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10.12 16:35

(19) 가면과 민낯

고대 그리스 연극은 노천의 원형극장에서 수많은 관객을 대상으로 행해졌습니다. 멀리서도 잘 볼수 있도록 배우들은 ‘페르소나’라는 큰 가면과 굽이 높은 신발을 신었다고 해요. 큰 가면은 확성기 역할도 했지만 목소리의 음색을 바꿔주기도 했습니다. 배우는 가면과 키높이 신발 때문에 달라진 외형과 목소리로 인해 배역에 몰입하기가 더 쉬웠을 거예요.

모든 사회적 역할에는 사회적인 규범과 기대가 있고 사람들은 그에 맞추어 행동하게 됩니다.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의 연극 배우처럼 사회적인 가면을 쓰기도 합니다.  칼 융은 이 사회적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부르고 사회 적응을 위한 외적 인격이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본성이 매우 나긋나긋한 사람이 법정에 판사로 설 때는 엄정하고 단호한 외적 인격의 가면 곧 페르소나를 갖게 된다는 거죠.

변검이라는 중국의 가면극을 보신 적이 있는지요? 여러 개의 가면들을 관객이 눈치 채지 못하게 계속 바꾸면서 여러 역할을 보여주는 마술과 같은 것인데요, 한 명의 변검술사가 순식간에 가면을 이것저것 바꿔가며 여러 역할을 해 내는 기량이 매우 놀랍습니다.

사진제공=차봉숙
살면서 여러 역할들이 주어질 때 그에 따라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갖기도 합니다. 이때 숙련된 변검술사처럼 역할에 맞게 자유자재로 탈바꿈하는 것이 가능하면 사회적으로 적응을 잘 하는 능수능란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썼던 웃는 표정의 가면을 장례식에서도 계속 쓰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사회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여깁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트랩 대령은 일곱 아이의 아버지인데요, 자식들을 군대식으로 지휘하고 있어서 아이들을 늘 긴장하게 합니다. 변검술사의 탈바꿈이 안 되고 군지휘관의 페르소나에 고착되어 가정에서 아버지의 부재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죠.

사회적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그에 맞게 고안된 가면을 쓰는 것은 내가 소속된 집단과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필요한 일입니다. 중요한 건 가면은 어디까지나 가면일 뿐, 내 얼굴 자체는 아니라는 겁니다. 사회적 가면인 페르소나는 사회적 적응을 위해 차용한 외적 인격이라는 점에서 위선적인 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자신의 민낯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가면입니다. 자신의 본성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들어앉은 페르소나는 탈부착이 가능하고 잠정적인 용도로 쓰여야 합니다.

칼 융은 인생 전반기에는 페르소나를 제대로 형성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회적인 역할을 잘 수행해서 적응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중년기, 인생 후반기에는 사회 규범과 남들에게 맞추는 페르소나에 의해 감춰진 자신의 그림자를 보듬고 온전한 본연의 자기를 찾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 동안 내가 썼던 가면들은 어떤 것들이었나요?

그런 모습의 가면들이 왜 필요했을까요?

더 잘 살기 위해, 더 그럴듯해 보이기 위해 가졌던 나의 페르소나는 어떤 유형들인가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가면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인가요?

혹 벗어버려야 하는데 계속 쓰고 있는 가면은 없는지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배우는 큰 가면과 키 높이 신발을 벗고 원래의 제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무대에서와는 달리 왜소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잠시 소침해질 수 있겠죠. 변검술사 역시 분장실로 돌아오면 끈으로 연결된 모든 가면을 정리하면서 본래의 자기 얼굴을 드러냅니다. 현란한 가면들에 덮였던 민낯이 순간 초라해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나의 참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반갑고 다행한 일입니다. 가면을 벗을 수 없다면, 가면이 내 민낯에 완전 부착된다면 더이상 내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면 안에 갇힌 얼굴이 서서히 부패되어 흔적조차 없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 전통 가면극에서는 탈놀이가 끝나면 탈을 태우는 의식을 합니다. 용도를 다한 가면을 악운과 함께 다 태워 보내는 거죠. 심리극이 끝나면 보조자아들은 ‘역할 벗기’라는 의식을 합니다. 의식를 통해 극에서의 역할이 아닌 현재의 나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함입니다.

가면을 벗는다는 것은 가면에 가려 한동안 빛 보지 못한 그늘진 나의 민낯을 만나는 일입니다.

곰팡이 슨 얼굴 살갗에 볕을 쪼이는 일입니다.

가면을 태워 보낸다는 것은 가면을 써야만 할 수 있었던 역할을 그만 한다는 겁니다. 가면을 쓰지 않고도 내 민낯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당연하게, 당당하게 할 거라는 선언입니다.

차 봉 숙 (무용동작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