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노인과 누님, 형님의 차이
사람 마음이라는 게, 소위 ‘립서비스’ 인사인 줄 짐작하면서도 ‘젊어 보인다, 예쁘다, 멋있다’ 이런 얘기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지요. 나이 들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젊은 사람이 연세 있으신 분들한테 ‘누님’이나 ‘형님’이라고 하면 버릇없다고 할 텐데, 요즘은 기분 좋게 듣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죽하면 10여 년 전, ‘오빠만 믿어’라는 노래를 발표한 트로트 가수 박현빈씨가, 콘서트 때 무대에 등장하면서 어머니 나이 또래인 팬들과 관객들에게 ‘립서비스’로 제일 먼저 외친 말이 ‘오빠 왔다!’였다고 하겠어요. 그 소리를 들은 어머니 나이대의 팬들과 관객들이 쓰러질 듯 좋아하면서 환호를 했다고 하지요.
그럼 이런 ‘립서비스’ 말고, 실제로 우리 국민들은 몇 살부터 노인, 어르신이라고 생각할까요? 일단 예전처럼 환갑이 넘으면 노인이라는 시각은 없어졌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과 기초연금법에 따른 수급 대상 기준이 65세여서 그렇지, 이제 60대를 노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이 줄었지요. 실제로 202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이 생각하는 노인 시작 연령은 70세가 46%로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연령보다도 의식 수준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40대도 예전의 고루한 생각과 고집에 젖어 있으면, 젊은 꼰대라고 해서 노인 취급을 받잖아요. 그러니 노인이 되어도 젊게 살려면 젊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어야 하고, 그러자면 젊은 사람들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장노년들의 눈에는 요즘 젊은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가령 극장에 가서 일반 티켓 값을 내고, 스크린에서 장작이 조용히 타는 장면만 30분을 보고 나온다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지금의 장노년 세대는 어려운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일단 뭐든 돈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잖아요. 그래서 극장에 가는 수고로움과 티켓 값을 지불했으면 그에 응당한 영화를 봐야 한다고 여기실 수 있는데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소위 ‘멍 때리기’를 위해 그런 수고로움과 돈을 지불한다고 합니다.
그동안 하도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리저리 떠밀려 살고 현실에 지치다 보니까, 이제는 그런 것들로부터 물러나 잠시 쉬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래서 한 공중파 TV(EBS)에서도 그런 ‘멍 때리기’를 위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냥 죽 보여주는 프로그램(가만히 10분 멍)을 1년 6개월이 넘도록 방송했을 정도입니다.
어쩌면 장노년들 중에는 ‘아니, 쉬고 싶으면 눈 감고 쉴 일이지 굳이 그런 걸 보면서 쉬냐’고 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요즘 젊은이들은 쉴 때도 그런 걸 보고 듣고 돈을 써야, 쉰다고 한답니다.
또, 책도 그렇습니다. 책이라는데 펼쳐보면 글자는 몇 글자 안되고, 흰 여백이 훨씬 많거나 낙서 같은 그림이 주요 내용인 책이 값도 결코 싸지 않다면, 장노년들은 그런 책을 뭣하러 돈 주고 사서 보냐는 말씀을 많이 하시겠지요.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런 책을 보면서 감성과 창의성에 자극을 받는다고 해요. 오히려 활자만 가득한 책은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져서, 값이 싸도 손이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영화나 콘서트도 그래요. 장노년은 한 번 봐서 내용을 다 아는 영화나 콘서트를 또 가서 돈 주고 보는 건 낭비라고 생각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좋아서 몇 번이고 또 가서 봅니다.
배달 사업이 호황인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장노년층은 음식을 시켜먹을 때도 배달비가 아까와서 배달비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면 주문하려다가도 멈칫하게 되지만, 젊은 층은 커피 한 잔도 배달비를 추가로 지불하면서 배달시켜 먹고, 그게 바로 하루 고생한 자신을 위한 위로라고 여긴다고 하지요.
이런 몇 가지 사례만으로도 세대차를 많이 느끼셨을 텐데요. 젊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외모가 나이보다 젊게 보이고, 스스로는 젊게 사는 노인인 척 해도 젊은 사람들 보기에는 어쩔 수 없는 ‘찐 노인’이 되어버립니다. ‘요즘 젊은것들은..’하면서 쯧쯧 혀를 찰 게 아니라, 일단 머리로라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 때와는 다르구나 인정하고, 나아가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시면 좋겠습니다.
-KBS 3 라디오 '출발멋진인생 이지연입니다' 방송작가 권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