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을 위해서 자기수용은 필수적입니다. 자기수용이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인데요, 나이가 들어도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비교는 만족과 휴식을 앗아갑니다. 봉우리 하나를 오르면 또 다른 봉우리가 보이고 계속 더 높은 봉우리를 전전하다 마침내는 산의 정상이 어딘지 방향감각을 잃어버립니다. 끝도 없는 남과의 비교는 정상이 어딘지도 모른 채, 내 숨이 아닌 남의 숨으로 헐떡이다 결국은 소진되고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만듭니다.
아들이 오랜 취준생 신분을 벗고 드디어 중소기업에 취직했습니다. 무척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옆집 아들이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그 기쁘고 감사한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조만간 대기업에 취업하는 아들의 모습을 박아놓습니다. 비교의식이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 자식을 다른 사람의 자식과 비교하기에 이르면 자식마저도 불행의 지름길로 내몰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평생 엄친딸(엄마친구 딸), 엄친아(엄마친구 아들)와 비교되어 온 성인 자녀들은 많이 힘들어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대개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 인간은 그리 강한 종이 아니어서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모여서 사는 것이 생존하기에 유리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려니 다른 사람에게 이질감을 주어서는 안 되겠고, 능력도 뒤처지지 않아야 하니 자연스레 다른 사람과 나를 견주어 보는 습성을 갖게 되었겠죠. 다른 사람에 비해 너무 튀게 우세한 것도 조심해야 했습니다. 톨포피 신드롬(Tall-poppy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는데 능력이 특출난 사람(톨포피=키 큰 양귀비꽃)은 공동체의 평등의 질서를 해칠 수 있으니 잘라낸다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너무 특출나면 제거의 대상이 될 수도 있으니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가 생존과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서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비교의식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려 분투하게 하는 동기로 또는 조화로운 평등 관계를 위협하는 요인을 알아차리는데 필요한 적응기제로 우리 안에 남아있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비교의 초점이 온통 다른 사람에게만 몰려있다면 자기의 삶을 살 수 없게 되니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남이 아닌 나 자신과 비교하라고 합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견주어 장점은 더 키우고 단점은 줄여가는 나와의 비교는 자기성장에 바람직하죠.
에스키모인들이 분노를 다루는 방법은 참 지혜롭습니다. 그들은 화가 치밀 때 밖으로 나와 막대기를 가지고 무작정 걷는다고 합니다. 걷다보면 화가 점차 사그라지고 화가 멈추는 지점에 이르는데 그곳에 막대기를 꽂고 집으로 돌아온다고 해요. 처음 꽂은 막대기가 자기 자신과의 비교의 기준이 되는데요, 다음 번 걷기에서 지난번의 막대기가 보이기 전에 화가 멈추게 되면 지난번보다 분노 조절이 더 빨리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성희씨는 오늘도 망상이 심해진 노모에게 또 도둑으로 몰렸습니다. 반복해서 당하는 일이지만 매번 속이 뒤집어집니다. 엄마는 왜 사랑하는 외동딸을 도둑으로 모는지? 치매의 한 증상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 가득한 울화를 참아내기 힘듭니다. 성희씨의 어머니는 일찍부터 홀몸으로 외동딸을 키우느라 많은 걸 포기했습니다. 너 때문이라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젊은 시절의 꿈을 다 앗아간 딸에 대한 원망이 딸에 대한 도둑망상으로 나타나는가 싶어 성희씨는 자신에 대해 더 화가 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희씨는 에스키모의 막대기를 생각하며 오늘도 일단 집을 나와 걸었습니다. 걸으면서 100을 세고 나뭇잎 하나를 줍습니다. 이렇게 걷다 보면 화가 가라앉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됩니다. 오늘은 저번보다 나뭇잎이 몇 개나 줄었을까요? 아니면 더 늘었을지도…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나뭇잎을 하나하나 날려 보내며 그동안 엄마가 자신에게 해 주셨던 일들을 떠올립니다.
생일 미역국은 거의 거르지 않고 끓여 주셨지
배앓이 할 때 밤새 쓸어주시던 따듯한 손길은 지금도 느껴져
미련하다고 머리를 쥐어박기도 했지만 양 갈래머리를 땋아주시기도 했어
백화점에서도 옷값을 깎아달라고 해서 창피했지만
그런 덕에 밥 굶지 않았던 것은 확실히 인정!!
단 하나뿐이어서 세상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울 엄마.
성희씨는 남들 엄마처럼 울 엄만 왜 예쁜 치매가 아니냐고 더 이상 원망하지 않습니다.
차 봉 숙 (무용동작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