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하순 어느 날. 회사로부터 희망퇴직을 통보받았습니다. 이날 아침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조용한 방에서 잠시 통화를 하자고 해서 요 며칠은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데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다른 일로 전화를 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했지만 나쁜 예감은 예외 없이 들어맞는 법. 수화기 저 너머에서 들려온 얘기는 이번에 회사에서 실시하는 희망퇴직 대상자에 해당하기에 고민해서 몇 일내 답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답이라는 것은 이제 나이도 들고 했으니 이제 커 가는 후배들을 위해 회사를 떠나면 좋겠다는 답변을 기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30여 년 다닌 회사인데 인사에서 갑자기 화요일 연락을 주고 금요일까지 즉 3일 만에 결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명색이 국내 대기업 인사라고 하는 조직이 말입니다.
이러한 인사의 처신에 흥분하고 분노하는 게 잘못일까요?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진작 일 열심히 해서 평가를 잘 받았어야 한다고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저평가자 위주로 희망퇴직을 받는데 무슨 항변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어떤 벌어진 상황에 대해선 반드시 그 전후의 사정을 다 들어야 합니다. 한 부분만을 듣고 판단을 하면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29년째 한 회사만을 다녔고 지금도 다니고 있지만, 개인의 평가라는 것을 정량화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해당 조직의 책임자는 모두에게 객관적이고 만족할만한 결과를 줄 수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러나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커 가는 후배들을 밀어준다고 고과를 늙은이(?)에게 나쁘게 줌을 이해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때의 양보에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조직 책임자와 악착같이 싸워서 왜 내가 부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해 달라고 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게 지금에 와서야 큰 후회로 돌아옵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입사 후 미우나 고우나 30여 년 다닌 회사입니다. 부부간에도 처음엔 사랑으로 출발했지만 나이 들어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 정으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이 조직이라는 것은 그런 정으로 살아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30여 년 그 회사를 위해 그 회사가 미우나 고우나 회사의 성장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왔던 직원을 이렇게 며칠 만에 내친다는 것은 인간이 할 도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이 종을 내치는 것과 진배없다고 생각됩니다. 회사의 경영진이야 회사라는 조직을 하루아침에 떠나도 그들이 받은 보수로 퇴직 후에도 얼마든지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회사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회사원은 매달 일정한 날에 들어오는 몇백만 원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한 달에 몇천만을 받는 임원들에 비해 너무나 빈약한 급여입니다. 또 누가 옆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하겠지요. 꼽으면 출세하고 임원 달면 되지 않느냐고. 맞는 말입니다. 꼽으면 출세하면 됩니다. 대기업에서 임원 될 확률이 500명 중 1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열심히 해서 1등 하면 됩니다. 열심히 하지 않은 나를 탓해야지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1명이 임원으로 진급하고 나머지 499명의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도 괜찮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좀 더 가진 사람이 덜 가진 사람과 손을 맞잡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요?
처음엔 전화를 받고 홧김에 바로 희망퇴직 신청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학교 졸업도 못 한 애들과 아내를 생각하니 선뜻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좌절감이 밀려왔습니다. 퇴근 후 아내도 역시 회사에 대해 섭섭함과 배신감은 느끼겠지만 조금만 더 참고 견디자고 했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해서 조금만 더 경제적인 안정을 갖추면 그땐 미련 없이 떠나라고 했습니다.
“희망퇴직.” 신문이나 언론에서 수없이 봐왔지만 남의 일이라 생각했고 그 상황을 닥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 못 했는데 막상 본인이 당하고 보니 그분들의 좌절감과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당시에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에 대해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