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2.23 10:03 | 수정 : 2022.02.23 10:05

<중년을 넘어선 그대에게 띄우는 안부편지>

8. 어떤 노인으로 살까

가끔 나이와 관련해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말 그 나이가 맞냐?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는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어쩌면 아직도 그렇게 일을 하냐?’는 이야기입니다.

일단 이 이야기들의 앞면은 칭찬으로 들립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의 뒷면을 생각해보면 나이 들면 늙은 모습이 당연하다는 건지, 또 나이 들면 일을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건지, 궁금해집니다.

‘칭찬하면 그냥 칭찬으로 들으면 되지, 뭘 그리 깊게 생각하느냐?’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제가 이렇게 칭찬을 분석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많이 변해도 나이와 노인에 대한 우리의 기존 관념은 별로 변하지 않는 것 같아서에요.

우리 마음은 나이 들어도 젊어 보이고, 나이 들어도 일하는 것을 동경하면서, 정작 생각은 여전히 나이 들면 늙은 모습에 일하지 않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고나 할까요.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나이와 노인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은, 이처럼 의외로 참 단단합니다.

몇 년 전에 저희 프로그램에 모셨던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의 김영옥 대표가 최근 새로운 책을 내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질문하고 상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남들이 정해준 대로 늙을 것이다.” 저는 이 말에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영옥 대표는 이런 참 멋진 말도 했어요. ‘사회가 규정한 늙은이 말고 ‘늙은 자기’로 살기’.

실제 노년기에 접어들면 다들 너무나 비슷한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지요. 오죽하면 우스갯소리에, 노년기에는 미모를 비롯해서 지성, 건강 등 모든 게 평준화된다는 얘기가 다 있겠어요. 그리고 여태 그 우스갯소리를 당연한 것처럼 여겼는데, 새삼 ‘나이 들어도 나는 나여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나이 들면서 그야말로 모든 게 평준화되고 비슷해진 ‘노인 1’, ‘노인 2’가 되는 게 아니라, ‘나이 든 권은정’이 되어야겠다는 거지요.

그러면 어떻게 나이 들어야 노인 1, 노인 2가 되지 않고 나이 든 내가 될 수 있을까요?

손자병법에 있는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유명한 구절을 떠올려 봅니다. 손자는 최상의 전략으로, 전쟁하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얘기하면서,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고 말하는데요. 이 지피지기 전략은, 늙어가는 데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참모습을 바르게 알아야, 쏜살같이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아름답게 나이들 수 있을 테니까요.   
 
간혹 젊었을 때 소위 잘 나가던 시절의 나만 나이고, 나이 든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여기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나는 과거에도 나였고, 지금도 나이고, 미래에도 나입니다.

나이 들면서 내가 변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제의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 사이의 간극이 커지게 되고, 그러면 그 간극 때문에 속상하고, 힘들고, 외로워지기 쉬워요. 오히려 나이 들면서 변하는 나를 바로 보고 인정할 때,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나 자신을 더 사랑으로 감쌀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힘이 돼서 노년기에도 발전할 수 있고, 행복도 느끼게 되지요.

더욱이 예전에는 노년학자들이 인생시계를 그릴 때 자정의 위치에 80세를 뒀는데, 지금은 자정의 위치에 120세를 둔다고 하잖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생 백세시대라고 했는데, 이젠 인생 120세 시대를 바라보게 된 건데요. 인생 80세 시대에서 60대는 저녁 6시였지만, 인생 120세 시대에서 60대는 아직 정오라고 하네요. 저녁 6시와 정오가 주는 느낌이 참 확 다르지요?

그런데 이렇게 120세 시대를 바라보는 현재, 장수노인들이 가장 많이 있는 곳이 어딘 줄 아세요? 공기 좋고 물 좋고 경치 좋은 시골이 아니라, 요양병원이라고 해요.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아야 장수의 의미가 있을 텐데, 이러면 말 그대로 ‘장수 리스크’가 되는 거지요.

그러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나는 어떤 노인이 될까?’ ‘나는 어떤 노인으로 살까?’를 꿈꾸고 계획하면서, 능동적으로 나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나이 들어도 나예요. 사회가 규정한 노인이 아니라, 오로지 나이 들어가는 나 자신으로 살 때 노년이 행복하고, 또 고령사회도 희망적인 사회가 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KBS 3 라디오 '출발멋진인생 이지연입니다' 방송작가 권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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