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는 자기만의 고정관념, 선입견에 고착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주로 나이 든 사람들이 꼰대 소리를 듣지만,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는 불통의 90년 대생 꼰대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사고가 경직되어 벽창호 꼰대가 되기도 쉽지만, 반대로 삶의 여러 경험을 통해 한 가지만이 답이 아님을 아는 시니어들이 꼰대에서 탈출하기가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경험과 지혜가 축적되면서 연륜이 쌓이게 되니 나이를 그냥 먹는 건 아니죠. 산전수전 겪은 어른들은 자신이 행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어 주고 싶어 합니다. 꼰대의 출발도 이와 같을 수 있지만 꼰대의 문제는 자신의 생각과 살아온 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충고질의 대가가 되죠. 더 잘 되라고 충고한다지만 섣부른 충고는 대부분 역효과를 낳게 됩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충고는 참견이 되기 쉽고 침범이 되기도 하니까요. 권위를 내세우려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소외되는 게 싫어서 꼰대질을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가 되기 십상이죠.
누구나 기피의 대상인 꼰대가 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나와 있는 꼰대 테스트를 찾아 응답하며 자신의 꼰대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봅니다. 나도 모르게 갖고 있는 꼰대 성향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기능 고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기능 고착’은 인지 편향을 말하는 심리 용어인데요, 대상이나 사물이 가진 일반적인 기능만을 생각해서 그 밖의 다른 기능을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고무장갑을 장갑으로의 기능만 보면 구멍이 났을 때 더 이상 쓸모없어 버리게 되죠. 그러나 고무의 기능도 함께 보면 장갑의 손가락이나 손목 부분을 잘라 다양한 크기의 고무밴드로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한창나이에 생산성을 창출했던 나의 주요 기능은 나이가 듦에 따라 대부분 쇠퇴해지게 마련입니다. 쇠퇴하여 없어지는 기능에 고착되어 있으면 자신이 더 이상 생산적 가치가 없는 쓸모없는 존재가 된 느낌을 갖게 돼요. 그래서 말머리마다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가 튀어나오는 거죠. 현재의 내가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니 과거를 소환하는 겁니다. 과거의 찬란했던 기능 또는 능력에 연연해 하고 그 생각에 사로잡히면 내 안에 있는 다른 기능이 선보일 기회가 없어집니다.
화가 마티스는 말년에 대장암에 걸린 데다가 관절염도 있어서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붓과 물감으로 그렸던 전성기의 기능에만 고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물감으로 그리는 대신 화폭의 색지를 오려 붙였는데요, ‘색종이 콜라주’라는 새로운 기법은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답니다. 마티스는 이를 ‘가위로 그리는 그림’이라 부르며 병중에서도 그리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니 옛 그림을 들추며 ‘라떼는 말이야’를 끄집어낼 필요가 없었죠. ‘지금은 말이야, 이렇게도 그릴 수 있다네’라며 죽기 전까지 작업할 수 있음을 감사했을 겁니다.
꼰대 성향에서 벗어나기 위한 또 한 가지 방법은 ‘역할 고착’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역할도 기능처럼 상실됩니다. 반면에 새롭게 주어지는 것도 있죠. 은퇴 이후 그동안 해왔던 직장 상사의 역할을 잃는가 하면 손주가 생김에 따라 조부모로서의 새 역할이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별이나 나이와 지위에 따라, 또는 가족구성원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며 삽니다. 이 모든 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때로는 그 구분이 없어지기도 하죠. 역할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불변의 것으로 인식하면 새로운 세대와 소통이 되지 않는 꼰대가 되기 쉽습니다. 과거의 성 역할에 고착되어 부엌일을 여성 전담으로 생각하거나, 맏이에게 치우친 부모 부양 책임을 강조한다면 시대를 역류하는 부적응의 꼰대가 될 수 있습니다.
퇴계 이황은 역할 고착에서 벗어난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그는 스승은 가르치는 사람이고 제자는 배우는 자라고 역할을 구분 짓지 않았습니다. 스승도 제자에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자신보다 26세 어린 제자 기대승을 학문의 동반자로 존중했어요. 오랜 기간 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학문적 교류와 공방을 이어갔는데요, 퇴계는 후에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밝히며 편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공(기대승)의 가르침에 힘입어 기존의 망령된 견해를 버리고, 새로운 뜻을 얻고 새 품격을 펼치게 됐으니 매우 다행입니다.’’
노년의 품격은 권위를 내세워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업그레이드할 때 생깁니다. 아직 내 안에서 잠자고 있는 기능을 찾아보세요. 몸 쓰는 일은 못하지만 정감 넘치는 목소리로 동화 구연하는 할머니는 아이들과 잘 소통합니다.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 보세요. 요리를 배워 추석 상을 차리는 할아버지는 더욱 존경받는 집안의 어르신입니다.
꼰대기(번데기의 사투리)가 날개 달린 성충이 되려면 자신의 형태에서 벗어나야 하듯, 사람도 꼰대가 아닌 진정한 어른으로 성숙하려면 스스로 만들어 놓은 낡은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차 봉 숙 (무용동작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