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10.29 10:01

(31회) ‘온전한 부모 사랑, 자식 사랑’

몇 년 전에 ‘고독사 유품 전시회’를 다녀왔어요. 유품들과 함께 몇 가지 영상이 상영되었는데, 그중에서 이런 걸 보았습니다.
 
딸이 독일에서 유학 중인 한 남자 어르신은 암으로 몇 년 동안 고생을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이 어르신은 혼자 사셨고 주변 사람들과의 왕래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돌아가신 후에도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발견이 된 ‘고독사’였습니다.
 
모든 고독사가 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그래서 안타까운데, 영상을 보면서 유독 마음이 무겁고 먹먹했습니다. 이유는 그동안 아버지와 딸이 주고받은 편지 때문이었는데, 편지에서 아버지는 딸에게 말기 암인 자신의 병을 숨기고 매번 “아버지는 잘 있다. 아버지 걱정일랑 하지 말고 네 공부에만 전념하라”라고 하였지요. 물론 딸을 위해 자신이 암인 것을 숨긴 아버지의 마음도 일면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딸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어쩌면 딸은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해도 전혀 기쁘지 않고 도리어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영상에서 ‘특수청소’라 불리는 고독사 유품정리를 하는 분도 그러시더라고요. 고독사 하신 분들이 남긴 물건이나 일기장 또는 메모 같은 것들을 보면, 가족이지만 서로가 너무 소통이 없이 지내거나 소통을 하기는 해도 쌍방통행이 아닌 일방통행을 하는 가족이 많은 것 같다고 했지요. 특별히 어르신들의 경우 한 번도 입지 않은 내복이나 양말 같은 것들을 치울 때 마음이 몹시 아리다고 합니다.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의 경우 고독사만이 아니라 치매로 인한 안타까움도 종종 발생합니다. 사실 치매는 그전 단계라 할 수 있는 ‘경도인지장애’일 때만 알게 되어도 약이나 인지 활동을 통해 치매가 진행되는 걸 어느 정도 지연시킬 수 있는데,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의 경우 치매가 많이 진행되고 난 후에야 알게 되니까 가족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자녀들이 한 달에 한두 번 찾아올 때는 부모가 치매인지 아닌지 알아채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치매 부모를 모신 자녀가 가장 화나는 일은 형제들이 가끔 와서 한다는 말이 “어머니 괜찮으신데!”, “이 정도면 양호하시네!”라고 하면서 아직 치매는 아니시라고 우기는 거랍니다.
 
물론 일주일에 여러 번 온다고 해도 잠을 자면서 장시간 살펴보는 것이 아니고 와서 잠시 있다가 가면, 이런 경우도 부모가 치매인지 아닌지 알아채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부모가 경로당에 있는 텔레비전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일이 생기거나 아니면 화투를 치시다 돈을 꾸기도 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는 꾸고도 안 꾸었다고 소리치며 싸우다가 결국 가족들에게 알려지게 되지요.
 
우리는 부모님을 나 자신이 언제고 기댈 수 있는 그러니까 늙지도 않는 어머니·아버지로만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러다 어느 날 부모 중 한 분이 치매에 걸리거나 아니면 거동이 불편해져서 일일이 챙겨 드려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동안 잘 섬겨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급작스럽게 관심을 두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들이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해 부모교육을 받고 그러는 것처럼, 자녀들도 부모님을 잘 돌봐드리기 위한 교육을 받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100시대라 그런지 치매에 걸리는 분들이 늘고 있지요. 그래서인지 어느 교수님은 앞으로는 치매를 발달단계의 하나로 봐야 한다는 말씀까지 하셨는데, 이 말은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신 자녀에게는 치매가 어떤 병인지, 치매를 진단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될 거라는 뜻이겠지요. 더불어 노년기에는 심리적으로 어떤 변화들이 나타나는지, 신체적 건강을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도 알아두면 좋을 겁니다.
 
물론 자녀들만 애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부모들도 명심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씁니다. 특히 베이비붐 이전 세대들은 낀 세대로 호된 시집살이도 해봐서 그런지 자녀들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됐다. 너희들만 잘 살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하는데요, 자식에게 폐가 되고 싶지 않다는 부모의 생각이 어느 경우에는 더 큰 폐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조건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보다 소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우리가 눈이 나빠서 바늘구멍에 실을 꿰지는 못하더라도 실을 꿴 바늘을 준비해드리면 바느질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서로 소통을 잘 할 때 부모 사랑, 자녀 사랑이 더욱 온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신중년 신노년의 마음공부' 저자 강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