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3.23 11:39

<중년을 넘어선 그대에게 띄우는 안부편지>

12. 똥입

예전에는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장소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할 때, 지인들에게 많이 물어봤습니다. 특히 데이트 약속을 잡은 친구들이 많이 그랬지요. 그래서 그런 정보에 훤한 분들은 주변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TV 프로그램에서 맛집이나 명소들을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TV에 나온 곳들이 사람들한테 인기를 끌기 시작했지요. 그러다 보니 너도나도 TV에 나오기 위해 애쓰고, ‘TV에 나온 집’이라는 게 아주 대단한 홍보 문구가 되기도 했는데요. 그런 맛집 소개 프로그램들이 방송국마다 많아지면서 ‘TV에 나온 집’들이 너무 흔해졌고, 심지어 한 골목에 있는 음식점들이 죄 ‘TV에 나온 집’이라는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적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뭐 먹을까?’, ‘어디 갈까?’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인터넷 검색입니다. 지자체에서 올린 공식 홍보물은 물론이고, 요즘은 블로그 활동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 분들이 직접 경험하고 올린 블로그 내용을 많이 참고하게 되지요.

그런데 TV에 소개되거나 인터넷 검색에서 상위에 랭크된 곳들 중에, 잔뜩 기대하고 갔다가 기대에 못 미쳐 실망하고 돌아온 경험이 있지 않으세요? TV에 소개될 때는 좋은 재료도 엄청 많이 들어가고 깨끗하고 맛있어 보였는데, 실제 가보니까 그렇지 않다든가, 또 요즘은 블로거가 대가를 받고 홍보성 글을 올리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래서 인터넷 시대인 요즘도 ‘어디가 좋다’는 정보를 접하면, 친한 지인들한테 “거기 좋다던데, 가봤어?”, “가보니까 어때?”하고 한 번 더 확인하게 되고, 가봤다는 지인이 정말 좋다고 하면, 그제서야 ‘정말로 가봐야 할 곳’ 0순위로 꼽게 됩니다.

최근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 친구가 ‘어디가 좋다, 거기 어떤 음식이 맛있더라’ 하는 다른 친구의 말만 믿고 똑같은 곳에 가보고 똑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소위 ‘별로였다’고 합니다. 그 후 그 친구를 만나서,
“세상에 믿을 인간 없네, 네가 저번에 좋다고 한 데 가봤거든. 맛있긴 뭐가 맛있냐?”
“왜? 난 맛있기만 하던데! 맛있지 않았어?”
“아이고, 너 한 사흘 굶고 거기 갔냐?”
“큭큭, 그래그래, 나 똥입이다, 똥입.”

똑같은 음식이지만 누군 좋고, 누군 별로고,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요? 정말 한 친구의 입맛이 가진 품격이 ‘똥입’ 수준일까요?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평균이 되는 객관적인 기준은 있게 마련이지만, 아름다움과 좋다는 감정은 어차피 주관적인 거니까요. 똑같은 현상과 사물도 내가 그 안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느냐에 따라, 받게 되는 느낌이 다르게 마련이잖아요.

거기 음식이 좋다고 느낀 친구는 그날따라 기분이 좋아서 뭘 먹어도 좋게 느낄 만한 상황이었고, 거기 음식이 별로라고 느낀 친구는 입맛이 좀 까탈스러운 데다 그날따라 기분도 그리 썩 좋지 않았던 상황이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두 친구 다 맛에 대해선 괜찮다고 느꼈다 해도, 기분이 좋았던 친구는 가격과 모든 상황까지 좋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별로’라로 느낀 친구는 이 정도 맛에 이 가격은 아니라고 평가할 수도 있었던 거지요.

그 말 아시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간 곳이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은 음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신혼 때 살이 찌는 분들이 많습니다. 엄마보다 음식 솜씨가 덜한 아내가 해주는 음식이라고 해도, 서로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눈길로 마주 보고 앉아서 함께 먹는데, 뭔들 맛이 없겠습니까? 그러니 먹으면 먹는 대로 살이 찌는 거지요.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눈치 있는 남성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엄마가 해다 주신 음식을 아내와 함께 먹는 음식’이라는 말도 하더군요.
    
‘똥입’은 맛없는 것도 맛있다고 느낄 만큼 객관적인 입맛이 아주 형편없는 게 아니라, 긍정적이고 사랑이 가득한 내 마음이 만들어낸 특별한 입맛인 셈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오감은 마음에 작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데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내가 어떻게 보고, 또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하지요. 이왕이면 똥입같은 마음으로 이 세상에 천국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살면 좋겠습니다.


-KBS 3 라디오 '출발멋진인생 이지연입니다' 방송작가 권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