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힘들고 좋지 않은 일과 맞닥뜨렸을 때 위안과 용기를 얻는 말이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명언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 진짜 명언이 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성경 주석인 ‘미드라쉬’에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기술한 부분이 있는데, 기원전 1000년에 고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추대된 다윗왕의 반지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고 해요.
다윗왕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서 그 승리의 기쁨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반지를 만들기로 하고, 반지세공사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를 위해 반지를 만들거라, 다만. 그 반지에 내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게 될 때 그런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도록 하라. 동시에 내가 절망에 허우적 거리게 될 때 그 글귀를 보고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반지세공사는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지만, 다윗왕의 명령대로 반지에 새겨 넣을 글귀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오랜 시간을 고민하다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합니다. 그 말을 전부 들은 솔로몬 왕자는 이렇게 조언을 했다고 하지요.
“반지에 이렇게 새기시오. ‘ 이 또한 지나가리라!’(Hoc quoque transibit)” 이런 글귀를 생각해내다니, 정말 솔로몬은 ‘지혜의 왕’답지요?
세상사라는 게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고, 늘 변화하는 건데요. 그러니 좋은 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 겸손하고 근신할 줄 알아야, 좋지 않은 상황도 그처럼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좋을 때는, 좋은 게 천년 만년 갈 것처럼 좋은 기분에만 취해있기 일쑤고,나쁠 때는 다시는 좋을 때가 없을 것처럼 낙담하고 의기소침하게 되지요.
하지만 이 세상은 극과 극이 만나 조화를 이루면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낮과 밤이 그렇고, 높고 낮음이 그렇고, 길고 짧은 게 그렇고, 안과 겉이 그렇고, 암수가 그렇고, 따져보면 세상 모든 게 그렇습니다. 그래서 극과 극은 닿아있다는 말도 하지요. 겨울이 끝나면 계절이 완전히 끝나는 게 아니라 다시 봄으로 시작하니까요.
우리 선조들도 예로부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이라고 하면서, 이런 가르침을 후대에 전하셨습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한 번 성하면 반드시 쇠한다’는 뜻을 가진 말이죠. 속담이나 사자성어에는 이와 비슷한 뜻을 가진 말이 많습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나 전화위복(轉禍爲福)도 지금 상태가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걸 나타내는 사자성어지요. ‘권불십년(權不十年)도 그렇습니다. 지금의 권력이나 부귀가 영원할 듯하지만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말입니다. 이 말들은 모두 세상 이치의 기본이 되는 원리는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한번 스스로 혹시 내가 치우친 면이 있나 없나 살펴 보시지요. 사실 이렇게 스스로를 살피는 정도만 되어도 인생의 상급생입니다.
리고 우리 선조들은 지금처럼 평균수명이 길지 않던 때에도 노욕(老慾)과 노추(老醜)를 경계하셨는데요. 나이 들면서 천년 만년 살 것처럼 노욕(老慾)과 노추(老醜)를 부리지 않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웰다잉(Well-Dying)을 염두에 두는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흔히 죽음은 삶의 반대이고, 삶의 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요즘은 죽음을 삶의 완성으로 많이 생각합니다. 청춘이 지나 노년을 맞이했고, 노년이 지나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이치를 깨닫는 거지요. 그래서 웰다잉(Well-Dying)이라는 말도 하는데요. 웰다잉(Well-Dying)은 궁극적으로 웰빙(well-being)과 맞닿아 있습니다.
실제 주변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분들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그 전과는 180도 달라져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 전에 부나 사회적 위치처럼 기를 쓰고 매달리던 일은 하찮게 여기고, 건강이나 감사, 베풂처럼 상대적으로 중히 여기지 않던 일들을 귀히 여깁니다.
또 하나, 모든 것의 중심에 나를 두지요. 내가 즐거워하는 것, 내가 행복해 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추구합니다.
그리고 이런 말들을 합니다. “진작 이렇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겠냐”.
나중에 즐거워하겠다, 나중에 행복하겠다, 나중에 사랑하겠다, 이렇게 지금의 즐거움과 행복과 사랑을 유예하는 것만큼, 미련한 일도 없습니다. 나중에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고, 그러면 평생 즐겁지 않고, 행복하지 않고 사랑도 모르는 삶을 살게 될 테니까요. 게다가 행복은 삶을 사는 태도이고 습관이기도 하잖아요.
힘든 오늘도, 기분 좋은 오늘도, 그 어떤 오늘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에서 예외는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거움과 행복을 많이 만들어가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