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카르페디엠(carpe diem)’, 곧 현재를 살라고 강조합니다. 현재, 지금 이 순간을 느끼며 사는 것이 소확행(소소하나 확실한 행복)의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이 지금 이 순간을 가득 메우고 있으니까요. 폭염 중에도 간혹 스치는 산바람으로 행복한 순간을 맛볼 수 있지만, 과거의 회한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생각에 빠져 있으면 그런 행복감을 놓치고 맙니다.
과거의 좋은 추억을 기억하고 건설적인 미래를 꿈꾸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진취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을 점령한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들이 회복되지 못한 상처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대부분이라면 현재의 삶을 살고 행복을 누리는 것과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몇몇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하루에 6천 개에서 많게는 7만 개의 생각을 떠올리는데 그중에서 80% 정도가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생각은 어제와 반복되는 것들이라고 해요. 그러니 우리가 무심결에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그것이 반복되는 부정적인 생각인지를 점검해 보고 그 생각을 전환시킬 필요가 있겠죠.
부정적인 생각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것을 ‘반추사고’라고 하는데요, 소처럼 생각을 되새김질하는 겁니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누구나 몇 번은 지난 일을 곱씹어 본 경험이 있을 테지만 ‘반추사고’의 문제는 끊임없는 반복에 있습니다. 동물의 되새김질은 소화를 잘 시켜 몸을 이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지만 부정적인 생각의 끊임없는 되새김질은 사람을 과거의 틀에 가둡니다. 생각은 현재의 시류를 타고 흘러야 하는데 과거의 고인 물에 갇혀 자기 질책거리 찾기에 골몰하게 만드는 거죠. ‘내가 왜 그랬지? 그때 그랬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를 되풀이하면서요. 사람은 지속적인 변화로 성장하는데 반추의 쳇바퀴는 변화의 기회를 빼앗고 우울과 자기혐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합니다.
반추하는 심리는 작은 실수나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에서 옵니다. ‘실수해도 괜찮아, 이번엔 실패했지만 다음엔 잘할 수 있을 거야’라며 실수나 실패를 삶의 보편적인 동반자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프로는 자기 영역에서 해 볼 수 있는 모든 실패를 해 본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이모작, 삼모작을 앞둔 시니어들에게도 유효합니다. 실수나 실패를 과대평가하지 말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겠죠.
반추하는 심리는 전능감에서도 옵니다. 반추할 때는 ‘내가 왜 이것밖에 못 했을까’ 하며 자책합니다. 얼핏 보면 겸손한 것 같지만 사실 반추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전능감,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유아적인 발상에서 나오기 때문에 반성하며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자책의 돌덩이를 시지프스처럼 무한 반복적으로 굴려 올리며 뭔가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러니 자기를 학대하며 변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는 하지 않는 거죠.
와신상담(臥薪嘗膽)은 '장작더미에 누워 복수를 다짐하고 곰의 쓸개를 핥으며 고난을 이겨낸다'라는 고무적인 말입니다. 모멸감에 대한 분노를 반추하느라 월나라 왕 구천은 십여 년이 넘는 세월을 지금 이 순간이 주는 행복감을 느끼기는커녕 마음은 늘 지옥인 채로 살았을 겁니다. 분노를 반추하며 결과적으로 고진감래(苦盡甘來) 했다는 이야기인데요, 복수의 성공이 그 긴 세월의 긍정 감정을 다 보상해 줄 정도로 달콤한 것이었는지는 의문입니다.
늘 누군가에게 짓밟히며 사는 질경이도 와신상담의 주인공처럼 모멸의 삶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요, 질경이는 짓밟힐 수밖에 없는 자신을 자책하지 않았습니다. 짓밟는 대상에 대한 분노를 반추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짓밟는 자들의 발뒤꿈치에 자신의 씨앗을 묻혔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한 거죠. 짓밟는 자를 사용해서 일생의 과업인 종자 퍼뜨리기를 하니 모멸감은 자긍심이 되었습니다. 분노는 감사가 되었습니다. 이런 자긍심과 감사로 질경이는 밟힐수록 강해지는 역설의 식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거죠.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알고 보면 모두 잘 못하고 실패하고 실수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찾아보면 잘한 것도 많습니다. 앞으로 남은 날들을 살아가려면 종종 되새김질하게 될 때가 있겠죠. ‘반추사고’에 빠지지 말고 잘 못 한 것만이 아니라 잘한 일들도 통합해서 되짚어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주는 작은 행복감을 놓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현재를 사는 겁니다.
차 봉 숙 (무용동작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