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누구를 위해 화장을 하나?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마스크 없이는 외출하지 못하는 시대가 됐는데요. 코로나 시대 초반에는 색조 화장품 매출이 뚝 떨어졌다고 하지요. 화장품이 마스크에 묻어나니까 화장을 잘할 수 없고, 또 화장을 해봤자 마스크를 쓰면 표시가 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여성들 중에는 코로나19의 좋은 점으로, 마스크 써야 한다는 핑계 대고 화장을 하지 않고 출근해도 되는 점을 꼽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마스크를 썼을 때 오히려 더욱 돋보이게 되는 눈을 위한 화장품 매출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고, 특히 ‘필요는 개발의 어머니’라고, 마스크에 닿아도 잘 묻어나지 않는 립스틱과 피부 색조 제품들이 개발되면서, 마스크는 여성들의 화장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걸 증명했지요.
그렇다면 화장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걸까요? 나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서 하는 걸까요, 아니면 사회적으로 예의상 필요해서 하는 걸까요?
항간에는 화장을 두고 소위 사회적인 의무감에서 하는 꾸밈 노동이라고도 하던데요. 화장과 꾸밈 노동이란 말이 주는 느낌은 참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큽니다.
그런데 화장이 꾸밈 노동이기만 하다면, 어떻게 그 많은 홈쇼핑 채널에서 화장품을 팔 때마다 매진사례를 빚을까, 이 코로나 시대에 그렇게 많이 잘 팔리는 데에 대한 의구심이 듭니다. 그래서 혹시 외모에 자신 없는 사람들이, ‘아무리 바르고 꾸며도 효과가 나지 않기 때문에 화장을 꾸밈 노동이라고 폄하했나?’ 이런 어이없는 생각도 잠깐 스쳐 지나갑니다.
게다가 화장을 ‘꾸밈 노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바쁜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로 여기는 분들을 위해, 화장품은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요즘 마치 립스틱처럼 생긴 제형으로, 얼굴에 대고 쓱쓱 긋기만 하면 주름관리 미백관리가 한 번에 된다는 화장품들이 절찬리에 판매 중인데요. 이런 화장품은 남성들 사이에서도 알게 모르게 인기입니다.
이처럼 화장품이 발전하고 진화하면서 그 어떤 시대건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을 받는 것은, 나를 아름답게 멋있게 꾸미고 싶은 마음 때문일 텐데요. 나를 아름답게 멋있게 꾸미고 싶은 마음은 남녀노소 모두의 기본 욕망이지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니까요.
특히, 화장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화장을 하게 되면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과 자존감이 높아지고, 그로 인해 의식하지 않아도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 좀 더 자신감을 갖게 해 주지요. 실제 우울하거나 무기력한 분들은 화장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거울도 잘 보지 않습니다. 화장의 시작은 우선 거울을 봐야 하는 건데, 나 자신에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찬찬히 잘 살펴서 화장을 곱게 하려면, 피부 상태가 어떤지, 또 어디를 어떻게 강조하고 어디를 어떻게 보완해야 좋은지 알아야 하는데,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해 안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여성 분들 중에는 마음이 저 바닥 끝자락까지 내려갔을 때 마음을 다잡기 위해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른다던가, 립스틱을 짙게 바른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마치 예전에 인디언 전사들이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얼굴과 몸에 울긋불긋 칠을 하듯이, 화장이 나 자신에게 용기와 기운을 북돋워주는 예식이 된다고나 할까요..
특히, 나이가 들면 나 자신을 꾸미는 일은 생활에 참 큰 활력소가 되곤 합니다. 실제 어르신들 중에는 경로당이나 복지관에라도 나가야, 제대로 세수하고 뭐라도 좀 찍어 바른다는 분들도 많으시지요.
지금 거울을 한 번 들여다보세요. 거울 속 내 모습이 어떤가요? 이마에는 ‘석 삼자’ 주름, 양 미간에는 ‘내 천자’ 주름, 눈가에는 ‘부챗살 주름’, 입가에는 ‘팔자’ 주름, 목에는 ‘나이테 주름’, 이렇게 온통 주름살만 눈에 띄어서 저절로 한숨이 나오시나요?
나이 들어 주름지는 건 물론 당연합니다. 오히려 우선 주름살이 지도록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에게 칭찬부터 해주세요.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제부터는 주름이 덜 지게 하고 설사 주름이 지더라도 곱게 지어지게 하는 겁니다. 이 말은 의학적인 도움을 받으라는 게 아니라, 매일 아침저녁으로 세수하고 나서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화장을 하라는 겁니다. 로션 하나만 발라도 거울 속의 나를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으로 보면서 피부결 따라 정성 들여 바르는 거예요.
그리고 나를 위한 화장의 마지막 단계, 화룡정점은 바로 ‘미소’ 장착입니다. 거울을 보면서 웃어주세요. 그러면 저절로 이런 말이 입밖에 나오게 됩니다. ‘좋아!’.
-KBS 3 라디오 '출발멋진인생 이지연입니다' 방송작가 권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