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는 만큼 나에 대한 믿음은 줄어듭니다. 모르는 사람을 잘 믿진 않잖아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적으면 다른 사람이 나보다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안다고 여기게 되고, 나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보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더 믿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한 행동이 잘 한 건지 어떤지 확신이 없을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칭찬과 인정은 긍정적인 자아상을 입증해 주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칭찬과 인정은 정서적인 지지를 제공하고 친밀한 관계 맺기와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 특히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의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좋은 평판만이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라는 생각에 붙박이면 칭찬과 인정의 노예가 됩니다. 헤겔이 말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벌입니다.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해 부당해도 거절하지 못하는 예스맨, 자신의 욕구는 늘 뒷전인 착해 빠진 호구가 되는 거죠. 나의 욕구를 주장하고 상대방의 요구를 거절하면 칭찬과 인정을 받지 못할까 봐, 관계가 끊길까 봐 ‘미움받을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물론 괜찮은 사람이고 싶은 소망과는 달리 전혀 괜찮지 않은 사람으로 점점 가라앉으면서요.
아기고래는 발달이 좀 더딥니다. 성미가 급한 엄마 고래 눈에는 매사에 굼뜬 아기고래의 행동이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아요. 아무리 내 새끼지만 칭찬해 줄래야 칭찬해 줄 게 없다며 혀를 찼어요. 엄마 고래가 늘 마땅찮은 표정으로 자기를 쳐다보니 아기고래는 스스로 미운 고래 새끼라고 생각하며 더욱 의기소침해졌죠. 어느 날 아기고래가 뭔가에 놀라 잽싸게 엉덩이를 씰룩거렸어요. 때마침 그걸 본 엄마 고래는 환호성을 치며 칭찬을 퍼부었어요. 아기고래는 자기가 뭘 잘했는지도 몰랐지만 처음 들어보는 엄마의 칭찬에 으쓱해져 어깨가 하늘까지 닿을 뻔했어요. 그리고 안간힘을 다해 엉덩이를 계속 씰룩거렸죠.
‘넌 최고의 댄서야’ ‘난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엄마 고래의 칭찬에 부응하기 위해 아기고래는 밤낮없이 춤 연습을 했어요. 어디까지가 최고인 줄도 모르면서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서요. 온몸이 아팠지만 춤추기를 멈출 수가 없었어요. 춤추기 싫다고 하는 건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는 엄마를 배신하는 거랑 같다고 생각했죠. 춤추는 걸 거부하는 순간 다시 예전의 미운 고래 새끼로 돌아갈까 봐 두려웠어요. 쏟아지는 찬사 속에서 아직도 춤추고 있는 아기고래는 멀리 푸른 바다에서 자맥질하는 친구 고래들이 무척이나 부럽답니다.
칭찬에 인색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다 큰 자식이나 손주에게 칭찬을 해 주고 싶은데 어떻게 칭찬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눈 씻고 봐도 칭찬할 만한 게 없다고요? 눈 씻기 전에 나 자신의 기준을 움켜쥐고 있진 않은 지 살펴보세요. 아기고래는 굼뜨지만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해 내는 기특함이 있었어요. 밥알 하나하나 오물오물 씹어먹는 모습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요? 아기고래의 속도에 맞추기보다 엄마 고래의 기준으로 보니 아기고래가 속 터지게 미련스러워 보였겠죠. 일상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사랑과 관심의 눈길을 주게 되면 칭찬거리는 무궁무진하답니다. 부모의 진심으로부터 나온 작은 칭찬을 차곡차곡 모아서 자식들은 자기 사랑의 밑거름으로 씁니다.
행동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으로 끄덕여주기, 머리 쓰다듬기 등의 비언어적인 칭찬도 매우 효과적인데 말로 칭찬할 때는 왜 칭찬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주는 게 좋습니다. 아기고래는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행동이 왜 칭찬받는지 몰라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다 큰 자식은 물론이고 어린 손주라도 까닭을 모르고 칭찬받게 되면 당황스럽고, 때론 과대평가되는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갖기도 합니다. ‘최고다’ ‘착하다’처럼 비교가 담긴 말이나 도덕적인 평가보다는 행동에 대해 받은 좋은 느낌을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전달하면 좋습니다. 그러면 자식들은 스스로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며 자기 믿음을 키워 갑니다.
칭찬은 어떤 행동을 성취한 것에 대해 격려해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엄마 고래는 엉덩이 씰룩임 동작을 열심히 노력하여 춤으로 발전시킨 아기고래의 성취를 인정해 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자기의 성과로 가져와 자랑거리로 삼았죠. ‘그렇게 열심히 하더니 이런 훌륭한 성과를 이뤄냈구나. 나도 이렇게 기쁜데 너는 어때?’라며 물어줄 때 자식들은 한층 확장된 자기효능감을 실감합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진심 어린 칭찬을 받으며 성장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인정에 목말라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거절도 잘 하게 됩니다. 그런 당당한 모습이 오히려 매력 있어요. 나이가 든 지금도 거절해야 하는데 주저할 때가 있습니다. 야박해 보일까 봐, 착하지 않다고 비난받을까 봐 걱정이 앞서고요. 혹 칭찬받기 위해 심신이 고달팠던 ‘착한 아이’가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쪼그리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그런 다음 거절하지 못해 감당해야 했던 힘겨웠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단호하게 거절하는 연습을 해보는 거예요.
차 봉 숙 (무용동작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