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8.24 14:19 | 수정 : 2021.08.24 15:07

(12회) 두려움에 대한 태도

살면서 마주치게 되는 죽음, 질병, 천재지변. 가정불화, 생계 등의 문제는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조심하고 대비하게 해서 우리를 지켜주기도 하죠. 두려워하는 감정이 필요한 것이긴 해도 두려움을 반기며 환영할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두려운 상황을 회피하고 싶어 합니다.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죠. 두려워만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고 절로 두려움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은 다들 잘 알고 있습니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핵심은 회피가 아니라 직면하는 태도라는 것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죠. 그러나 알고 있는 대로 마음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알아도 태도로 연결되지 않을 때 몸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갖추어야 할 태도를 몸으로 익혀 몸에 배게 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에는 울퉁불퉁한 돌들이 깔려 있는데요,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발걸음을 조심조심 내딛게 하여 진중한 태도를 가지게 하려 함이었죠. 사당이나 서원의 출입문이 매우 작고 낮은 곳이 있는데 이 또한 들어가기 전에 머리를 숙임으로써 겸손한 태도를 갖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몸가짐을 통해 필요한 마음가짐을 갖게 하려는 겁니다.

두려움에 직면하는 태도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몸가짐이 필요할까요? 회피하는 몸짓의 대표적인 것은 시선을 피하는 겁니다. 그러니 두려움에 직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대상을 직시해야 해야 하는데, 무서운 대상 앞에서는 일단 시선을 피하거나 눈 감게 됩니다. 눈에 안 보이니 피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상황이 오히려 우리를 더 두렵게 만듭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막막한 것보다 뭐가 좀 보여서 알게 되어야 두려움이 덜해집니다. 뭐가 보이고 들려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죠.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에게 매 순간순간은 두려움입니다. 높이뛰기 선수라면 넘어야 할 막대가, 양궁선수에겐 맞추어야 할 과녁이 도전의 대상인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성공할지 실패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성 앞에서 엄청난 긴장과 두려움이 몰려들겠죠. 선수들은 이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넘어야 할 막대를 직시하고 달립니다. 맞춰야 할 정중앙을 직시하며 활시위를 당깁니다. 이처럼 두려움의 대상을 흔들림 없이 직시하는 몸의 자세는 바로 두려움을 직면하는 태도로 이어집니다.

마주할 대상이나 상황이 너무 두려우면 사실 곧바로 직시하는 것 또한 단번에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점진적인 접근을 통해 직시하게 하는 연습이 필요하죠. 액자 기법을 사용해 볼만한데요, 이 방법은 두려운 대상의 이미지를 그려서 액자에 넣고 거리를 줄여가며 쳐다보는 겁니다. 두려운 대상을 액자라는 상징적인 틀에 가둬 옴짝달싹 못 하게 무력화시키고 나면 그 대상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훨씬 쉬워져요. 심리극에서 쓰이는 하이체어(High chair) 기법도 있습니다. 높은 의자나 지물에 올라가 바닥에 있는 두려운 대상(대상의 상징물)을 내려다보는 겁니다. 달라진 위치 때문에 대상과 나의 위계가 바뀌고, 높이의 차이만큼 대상이 왜소해 보여 직시할 힘이 생기게 됩니다.

서양에서는 10월 30일에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 축제를 합니다. 본래는 모든 성인(聖人)을 기념하는 날의 전야제였다고 하는데요, 아이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날 밤, 아이들은 기괴한 분장을 하고 마을의 가가호호를 방문해요. 그러면 집주인은 사탕이나 과자를 줍니다. 한창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휩싸이기 쉬운 아이들은 가장 두려운 대상인 악마나 유령으로 분장하고 무서운 밤길을 무리 지어 다닙니다.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두려움에 직면하기 위해 두려움을 놀이로 풀어내는 거죠. 어른들이 주는 사탕이나 과자는 두려움을 다루는 아이들 나름의 행위에 대한 보상일 수도 있고요.

마주해야 할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은 제대로 나이 드는 어른들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두려움에 직면할 용기가 필요할 때 강가의 능수버들을 떠올려 보세요. 강가의 능수버들은 다른 나무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가지를 위로 뻗어 하늘을 향하는데 능수버들은 가지를 늘어뜨려 물을 향하고 있다는 겁니다. 평소 물살이 잔잔할 때 늘어진 버들잎은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자신을 성찰합니다. 폭우로 나무줄기가 물에 잠기게 되면 버들잎은 자기 모습 대신 거세게 휘몰아치는 물살을 직시합니다. 금방이라도 자신을 휩쓸고 갈지도 모를 두려운 물살을 직시하며 위기의 순간들을 버텨냅니다. 오래 보아야 두렵지 않고, 자세히 보아야 두렵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터득하며 두려움을 직면합니다. 물이 빠진 후 다른 나무들은 다 무너져도 능수버들은 의연히 강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죠. 두려움을 직시함으로써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키운 능수버들은 물가에서만이 아니라 천안삼거리에 옮겨 심어도 잘 자란다고 해요.

차 봉 숙 (무용동작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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