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5.18 13:46 | 수정 : 2022.05.18 13:49

<중년을 넘어선 그대에게 띄우는 안부편지>

20. 건강한 노후

지금 장년 이상 되신 분들은 청소년기에 어이없게도 아프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보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가령 운동장에서 뙤약볕을 받으며 조회를 선 기억들이 있으실 텐데요. 교장선생님 훈화가 ‘에, 끝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하면서 길어질 때, ‘아 나도 몸이 좀 약해서 조회 안 서고 교실에 있으면 좋겠다’, 또는 심지어 ‘아 픽 쓰러져서 양호실에 가서 누워 있으면 좋겠다’ 혹시 철없게도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으셨나요?

또 ‘에릭 시걸’의 ‘러브 스토리’라는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남자 주인공 ‘올리버’와 여자 주인공 ‘제니’의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에 푹 빠져서 ‘아, 나도 불치병에 걸리면 어떨까’ 이런 상상을 해보지 않으셨나요?

그런데 지금은 지나온 시절을 돌쇠처럼 튼튼하게 버텨준 내 몸이 참 고맙고, 대견하고, 앞으로도 그러길 부탁하게 되지요.

사실 살면서 큰 병 없이 사는 것만큼 큰 축복이 어디 있나요. 나이 들수록 중요한 건, 그 무엇도 아닌 건강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노후를 위해 젊어서부터 연금을 준비하듯이, 건강도 청년, 중년일 때부터 관리가 필요하다고 하는 건데요. 어디 그게 말처럼 쉽나요?

아마 몸이 안 좋아도 꾹꾹 참고 살다가 미루고 미루다 병원에 가서, 암을 비롯한 어떤 특정 질환의 병명을 들은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그런 분들은 대부분 크게 놀라면서 이런 반응을 보인다고 하지요.

“아니,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사실 그토록 자신의 몸 상태에 무관심했다는 게 더 놀라운 일이 아닐까요?

아시다시피 병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닙니다. 내 면역세포가 이겨내려고 애쓰고 애쓰다가, 또 내 몸이 견디고 견디다 못해 결국 걸리게 되는 게 그런 질환이거든요. 그러니 그 오랜 기간 내 몸을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고 방치한 나의 무관심부터 탓해야 할 겁니다.

물론 나이 들면 조금씩 아프게 마련입니다. 심각한 질환이 문제라는 거지, 여기저기 조금씩 아픈 건 당연한 현상이라는 얘깁니다.

중국 원나라 말기부터 명나라 초기까지 살다 간 묘협 스님의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데요. 그중 첫 번째 가르침도 바로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하셨느니라.’입니다.

실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건강을 잃기 전까지는 과도한 욕심으로 돈과 명예 등에 집착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병고를 좋은 수행의 방편으로 삼으라는 건데요. 결국 욕심을 버리라는 가르침입니다.

나이 들면 욕심이 아무 소용없습니다. 나이 들면 외모, 학력, 재물 등 모든 게 평준화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잖아요. 나이 들어 가장 중요한 건, 그야말로 죽기 전까지 내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고, 내 발로 화장실에 걸어가서 대소변을 볼 수 있는 건강과 능력입니다. 이건 노년기에 바라는 최소한의 기대치가 아니라, 실은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슈퍼 노인의 본질입니다.

‘어머, 난 벌써 몸이 여기저기 삐걱거려’, 아니면 ‘난 벌써 만성질환 약 먹는 게 몇 개 돼’ 하시는 분들도 앞으로 더 나이 들 미래를 위해, 한 살이라도 젊은 지금부터라도 건강한 노후를 위한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전문의들은 특히 청력, 시력, 치아, 무릎관절 등을 평소에 잘 아끼고 관리해야 한다고 하고, 근육을 잘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요. 이걸 한 마디로 쉽게 하면, ‘잘 먹고, 잘 배변하고, 잘 자고, 잘 움직이고’가 되겠지요.

나이 들어 툭하면 하는 말, ‘입맛 없어서’ 또는 ‘밥맛 없어서 식사 못한다’는 말은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입맛이 없으면 입맛이 나도록 운동을 하고, 밥맛이 없으면 밥맛이 나도록 요리 방법에도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결국 ‘잘 먹고, 잘 배변하고, 잘 자고, 잘 움직이고’ 이 네 가지는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이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네 가지 만큼 중요한 것으로, 걱정과 욕심 같은 불편한 마음은 이제 제발 부디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한 번에 내려놓아지지 않으면 매일 조금씩이라도 내려놓는 연습을 해서 마음을 편히 갖는 노력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 큰 병 없이 늙어가면서, 죽는 날까지 내 손으로 밥 먹고, 내 발로 화장실에 걸어가서 배변할 수 있는 멋있는 슈퍼 노인이 될 수 있습니다.

-KBS 3 라디오 '출발멋진인생 이지연입니다' 방송작가 권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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