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하면 경주부터 떠오르지만 폐사지 답사의 대미(大尾)를 경주로 남겨두고 포항을 먼저 가기로 한다.
신라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세워진 포항지역 사찰들중 현존하거나 전해오는 이름에 오어사(吾漁寺), 천곡사(泉谷寺), 보경사(寶鏡寺), 고석사(古石寺) 등과 함께 법광사(法光寺)가 있는데 이중 법광사 터(法光寺址) 답사 이야기...
▩ 포항 법광사 터 (法光寺址) (사적 제493호)
경북 포항시 북구 신광면 상읍리 일대 법광사 터(法光寺址).
알을 품던 학(鶴)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다는 비학산(飛鶴山, 762m)에서 밝은 빛줄기가 찬란하게 뻗쳐 나오는 것을 보고 26대 진평왕이 신광(神光, 신령스런 빛)이라고 이름지었다는 마을이다.
그 비학산아래 1400년 고찰 법광사 터(法光寺址)가 남아있으니 원효대사가 진평왕명에 의해 창건한 진평왕의 원찰(願刹)이라고 하며 원효와 의상이 주지를 한 곳으로 전해지지만 법광사의 창건과 관련된 정확한 사료는 남아있지 않으며
현장에 남아있는 사리탑중수비(舍利塔重修碑)에 따르면 조선 영조 재위때인 1747년 오층석탑을 중수하였는데 탑을 해체하니 가장 아래층에서 석가불사리(釋迦佛舍利) 22알이 발견되었으며 탑을 중수후 구리함을 따로 만들어 사리와 여러 유물들을 탑에 다시 안치했다고 적혀있으며
1887년(고종 24) 3층만 남아있던 석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1750년 건립한 사리탑중수기(舍利塔重修記)가 발견되었는데 법광사는 대웅전과 별도의 2층금당, 향화전등 525칸의 건물을 갖춘 대찰(大刹)이었다고 전한다.
이 석탑은 1968년 도굴되었다가 뒤에 탑지석(塔誌石) 2매를 수습하였는데 그중 하나에 이러한 내용이 기록되어 중수비 기록과 일치하고 있으며 법광사는 9세기 전반인 신라 제42대 흥덕왕 3년(828년) 김균정이 창건한 왕실사원으로 제46대 문성왕대에 번창했음을 알 수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동경잡기' 등의 조선시대 문헌에도 사찰의 이름과 위치 등이 정확히 기재되어 있다.
현재 절 터에는 석가불사리탑과 연화석불좌대, 쌍두귀부, 당간지주와 사리탑중수비 등 몇몇 석조 유물들이 남아 있으나 국가 및 지방문화재로 지정된것은 없으며, 폐사지 절터는 2008년에 사적 제493호로 지정된 후 그동안 7차례 이상 발굴조사를 진행하여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건물터와 석축, 중앙계단, 답도, 연못터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신광면사무소 앞마당에는 443년(또는 503년)에 세워진 국보 제264호 '냉수리 신라비'가 있어 고대신라의 6부체제와 당시 경제, 법제, 사회, 정치 제도등을 연구하는데 가치가 있는 귀한 자료로 알려지는등 중요한 문화유적이 있는 곳이다.
금당 터(金堂 址)와 연화석불 좌대(座臺)
불상좌대는 한 눈에도 커보인다. 이 좌대에 모신 부처님은 그야말로 장륙불(丈六佛)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인데 금당 터로 보이는 사방 네모진 흙단의 한 변이 약 20m, 높이1m쯤이니 금당(金堂)의 규모가 가히 짐작이 되며 그렇다면 법광사에 있었다던 2층 금당이지 않을까 싶다.
둥근 모습의 하대석은 아랫단에는 칸을 나누어 안상을 새겼으며 그 위로는 큼직한 연꽃잎이 복련으로 덮여있는 조각을 새겼다. 하대의 위에는 중대를 받치는 3단의 받침이 있고 중대석은 8각을 원형으로 둥글게 만든 후 8각의 자리마다 기둥 무늬를 새겼는데 전체적으로 우람하고 듬직한 느낌이다.
외곽으로 흔적이 남은 바닥 석재와 주변에 남아있는 주춧돌들을 살펴보면 5칸과 3칸의 이중구조 건물이었음을 짐작케 해주는데 거기에 2층으로 세운 건물이라면 매우 복잡하고 화려한 중층 건물이었을 듯하다.
삼층석탑(三層石塔)
이 삼층석탑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전해온다. 즉, 1747년(영조때) 석탑을 중수하면서 당시 관여한 스님들이 기단부 덮개돌과 상륜부를 세우기 위한 노반까지를 층수계산에 포함하여 5층석탑이라 한것 같다며 (실제는 3층석탑인데)
후대에 누군가가 (지금의 법광사를 세웠다는 이벽허(李碧虛)스님이?) 기록에 남아있는 5층탑을 만든다고 옥개석 하나를 더 얹어서 4층탑을 만들었다는 것이니, 이때도 4층을 만들어놓고 기단부 덮개석을 추가해서 5층으로 오해한듯하다는 해석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변천(?) 과정인데 아무튼 현재는 3층석탑으로 다시 고쳐 세운 상태이며 기형 4층탑을 만들었던 석재로 보이는 일부가 석가불사리탑 뒤에 놓여있는 것이다.
석가불사리탑비에는 탑을 중수할때 말을 못하는 이가 말하게 되었다는 영험담이 실려있으며 석탑이 5층이라는 구절이 있어 그동안 웃지못할 시행착오가 있었던것 같고, 이 석탑을 지키기 위한 塔契(탑계)가 있었으며, 탑(塔)에 빌어 사내아이를 낳으면 이름에 塔자를 넣었다는 등의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또한 석탑을 중수할때 꿈에서 탑 뒤에 서 있는 부처를 보고 이튿날 그곳을 파보니 이 석가불사리탑비가 묻혀 있었다는 전설같은 얘기가 전해온다.
쌍귀부(雙龜趺)
앞서 30회 연재 '합천 영암사 터' 답사에서는 쌍사자 석등이 특이 유물이었는데 이곳 법광사에서는 쌍거북 비좌(碑座), 소위 쌍두귀부(雙頭龜趺)가 그러하다. 이러한 형태의 귀부(龜趺)는 국내의 절터중에서 이곳 포항의 법광사지와 경주의 3곳, 숭복사지와 창림사지, 무장사지 등 모두 4곳에서만 확인되는데 신라 왕실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곳들인지라 그 사찰들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당간지주(幢竿支柱)
당간지주 윗부분은 모를 죽이고 2단으로 둥글게 깎았으며 안쪽 중앙에는 당간을 고정시키는 홈이 파져 있다. 바깥쪽 면은 가장자리를 따라 띠를 두르듯 안쪽을 파내어 무늬처럼 새겼는데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발굴해내면 좋겠다.
그밖에도 폐사지 옆에 있는 법광사(法廣寺) 경내 3층 석탑앞에는 폐사지에서 옮겨간듯한 배례석이 놓여져 있고 석탑 뒤 석등 옆에는 부러진 석등의 간주석이 서 있는데 제자리에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폐사지 북쪽에는 진평왕을 모셨다는 숭안전(崇安殿)이 있는데 왜 이곳에 이런 건물이 있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법광사(法光寺)가 진평왕의 원찰(願刹)이었다더니 사찰에서 운영하던 사당이었는지 알 수 없다.
냉수리 신라비(冷水里 新羅碑) (국보 제264호)
건립연대는 계미년(癸未年)으로 눌지왕 27년(443) 혹은 지증왕 4년(503) 등으로 추정되며 진이마촌의 절거리라는 인물이 소유했던 재물을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하자 갈문왕을 비롯한 중앙의 귀족들이 합의하여 분쟁을 해소하였다는 내용으로 신라사 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계 속]
내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 https://band.us/@4560dapsa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