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개인가
산줄기가 막아서도 길은 기어이 이어져야 한다. 길의 천신만고, 하늘을 향해 상승하는 바벨탑의 2차원적 구현… 고개에서 길은 공간감 개방감의 절정에 이르고 지방과 지방을 나누면서 또 연결하는 단절이자 소통이다. 경관은 입체로 드러나고 원경은 훌쩍 다가서며, 지나온 고장과의 기나긴 작별의식이자 새로운 풍경에 대한 설렘이다.
왜 할리데이비슨인가
무겁고 둔중하며 공학적으로도 구시대적인 이 ‘메이드 인 USA’ 모터사이클은 황야를 누비던 카우보이와 무법자들이 타던 애마의 20세기적 부활이다. 거대한 공랭식 V트윈 엔진이 육중한 배기음을 흩뿌리며 고갯길을 치고 오를 때, 이 오래된 두 바퀴는 몸의 일부로 녹아들어 공감각을 확장하고 감수성을 북돋운다. 가랑이 아래에 있는 것은 이미 기계가 아니라 자유와 낭만의 발산을 돕는 동반자다.
왜 싯타르타的인가
2600년 전 히말라야 아래에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는 존재와 죽음, 가치와 도덕에 궁극적인 질문을 던진다. 오랜 방랑 끝에 지독한 내성(內省)의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아냈다. 그의 방법론과 결론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보편의 존재가 아니라 ‘나’를 지목한 그 엄청난 문제의식과 죽음마저 각오한 간단없는 집요함에 경도된다. 길 위에서 틈틈이 떠올리는 사변적 행각은 싯다르타와 유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왜 떠났고 왜 멈췄는가
이 땅을 2차원 평면적으로, 3차원 입체적으로 가장 멀리 오래 여행하는 길을 고개에서 찾았다. 현실을 박찼지만 머지않아 돌아올 것은 분명하다. 정처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리 명확한 것도 아니다. 특별한 사람들을 만날 것으로 기대한 것도 아니다. 공간적으로든 내면적으로든 정지상태를 견딜 수 없으니, 어쨌든 49개의 고개를 넘고 3000KM를 달려 그곳으로 가보는 수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