇善寺) 터(址)는 고려 광종이 어머니인 충주 유씨 신명순성태후(神明順成太后)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 청주 흥덕사(興德寺) 터(址) (사적 제315호)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직지(直指)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의 발명국’이란 사실이 세계에 알려진 것은 1972년이다. 프랑스의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일명 『직지』 로 불리는 금속활자본이 바로 고려 말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는 술렁거렸다.
그 이전까지는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직지』는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데, 이 책은 구텐베르크가 최초로 찍어낸 금속활자본 『42행 성서』 보다 78년이나 앞선 1377년에 간행되었다.
더불어 현전하지는 않으나 『상정고금예문』이라는 책이 1234년에 이미 금속활자로 인쇄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우리나라의 금속활자 인쇄의 역사는 유럽보다도 200년 이상 앞선다.
ㅇ 직지(直指)의 발견
『직지』는 1972년 매우 전격적으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파리 국립도서관의 특별연구원이던 박병선의 역할이 컸다. 박병선은 1967년부터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일했는데, 그곳에서 한국 한문 자료를 분류하고 해제하는 작업을 하다가 『직지』를 발견하였다.
박병선은 이 책이 구텐베르크보다 78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이란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도서의 해 기념 도서 전시회’에서 『직지』가 현전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세계적인 공인을 받았다. 이로 인해 구텐베르크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가라는 학설은 뒤집어졌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직지』는 상하 두 권 중 하권인데, 보통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에 의해 약탈당한 것으로 오인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사실은 1886년 한·불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한 콜랭 드 플랑시가 정식으로 구매해 간 것이다.
플랑시는 이 『직지』를 자신의 모교에 기증했고, 이것이 우여곡절 끝에 경매로 나왔을 때 앙리 베베르가 180프랑에 구입하였다. 이후 『직지』는 앙리 베베르의 유언에 의해 1950년경 파리국립도서관에 기증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ㅇ 직지(直指)는 어떤 책?
『직지』라고 불리는 이 책의 원래 이름은『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매우 긴 이름이라 간소하게 『직지』라고 부른다.
한때는 『직지심경』 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책의 내용이 부처님의 말씀만 기록한 것이 아니고 이후 고승들의 말씀도 가려 넣었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데에 붙이는 “경(經)” 자를 붙일 수 없다하여 최근에는 『직지심체요절』이라고 바꾸어 부르기도 한다.
책 제목이 길어 혼란스러울지 모르나 차근차근 풀어보면 “백운화상이 부처와 고승이 한 선에 대한 말씀 중 중요한 것을 가려 뽑아 모아놓은 책” 이란 뜻이다. “직지(直指)” 란 말은 불교의 ‘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에서 온 말로 ‘참선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보면,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 는 뜻으로 ‘참선 용어’라고 한다.
백운화상은 고려 말 활동하던 승려인 경한의 다른 이름이다. 경한은 정읍 출신으로 어렸을 때 출가하여 중국에 건너갔다. 그는 중국에서 10여 년 간 머물면서 당대 고승이던 지공과 석옥에게 수학하였다.
고려에 돌아온 뒤에는 공민왕 때 국사가 되었으며, 말년에 성불산 성불사에 머물면서 상하 두 권으로 『직지』 를 저술하였다. 『직지』 는 그가 죽은 지 3년 뒤에 제자인 석찬, 달잠, 묘덕의 주도로 1377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되었다. 당시 50~100부 정도 인쇄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ㅇ 흥덕사(興德寺) 발굴
흥덕사는 『직지』 발견 후 관심이 높아졌지만 그 위치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84년 한국토지개발공사에서 청주시 운천동에 택지를 조성하면서 이름없는 절터가 발견되었다.
1985년부터 시작된 발굴과정에서 “…서원부 흥덕사(西原府興德寺)…”라 새겨진 금구(禁口) 조각과 “…황통 10년(皇統十年)… 흥덕사(興德寺)…”라 새겨진 청동불발(靑銅佛鉢) 뚜껑 등이 나왔다. 이로서 이 이름없는 절이 흥덕사란 것이 입증되었고 『직지』에 ‘청주목외 흥덕사’에서 인쇄했다고 하였으므로 이 위치가 바로 『직지』 가 인쇄된 자리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절터는 택지를 조성하면서 반파(半破)되었는데, 발굴 결과 금당지(金堂址), 강당지(講堂址), 서회랑지(西回廊址)의 유구만 확인되었다. 이를 토대로 흥덕사는 남북 중심축에 중문(中門)탑과 정면 5칸, 측면 3칸의 금당(金堂), 그리고 정면 4칸, 측면 2칸의 강당(講堂)이 놓이고 금당의 좌우에 정면 12칸, 측면 1칸의 동서회랑이 배치된 단탑가람(單塔伽藍)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로 보아 흥덕사는 늦어도 9세기에 창건되고 고려 말 혹은 조선 초에 화재로 폐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청동소종(靑銅小鐘)·금강저(金剛杵)·청동용두(靑銅龍頭) 등 청동제품이 많이 출토되어 미술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1986년에 사적 제315호로 지정, 1987년부터 5년여에 걸쳐 절터를 복원·정비하여 정면 5칸, 측면 3칸의 금당을 다시 짓고, 1992년 고인쇄박물관도 개관했다.
세계기록유산 직지(直指) 복본(複本)을 만든다
『직지』 는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이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문화유산 가운데 해당 국가에 있지 않은데도 선정된 유일한 예이다.
아직까지 『직지』는 (하권만)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직지의 역사적 가치를 안 뒤부터 파리 국립도서관은 이를 단독 금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원본을 중요하게 여기는 프랑스의 대외반출 금지로 우리나라로 가져와 전시하려던 노력은 성사되지 못하였으며 돌려받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따라서 원본에 대한 복본(複本)을 만들려는 사업이 추진중이라고 한다.
그동안 직지를 알리려는 교육목적으로 단순하게 이미지를 인쇄해 만든 ‘영인본(影印本)’은 있었지만 복본(複本)은 종이의 재질과 이미지, 제본 방식 등을 원본과 가장 유사한 방식으로 똑같이 만드는 것이다.
청주시는 ‘직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프랑스국립도서관,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와의 업무협약을 추진하고 있으며 상반기중 60개쯤을 만들어 국내 주요 박물관과 도서관 등에서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 충주 숭선사(崇善寺) 터(址) (사적 제445호)
사원배치는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양식으로 남문지·탑지·금당지·영당지·회랑지·동문지 등의 건물지가 확연하며, 건물의 세부적인 유구는 건물 기단부의 화강암 석축기단·주초석·적심석·석축배수로·전돌포장, 답도, 탑의 적심, 우물, 온돌 등이 원래의 모습으로 보존되고 있어 고려시대의 건축유적으로서의 보존이 필요하며 한국건축사사료로서 매우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출토된 유물은 '숭선사(崇善寺)'라고 씌여진 기와, 금동보살두, 동탁, 모정(기와고정못), 분청사기장군, 청자완, 백자완, 귀면와, 치미, 용두, 와당 등으로 이들 유물은 대부분 고려시대의 것으로 사지(寺址)와 유물이 일치된다.
사지의 입구에는 당간지주(1기)가 있으며 민가도 몇 동 있어 마을 이름도 숭선마을로 전래되고 있다.
숭선사지는 고려시대의 사찰유적임이 발굴조사 결과 밝혀지고 유구의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그 역사성과 학술적인 가치가 크다. (문화재청)
고려 4대임금 광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의 기틀을 확립한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숭선사를 건립한 이유도 어머니의 친정인 충주유씨 세력을 규합하고 진천과 청주의 혜종과 정종의 지지세력들을 견제하려는 의도에서였다는 시각이 있다.
남아있는 지주를 보면 윗쪽에 큼직한 간구 홈을 파놓았고 바깥쪽은 모를 죽여 둥글게 하였는데 전체적으로는 세밀하게 다듬거나 무늬 등을 조각한것이 보이지 않는 거친 모습이다. 안쪽 아래쪽에는 역시 당간을 고정시키는 네모진 홈을 파놓은 것이 보인다.
2개의 지주석 사이에 당간을 세우는 사각형 자연석에는 네모진 홈을 2개 파놓았는데 거기에 끼워져 세웠을 당간이 어떤 모습(구조)이었을지 궁금하다.
일제 강점기때 신덕저수지를 축조하면서 석재로 사용하였다는데 지주를 자른 사람이 화를 입어 그나마 서쪽 지주는 남아있는 것이라고 한다.
청주 흥덕사 터는 '직지'를 주조하고 인쇄한 곳이라는 역사적 의미에 비하여는 남겨진 유물이나 흔적이 없어 아쉽다. 충주 숭선사 터도 절 입구쯤 되었을 마을회관 앞에 남겨진 한짝 짜리 당간지주외에는 이렇다할 석탑이나 석등, 승탑이나 탑비 하나 없이 건물터와 축대, 배수로 등만 발굴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한강이남에는 드문 고려시대 창건 절터(숭선사지)라는 점과 흥덕사지에 있는 고인쇄박물관 등을 시간을 내어 찾아가 '직지'에 대한 자료도 살펴보고 세계최고의 금속활자 발명국이라는 자부심을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듯하여 소개한다.
[계 속]
내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 https://band.us/@4560dapsa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