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사랑은 늘 현재 진행형
겨우내 흑백영화 같던 세상이, 봄이 되면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꽃들과 새로 돋아나는 연두색 잎새들 덕분에 총천연색으로 탈바꿈하게 되지요. 정말 요즘은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꽃대궐, 꽃천지입니다. 이 꽃이 지면 저 꽃이 피고, 저 꽃이 지면 또 다른 꽃이 이어서 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봄꽃들 가운데 벚꽃은 분홍색으로 화사하게 피어나서 유독 많은 사랑을 받는데요. 올봄에도 벚꽃을 보면서 옛 추억에 젖은 분들, 많으실 거예요.
‘그래, 딱 이맘때야. 나 20대 때 밤 벚꽃놀이 미팅도 했었어..’ (예전에는 ’야(夜) 사꾸라팅‘이라고 했었지요)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꽃들은 변함없이 아름다운데, ‘나는 이렇게 변했구나’ 하는 생각으로 불현듯 마음에 일교차가 생기기도 하셨을 거예요.
다행히 올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좀 완화돼서, 벚꽃으로 유명한 여의도 윤중로에도 꽃구경 나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바람에 길도 막히고 주차하는 데도 애를 많이 먹었지만, 꽃이 활짝 피어도 코로나 때문에 꽃구경하는 사람이 없던 때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꽃들은 자기를 보라고 예쁘게 피어나는 거잖아요. 아마 꽃들이 노래를 한다면 이럴 거예요.
‘♬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 날 보러 와요, 날 보러 와요’
그러니까 꽃구경 나온 분들은 꽃들의 부름에 제대로 답을 하신 건데요. 그중에서도 젊은 시절 분홍 벚꽃 구름 아래 뽀뽀도 하고, 팔짱 끼고 걷던 사람과 여전히 손 꼭 붙잡고 걷는 부부들은 참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새로운 사랑의 인연과 걷는 분들도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떨어져 걸어도 함께 꽃구경 나온 부부나, 친구와 함께 꽃구경 나온 분들도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렇게 벚꽃이 마음을 간지럽혀도 ‘아, 예쁘다, 아, 사랑하고 싶다’ 이런 감정이 떠오르지 못하는 분들이 계실까요? 그러면 큰일입니다.
가령 배우자가 벚꽃 구경하러 가자고 했을 때 “굳이 정신없이 복잡한 데를 왜 가? 우리 아파트 단지에도 꽃 폈더라, 그거 봐”
아니면 “그런 데는 젊은 애들이나 가는 거야. 나이를 생각해”
만약 이런 식의 대화를 하신 부부들은 설레는 사랑은 언감생심 바라지 않더라도, 애정표현이나 스킨십을 언제 했는지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젊었을 때 사랑에 빠졌을 적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사랑은 아주 작은 것, 별 것 아닌 것을 함께 하면서 행복해하는 거잖아요. ‘벚꽃보다 자기가 더 예쁘다’는, 말도 안 되는 지극히 주관적인 말을 당당하게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손 한 번 더 잡아보려고 하고, 실상 달기만 하고 맛도 없는 솜사탕을 들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표정으로 ‘자기 한 입, 나 한 입’하면서 서로 뜯어 입에 넣어주고, 별로 웃기지도 않은데 계속 ‘하하호호’ 함께 웃을 수 있었던 건, 분명 사랑의 힘 덕분이었습니다.
물론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건 연애시절의 불같은 사랑 - 육체적인 사랑에 해당되는 말이지요. 나이 들면 그런 불같은 사랑은 식을 수 있지만, 사랑이 퇴색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함께 하는 세월이 더해질수록 곰삭은 깊은 정이 쌓이게 되니까요.
그리고 ‘잡은 고기에게 먹이 주는 것 봤냐’는 고약한 우스갯소리도 있는데요. 세상에 제일 실속 없는 게, 남한테는 친절하고 예의 바르면서, 정작 평생을 함께 할 자신의 배우자에게는 무뚝뚝한 겁니다. 세상에 자기 ‘고기’에게 먹이를 줘야지, 자기 ‘고기’에게 안 주고 대체 어떤 ‘고기’에게 먹이를 주겠다는 건가요? ‘잡은 고기’가 아내이든 남편이든 간에, 부부는 서로에게 계속 ‘먹이’를 줘야, 평생 알콩달콩 부부로서의 재미를 느끼며 살 수 있습니다.
꽃피는 봄에는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천년 된 고목도 봄을 맞아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데, 이 봄에 사랑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문제예요. 더욱이 서로 평생 사랑하기로 약속한 사이잖아요.
만약 “저 영감탱이, 자기가 이팔청춘인 줄 아나? 무슨 사랑 타령이야”, “저 여편네, 무섭게 무슨 사랑 타령이야” 이런다면, 그동안 너무 메마른 감정으로 살아온 부작용 탓이 큽니다. 그러니 그럴 땐 얼른 달콤한 사랑의 노래를 듣는다든지, 애정 영화를 찾아보신다든지, 아님 돋보기 쓰고 연애소설이라도 읽어 보시지요.
사랑은 늘 현재 진행형이어야 합니다.
-KBS 3 라디오 '출발멋진인생 이지연입니다' 방송작가 권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