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봄. 봄. 봄.
해마다 봄은 쉽게 오질 않습니다.
봄이 시작된다는 절기인 ‘입춘’은 늘 한겨울이라고 느낄 때 들어 있지요. 그래서 옛 선인들은 겨울의 한 복판에 봄의 씨앗 하나가 뿌려진 모양이라고 ‘입춘’을 풀이하기도 하셨는데요. 그렇게 ‘입춘’ 후 본격적인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 ‘우수’와 ‘경칩’이 지나도 한 겨울 같은 매서운 강추위가 몇 번 지나고, 그러고 나서도 꽃샘추위가 몇 번 지나야 비로소 봄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비로소 봄을 제대로 느끼나 보다 하면, 어느새 봄은 벌써 떠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봄이 오기 위해 이토록 날이 풀렸다 다시 추워졌다 하는 진통을 겪는 게, 그냥 추위만 계속되는 것보다 훨씬 견디기 힘들어서, 봄이 온다는 게 반갑지 않았습니다. 날이 풀려서 두꺼운 옷을 세탁해서 옷장에 집어넣었다가 다시 꺼내 입는 것을 반복하는 것도 참 번거로워서 싫었고, 그렇게 기온이 널뛰기를 하다 보면, 특히 일교차가 많이 벌어지다 보면, 면역력이 떨어져서 감기 걸리기 딱 십상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이름만 예쁜 꽃샘추위의 변덕스러움은 삶에 피곤함을 더해서, 어디서든지 병든 병아리처럼 꾸벅꾸벅 졸게 하는 바람에 질색이었습니다. 사람을 피곤하게 하려면 이름이 예쁘지나 말던가, 이름이 예쁘면 이름값을 하던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늘 하곤 했었지요.
그래서 꽃피는 봄을 기다리고, 봄을 좋아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어떻게 저런 봄을 기다리고 좋아할 수 있을까’, 속없는 분들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화끈하게 더운 여름이나 모든 게 얼어붙은 겨울이 낫다고 비교하면서, 봄을 사계절 가운데 제일 좋아하지 않는 계절로 밀어놓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천명의 나이를 마무리하고 이순을 바라보게 된 지금, 이제야 알겠습니다.
‘봄이 오기가 그렇게 힘들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오고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렇게 애써 오고 있는 봄이,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처럼 참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안쓰럽고, 신성하게까지 느껴집니다.
문득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러니 봄을 기다리고 봄꽃을 반기던 어르신들은, 그런 봄의 저력과 계절의 순리를 알고 삶의 지혜를 깨닫고 계셨던 분들이란 생각도 듭니다. 단지 봄을 맞아 피어난 꽃이 예쁜 것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 과정까지 다 아름답게 보는 거니까요.
나이 들어 봄꽃처럼 밝고 화사한 색깔의 옷이 좋아진다는 분들의 심정도 이해하겠습니다. 젊었을 때는 ‘나이 든 외모에 옷 색깔까지 칙칙하면 더 늙어 보이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옷을 밝은 색으로 입으시나 보다’라고만 짐작했는데요. 그보다 더 깊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흔히 좋아하는 대상이 있으면 그 대상을 닮아간다고 하잖아요, 봄을 좋아하니까 스스로도 봄꽃을 닮고 싶고, 닮아가는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봄은 흔히 우리가 얘기하는 계절의 시작이 아니라, 겨울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겨울을 제대로 잘 보내지 못한 식물은, 죽거나 싹을 틔우지 못하잖아요. 물론 계절은 순환하는 거니까 엄밀히 말하면 계절에는 시작이나 끝이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겨울에서 봄의 변화가 너무나도 확연하기 때문에, 봄을 세상 만물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로 삼는 건데요. 나무들이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아 다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면, 마치 인생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 같습니다.
특히 천년 고목이 봄을 맞아 어김없이 새 순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도 노년기에 그렇게 새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작이 없으면 변화가 없고, 변화가 없으면 결실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노년의 봄은 청년의 봄보다 어쩌면 더욱 소중한 건지도 모릅니다.
올해는 우리 모두 힘들게 오는 봄더러, 어서 와서 제대로 자리를 잡으라고 많이 응원하면 좋겠습니다.
-KBS 3 라디오 '출발멋진인생 이지연입니다' 방송작가 권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