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6.24 10:20

꿀벌을 만났다. 숲에 들어가거나 아파트 꽃밭이 아닌 우연한 만남이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운명이었어”

노래 ‘만남’처럼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운명이 아니라 숙명이었나 보다. 목숨을 가진 동물이나 식물이라면 자연의 이치에 따라 반드시 가야 하는 길! 각자의 길에서, 자연의 궤도에서 따로따로 살다가 꼭 만나야 하는, 그런 숙명 같은 거 말이다.

아침마다 아파트 옥상에 올라 상자 텃밭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다음 거르지 않고 하는 일이, 아파트 옥상에서 걷기다. 아파트 뒤쪽 현관에서 5분만 나서면 둘레길이지만 아파트 옥상에서 걷기를 즐긴다. 입은 옷 그대로 아파트 옥상에 올라 상자 텃밭 식구들을 돌보다 ‘아~~ 여기서 걸어도 되겠네?’ 하고 시작한 걷기가 습관화되어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쑥쑥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호박 앞에 쭈그려 앉았다가,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하는 강낭콩 앞에 앉았다가 눈에 뜨이는 잡초 몇 개 뽑고 일어섰다.

습관대로 아파트 옥상 위를 걷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두 바퀴.... 걷다가 무심코 바라본 옥상 바닥에 안 보이던 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보통 같으면  푸르른 오월의 숲을, 그 길을 시끌벅적 걷는 사람을 내려다보며 걷느라 옥상 바닥 볼일은 없었을 것이다. 혹여 옥상 바닥을 내려다봤어도 십중팔구 그냥 지나쳤겠지만, 오늘은 왠지 옥상 바닥을 바라보게 보았고 그 검은 점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가 보니 이런, 이런 꿀벌이었다. 왜 예쁘고 고운 꽃 위도 아니고 옥상 바닥에 앉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무서웠다. 혹여나 쏘일까 봐 무서웠다. 둥그렇게 포물선을 그리며 돌아 걸어서 갔다 왔더니, 아직도 이 꿀벌 녀석이 그 자리에 엎드려 있다. 문득 요즘 뉴스에서 본 꿀벌 실종 사건이 떠 올라 손에 잡고 있던 등산스틱으로 슬쩍 건드려 보았다.

사진제공=조규옥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어라~~ 움직이네!”
“야~~ 너 살아있었구나!”
“그럼, 너 여기서 이렇게 엎드려 있으면 안 돼!”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죽어! 죽는다고! 집으로 가야지!”
“날아, 날아가! 기운 내서 훨훨~~ 날아가!”

그렇게 반은 타이르고, 반은 협박하고. 다시 한 바퀴 돌고 돌아왔더니 꿀벌은 아직도 그 자리에 엎드려 있다. 아무래도 아까 등산스틱으로 슬쩍 건드렸을 때 버둥거린 게 아직은 살려고 발버둥 친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감하다. 살며시 등산스틱으로 다시 한번, ‘툭’하고 건드렸다. 꿀벌은 버둥대다 그만 뒤집어졌다. 뒤집어진 꿀벌이 배를 드러내고 가시 같은 발 여섯을 힘겹게 허공에다 허우적거린다. 살기 위한 발버둥이겠지만 힘 하나 없는 발버둥이다. 아무래도 들숨과 날숨으로 살아가던 삶이, 이미 저물어 가는 해가 되어 서산에 걸린 모양이다.

괜히 건드렸다 싶어 뒤집어진 꿀벌에게 민망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여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갑자기 가슴 밑바닥부터 먹먹해져 온다. 이 꿀벌이 어린 녀석인지, 나이가 들은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어쩌면 요즘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꿀벌 실종 사건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간에게도 코로나19라는 유행병이 지구 전체에 덮쳐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기도 하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일이 꿀벌에게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허리며 무릎이며 하나, 둘 아픈 데가 늘어나는 나다. 살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워지는 나이다. 어쩌면 이 꿀벌도 어린 꿀벌이기보다는, 유행병에 희생되기보다는, 나이가 들면 자연히 찾아오는 자연사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내 맘이 조금은 편하자고 내가 내린 결론이, 꼭 나인 것만 같아서 꿀벌 앞에 주저앉았다. 겪어보진 않았지만, 삶을 마감한다는 것! 정말 허전하고 외로운 일일 것이다. 그 누구도 손 내밀어 도와줄 수 없는데 곁에 아무도 없기까지 한다면 그 얼마나 슬픈 일인가! 꿀벌을 바라보며 이런 오만가지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 간다.

꿀벌이 마지막 가는 길이 하필이면 왜 내 아파트 옥상인가? 하필 왜 내 눈에 들어왔는가? 그 깊고 오묘한 것까지는 알 수는 없다. 물론 꿀벌이 작정하고 이곳에 나를 찾아오진 않았을 것이다. 우연히 날다가 날개 힘이 빠지고 이 아파트 옥상에 불시착한 것임을 모르지는 않다. 그런 이곳에 우연한 내 발걸음이 있었고 보통이면 스쳐버렸을 내 눈길이 꿀벌에게 닿은 것임은 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허공에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친 탓일까? 아님, 누군가 곁에 있어 주어 힘이 난 탓일까? 꿀벌은 작은 몸을 뒤집어 다시 옥상 바닥에 엎드렸다.

내가 못 봤으면 모를까? 내가 본 이상, 꿀벌이 허전하고 외롭게 뜨거운 아파트 옥상에 엎드려 삶을 마감하게 버려둘 수는 없었다. 살며시 꿀벌에게 등산스틱을 내밀었다.

“자~~ 힘내!”
“여기서 죽으면 안 돼!”
“이 등산스틱에 올라 와!.”
“내가 좋은 곳에 데려다줄게!”
“영차! 영차! 그렇지! 그렇게 올라와”
“꽉, 붙들어! 이제 저쪽, 예쁜 꽃에게 데려다줄게!”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꿀벌은 여섯 개의 작은 발을 힘겹게 움직이며 등산스틱 발 위에 올라앉았다. 혹여나 예닐곱 걸음 거리에 있는 돌나물에게 가는 동안, 꿀벌이 떨어질세라 발소리까지 죽이며 살금살금 걸어갔다. 꿀벌을 데려간 곳에는 돌나물 노란 꽃이 화사하게 피어있었다. 누군가 텃밭 놀이를 하다가 그만둔 곳이다. 그곳에 둘나물들이 어느 틈에 들어서서 별을 빼닮은 돌나물 꽃이 눈부시게 피어있었다. 조심조심 그 노란 돌나물 꽃에 등산스틱을 갔다 댔더니 꿀벌이 신통하게도 천천히 그 돌나물 꽃잎에 내려앉았다.

“꿀벌아! 그동안 사느라고 고생 많았다.”
“오늘 밤, 밤하늘에서 노란 별들이 총총 뜨고 바람이 불 거야!”
“이 꽃들도 밤마다 노란 별들을 만나 노랗게 꽃 피웠거든!”
“힘들다고 잠들지 말고, 기다려야 해!”
“노란 별들이 뜨고 바람 불거든 하늘로 올라가! 알았지?”

구름 한 점 없는 도심의 밤하늘에도 뜨문뜨문 별들이 떴다. 어두운 거실 창밖에 바람이 불었다.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바람이 꿀벌을 이 땅에서 먼 저 밤하늘까지 가는 길을 만들 것이다. 밤이 깊으면 별은 더 많이 나타날 거다. 그럼, 오늘 밤에 꿀벌은 틀림없이 무거운 육신의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가벼운 영혼으로 바람의 길을 따라가리라 믿는다. 밤하늘에서 별들은 손에 손잡고 찰랑찰랑 꿀벌을 맞으리라 믿는다. 어차피, 사람이나 꿀벌이나, 한 세상 고달프게 살다가는 길. 그 길 끝은 벌 같은 미물(微物)들이나, 사람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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