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5.03 15:24

<중년을 넘어선 그대에게 띄우는 안부편지>

18. 꽃들의 대화

보통 어떨 때 기분 좋고 행복하세요? 

혹시 누구와 똑같이 집을 샀는데, 그 사람 집값은 그대로이거나 떨어졌지만, 우리 집값은 올랐을 때, 기분 좋고 행복하세요?  그럼 반대로 누구와 똑같이 집을 샀는데, 우리 집값은 그대로이거나 떨어지면, 기분이 몹시 나쁘고 불행하신가요?

나는 ‘내 집이 있어서 행복하다’가 아니라, 남의 집과 비교해서 ‘남의 집보다 나아야 행복하다’ 면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낮은 건 절대적인 행복이 아니라, 그런 상대적인 행복에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요즘 전국이 피어나는 봄꽃과 돋아나는 파란 새잎들 오색찬란한데요. 이런 자연들을 보고 배우고 그대로 따라 살면, 세상에 화나고 속상하거나 불행할 일이 없을 것 같아요.

목련은 자기 꽃송이가 크다고 뽐내지 않고, 개나리는 진달래와 아름다움을 비교하지 않고. 벚꽃은 자신이 가장 화려하다고 다른 꽃들을 우습게 보지 않고, 꽃들은 ‘내가 먼저 피어나겠다’고 다투거나 싸우지 않고, 서로 묵묵히 자신이 피어날 곳에서 자신이 피어날 때에 열심히 자신의 꽃을 피우잖아요.

그런데 이런 자연에 비하면 사람들은 툭하면 뽐내고, 비교하고, 남을 우습게 보고 늘 내가 우선이지요.

심지어 요즘은 부모조차 자식의 대기만성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특히 잘난 부모일수록 더 그렇지요. 그래서 이런 저련 편법을 써서 자식의 인생 방향을 자기 입맛대로 수정하거나, 억지로 빨리 자신의 레벨로 올려놓으려고 무리수를 던지기도 하는데요. 그건 어쩌면 자식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지는 자식 학대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제일 심한 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식 태도입니다. 오죽하면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마치 사자성어처럼 쓰일 정도가 됐을까요? ‘내로남불’을 제대로 된 한자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아시타비(我是他非)’가 되겠지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니, 세상에 이런 오만한 시각이 어디 있을까요.

자연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생물과 생물, 자연환경과 생물, 인간과 다른 생물, 이 모든 게 그물처럼 촘촘하게 연결돼서 지구의 커다란 자연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 중 어느 하나에 구멍이 뚫리면 결국 전체가 그 영향을 받게 되니까요. 마치 뜨개질할 때 코가 한 개 빠지면 올이 계속 풀리게 되는 것처럼요.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나’, ‘저런 너’, ‘이런 우리’, ‘저런 우리’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데, 나나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틀리다’고 여기면, 함께 살기가 힘들어지지요. 그리고 그렇게 나나 우리만 옳다고 생각하는 집단은 처음엔 좋았을지 몰라도 고여있는 물이 되어버려서 발전할 수 없습니다. ’발전의 시너지‘는 서로 달라도 대척하지 않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이해하고 양보하고 협력할 때 나오게 되잖아요.

꽃들은 떨어질 것을 미리 염려하거나 추운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꽃이 떨어질 것을 염려하면 꽃을 피울 수 없고, 봄에 꽃을 피워낼 수 있는 건, 추운 겨울을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미리 사서 걱정하거나 역경을 두려워하지 말고, 올해도 아름다운 봄을 맞이할 수 있음에 무엇보다도 먼저 감사해야겠어요. 그리고 이 찬란한 봄에 남과 비교하면서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말고, 또 절망이나 좌절도 하지 말고, 또 나 혼자 잘났다고 뽐내지도 말고. 봄꽃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소박한 가르침대로 각각 자신만의 아름다운 꽃을 잘 피워내면서 멋진 조화를 이뤄내면서 행복을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이 봄에 꽃구경하시면서 꽃들의 아름다운 겉모습만 보지 마시고 꽃들이 하는 말에 마음의 귀를 기울여 들어보시지요.

-KBS 3 라디오 '출발멋진인생 이지연입니다' 방송작가 권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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