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6.15 10:49 | 수정 : 2021.06.16 17:07

(2)예순 살의 선물

어린아이는 외부의 것을 주로 입으로 받아들입니다. 입이라는 통로는 단 하나이기 때문에 외부의 것을 오래 담아두기에 적당하지 않습니다. 아직 이도 없는 어린아이는 입에 단 것이 들어오면 무조건 입안으로 삼키거나, 쓴 것이면 약인지 독인지 생각도 없이 곧바로 내뱉어버립니다. 그 행동이 사뭇 공격적이지요.

아이는 자라면서 외부의 것을 귀로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귀는 두 개여서 외부의 것을 양쪽으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고, 한 쪽 귀로 받아들인 것을 다른 쪽 귀로 흘려보낼 수도 있습니다. 입의 즉각적이고 일방적인 내뱉기보다 훨씬 유연한 방식이지요. 귀와 귀 사이의 거리만큼 외부의 것이 독인지 약인지 생각할 여지를 갖고 잘 걸러서 내보내거나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공자는 이런 귀의 기능이 완숙되는 나이를 예순 살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이 예순을 이순(耳順)이라고 했는데요, 예순 살의 귀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어떤 것에도 거슬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그냥 육십 년의 세월만 보낸다고 귀에 아무 거슬림이 없게 되지는 않을 텐데 어떤 내공이 뒷받침되어야 할까요?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 나에게 해당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힘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사진제공=차봉숙/ 사진출처=pixabay

이런 힘은 자기중심이 잘 채워진 상태에서 나오게 되는데 자기중심이 탄탄히 채워져 있으면 외부의 것이 어떤 것이든 거리낄 것이 없게 되지요. 외부의 것이 아무리 고약한 것이라도 나에게 해당하는 것이면 내 것으로 받아들여 약으로 쓰고, 나와 무관한 것은 한 쪽 귀로 흘려보내 귀담아 두지 않는 겁니다. 외부의 것에 의해 감정이 요동칠 일이 없으니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자기중심이 채워져 있지 않을 때 나와 나 아닌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외부의 것에 의해 계속 흔들리게 됩니다. 예순 살이 되어도 이순이 되지 못하는 겁니다.

자기중심을 탄탄히 채우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나에게 결핍된 것, 부족한 것에만 초점을 두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결핍된 부분이 있고 부족한 것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것에만 집중하게 되면 나의 중심은 점점 텅 비어가고 빈 공백을 채우기 위한 탐욕만 더 커지게 됩니다. 탐욕으로 가득하면 내 것과 나 아닌 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도를 넘는 욕심은 좋다고 생각되면 남의 것도 내 것으로 만들고 나쁘다고 생각되면 내 것도 내 것이 아닌 것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순을 3년 앞둔 혜경씨는 상담을 받기 시작했어요.
멈출 수 없는 식탐이 크게 걱정됐거든요.
과식으로 속이 더부룩해 소화제를 달고 살면서도 숟가락을 놓지 못하는 자신이 혐오스럽기까지 했지만, 도무지 음식 조절이 되지 않았지요. 폭식증으로 건강을 다 잃을까 두려움이 컸어요.
그런데 얼마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이상하게도 참을 수 없던 식탐이 뚝 그쳐 버린 거예요.
결혼 전부터 당신의 아들에게 너무 못 미친다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늘 구박만 하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솔직히 혜경씨는 마음이 아주 홀가분해졌어요. 그러니 식욕이 더 왕성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식탐이 없어지니 참 신기한 노릇이지요.
상담하면서 혜경씨는 오늘에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시어머니의 구박 소리가 들릴 때마다 혜경씨 자신이 시어머니보다도 더 자신을 모자라다, 부족하다,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다그쳤고, 그 부족함을 음식으로 채우고 있었다는 것을요. 시어머니 입에서 나온 단점들이 혜경씨의 것이 아니었는데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요.
무엇으로라도 채워지고 커져야 시어머니와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시어머니의 구박이 사라지자 늘 모자라고 부족하다는 혜경씨에 대한 주술이 풀린 것 같았어요. 자신이 시어머니 말대로 그렇게 부족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거짓 허기를 채울 이유가 없다는 것을 혜경씨의 몸이 먼저 알아차린 걸까요?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혜경씨는 3년 후 예순이 되는 날을 그려 봅니다, 온전한 내 것으로 나의 중심이 든든히 채워지고 어떤 것에도 거슬림이 없는 두 귀가 선물로 주어지길, 그래서 진정한 이순(耳順)을 맞이하게 되는 날을 기대하면서 단단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차 봉 숙 (무용동작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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