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1.12 10:08 | 수정 : 2022.01.12 10:12

<중년을 넘어선 그대에게 띄우는 안부편지>

다시 날자꾸나

연말은 인사이동 시즌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새해가 되어도 인사이동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니어들이 많습니다. 정년퇴직하고 한참 지난 분들이야, ‘그래, 그땐 그랬지’하고 덤덤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들은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한 때입니다.

특히 회사에서 현직에서 물러앉거나 퇴직하는 분들의 경우, 그동안 회사가 내 인생의 전부인 양, 회사와 집만 오가며 대인관계도 회사 관련 사람들과만 맺으면서 그야말로 ‘회사 인간’으로 살아왔다면, 마음이 참 많이 답답하고 추울 수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 현실에서는 정년퇴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행복하고도 행복한 일인데도, 직함을 내려놓은 자신의 모습이 왠지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선 어디 가도 그 직함으로 불리면서 대접받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직함 없이 내 이름 석 자만으로 접하는 달라진 현실 상황에, 심하면 배신감마저 느끼게 되는 거지요.

그중에서도 소위 윗자리에 있다가 퇴직하신 분들은, 예전에는 이른바 중요한 일만 하느라 하찮게 여기던 일들, 가령 혼자서 스마트폰 앱으로 예약하기 같은 아르바이트생도 척척하던 일들도, 쩔쩔매면서 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 앞에서 자존감이 뚝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동안 자신에게 친절하고 후하게 대접해줬던 것은, 직장의 명성과 직함의 후광 때문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순간, 그나마 인성이라도 좋은 사람이라면 주변에 인사하고 때때로 만나 대화를 나눌 사람이라도 있지만, 인성도 챙기지 못했다면 주변의 사람조차 없는 깊은 외로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변화는 당연한 거예요. 대통령도 그 앞에 ‘전’이란 글자가 붙으면 힘이 빠지잖아요. 얼른 받아들여야 합니다.
 
‘회사 인간’에서 ‘회사’라는 날개옷을 벗어버리면 인간만 남게 되지요. 그 ‘인간’이 그동안 입고 있던 날개옷을 벗었을 때 춥거나 부끄러움 대신 자유로움을 느끼면서, 또 다른 멋진 날개옷을 다시 찾아 입고, 더 멋지게 비상할 수 있어야 바람직한 건데요. 허탈감과 무기력감에 스스로 초라함을 느끼면서, 우울하고 불안하고 심지어 때때로 화가 나기도 한다면, ‘아, 지금 내 마음에 비상등이 켜졌구나’ 얼른 알아차리고 대처를 해야 합니다. 남들은 나를 어떻게 보든, 우선 나라도 ‘그래도 열심히 살아왔다’,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게 필요하거든요.

누구나 인정을 받고 싶어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 싶어요. 실제 다른 사람들이 다 인정해도 나 스스로가 인정을 안 하면 만족감보다 미진함이 크잖아요. 그러니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인정하고 격려해주세요. 그리고 다시 훨훨 날 준비를 하자고 달콤하게 속삭여 주세요. 제2의 인생은 경제적으로나 어떤 기술적인 대비보다 먼저 나 자신을 스스로 북돋와줄 때 그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멋진 날개옷을 입고 훨훨 날 제2의 인생의 키포인트는 재미와 보람입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지금도 큰 인구집단으로 늙어가는 우리 사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요.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 성공과 소유를 인생의 목표로 살아온 분들답게, 제2의 인생을 설계할 때도, 이제는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하지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것, 즐길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자꾸 내몬다고 합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도 강박이고요, 마음에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은 그냥 신나서 재미있게 노는 거지, ‘나는 이제부터 재미있게 놀아야겠다!’ 마음을 다잡고 작정해서 놀지 않잖아요? 아마 그렇게 딱딱하게 틀에 잡혀서 놀기 시작하면 노는 느낌도 제대로 나지 않을 걸요?

행복은 성공이나 소유처럼 상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아파트를 몇 채나 가지고 있다 해도 정작 내가 집으로 누리는 공간은 그리 크지 않지요. 하물며 자녀 방에도 잘 들어가지 못하잖아요. 그러니 행복한 제2의 인생, 행복한 제3의 인생을 생각할 때는 마음에 여유부터 채우는 게 우선입니다. 마음을 여유를 갖고 재미를 느끼면서 날갯짓을 하고 비상을 하다 보면 저절로 나 자신을 신뢰할 수 있게 되고, 어느덧 내 비행에 만족하면서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날갯짓을 안 한 지 오래돼서 겨드랑이가 가려운 줄도 모르고 계신 분들도, 올해는 함께 푸드덕 날갯짓하면서 우리 함께 힘차게 날아보기로 해요.

-KBS 3라디오 '출발멋진인생 이지연입니다' 방송작가 권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