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노인, 어르신 vs 인생선배
요즘은 나이 차이와 관계 없이 함께 운동하시는 분들 많으시지요. 그래서 그렇게 운동하다보면 제일 연장자를 큰 형님이나 왕언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이 큰 형님이나 왕언니 위치에 서 있는 분들은 더욱 더 열심히 운동을 하시게 된다고 해요. 아래 연령대의 분들이 ‘아, 저 연세의 분도 저렇게 젊게 생활하고 노력하시는데, 나도 분발해야겠다’ 하면서 자신을 본보기로 삼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그렇게 지켜보는 후배들의 눈 때문에라도, 게으름을 부리거나 대충 하고 싶어도 절대 그럴 수가 없다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하긴 아래 연령대의 분들한테 본보기가 되어야지, ‘나이 들면 저렇게 되나봐’ 하는 식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면 곤란하겠지요. 특히 ‘나는 나이 들어서 저러지 말아야지’하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예가 된다면 차라리 ‘뒷방 노인’ 신세가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함께 운동하는 모임에서는 각자의 정확한 나이를 밝히지 않는 게 불문율입니다. 정확한 나이를 알게 되면 왠지 모르게 나이 따라 서열이 생기게 되고, 함께 어울려서 평등하게 운동하는데 나이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이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실제 똑같이 열심히 운동하는데, 나이 든 사람에 대한 배려랍시고 ‘나이 드셨으니까 힘드실텐데 좀 쉬세요’라고 하면, 그건 당사자에게 어쩌면 오히려 마음에 상처를 주는 실례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또 그러면 그보다 젊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이 든 사람과 함께 운동하는 게 왠지 부담스럽고 마음 불편한 일로 여겨질 수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요즘은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굳이 나이를 밝혀서 나이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으로 자신을 판단하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소위 잘 늙어가는 분들은 나이 들수록 언행이 참 조심스럽다고 하세요. 모든 방면에서 단지 보호와 배려를 받아야 하는 나약한 노인이 아니라, 이 사회를 먼저 살아본 선배시민으로 책임감 있게 처신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실제 요즘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 선배시민들이 많아지고 있고, ‘선배시민’이라는 말이 ‘노인’이나 ‘어르신’이라는 말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노인이라는 말도, 어르신이라는 말도, 현재의 장노년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아서, 영어로 ‘시니어(senior)’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비로소 요즘 노년에 걸맞는 용어가 생긴 셈이지요.
선배시민은 인생의 선배로서 사회의 본보기가 되고, 또 지역사회 공동체에 참여해서 도움을 주면서, 노년기에도 자아를 실현하는 분들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적극적인 삶의 주인이 돼서, 그를 통해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도 누리고, 또 후배시민들에게 도움도 주고, 국가안정과 발전에도 기여하는 시민을 뜻합니다.
특히 나이 들어 나와 내 자식을 위해서만 살면 아무리 건강하고 활기차도 결국 ‘뒷방 노인’ 신세를 벗어나기 힘듭니다. 오히려 내 것만 고집하고 이기적인 노인으로 잘못 늙어가기가 쉽지요. 그렇게 되면 주변에서도 사회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가 됩니다.
사회복지 분야 전문가인 유해숙, 유범상 남매 교수가 펴낸 <선배시민>이라는 책에는, ‘노인이 되면 남의 자식과 공동체를 위해 살아라. 그것은 자식과 가족을 위한 또 다른 길이다.’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문득 나이 들어 제일 듣기 좋은 말이 어떤 말인지 생각해 봅니다.
“여전히 젊어 보이고 아름다우시네요” 또는 “와, 아직도 현역이시군요” 이런 말인가요?
물론 그 말도 듣기 좋은 말이긴 하지만, 정말로 마음을 흔들어놓는 찬사는 따로 있습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나이 들고 싶어요.”, “선생님은 제 롤모델이세요. 선생님을 닮고 싶어요”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내가 세상을 잘 살아왔구나 하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것 같습니다.
청년들, 소위 MZ 세대는 지금의 장노년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그립니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어야지, 또는 나는 저렇게 나이 들지는 말아야지.’ 그러면서요. 만약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젊은 세대가 ‘난 저렇게 나이 들지는 말아야지’, ‘저런 노인 닮으면 큰일이다’ 한다면, 얼마나 세상을 헛산 것 같고 부끄러울까요?
지금 내 모습이 예전에 내가 닮고 싶어 하던 인생선배의 모습이 되고 있는지, 마음 속 거울을 꺼내 한 번 비춰보시지요.
-KBS 3 라디오 '출발멋진인생 이지연입니다' 방송작가 권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