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7.13 15:55 | 수정 : 2022.07.14 10:06

<중년을 넘어선 그대에게 띄우는 안부편지>

26. 갈비뼈가 으스러지게 안아주세요

우리나라 고유의 인사 방식은 ‘절’이지요. 예전에는 인사할 때 ‘절’을 했습니다. 특히 어르신들께 인사드릴 때는 당연히 ‘절’을 올려야 했습니다. 

이산가족이 만날 때도 소원 풀었다며 반갑고 기뻐서 부둥켜안고 손을 잡고 울다가도, 문득 생각난 듯이
“절 받으세요”
이러면, 부둥켜안고 있던 팔을 풀고 꼭 잡았던 손을 놓고선, 거리를 두고 ‘절’을 올렸습니다. 물론 어르신들도 절을 받으실 때는 ‘맞절’로 예의를 차리셨습니다.

군에 갔던 아들이 제대해서 왔을 때도 그랬습니다.
“어머니!”
하는 아들의 목소리에 댓돌에서 신발을 챙겨 신을 새도 없이 그냥 안방에서 마당까지 버선발로 달려 나가, 아들을 붙잡고 끌어안아 마루에 오르고 나면, 아들은 의젓해진 모습으로
“어머니 절 받으세요.”
라고 하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떨어져 앉아 ‘절’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절’을 올리고 절은 받는 것은, 반가움과 기쁨에 빠져있던 감정에서 헤어 나와 인사라는 예의를 갖추는 순간인 거지요.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교적 전통에 따라 ‘감정 표현’보다 ‘예의 지키기’를 더 중히 여겼던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아니, 반가우면 반가운 감정 그대로 그냥 끌어안고 쓰다듬고 손잡고 그러고 있을 일이지, 갑자기 떨어 앉아 왜 ‘절’을 하는 것일까?’

우리 조상들은 신체 접촉을 할 수 있는 가까운 사이여도, 또 그런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키신 거지요. 감정을 감정으로만 나누지 않고 예의로 마무리한 지혜라고나 할까요? 실제 현대인들은 가깝다는 이유로 서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받고 있나요?

그런데 요즘은 인사할 때 절하는 분들은 거의 없지요. 웬만하면 목례와 악수를 하고, 좀 더 친근감을 표현할 때는 포옹을 더하는데요. 70년대까지만 해도 악수가 서양식 인사법, 신식 인사법으로 불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처럼 악수가 당연한 인사법이 되기까지는 그래도 꽤 오랜 세월이 걸린 셈이에요.

그러다 코로나 이후 가까운 사이에서도 포옹 같은 신체 접촉형 인사방식을 꺼리게 되고, 악수도 주먹을 맞대는 ‘주먹 인사’나, 팔꿈치를 맞대는 ‘팔꿈치 인사’ 등으로 바뀌었는데요. 이렇게 인사를 하면 왠지 인사를 해도 제대로 인사한 기분이 안 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긴 이런 인사법은 ‘절’처럼 일부러 예의를 갖추기 위래 거리를 두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감염예방을 위해 신체 접촉을 최소화하는 인사법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요즘처럼 갑작스러운 변화가 잦은 불확실성의 시대에서는, 인사로서의 포옹보다 건강을 위해서 더욱 포옹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포옹은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등 건강에 아주 좋다고 해요. 포옹을 하면 몸에서 옥시토신 호르몬이 나오면서 기억력을 높이고, 스트레스와 불안, 혈압을 낮춰주고, 잠도 잘 오게 해서 면역력도 높여준다고 합니다. 또 포옹은 혈류를 촉진시켜 근육의 긴장을 풀어줘서 통증을 덜어주고 혈액 순환을 개선시킨다고 합니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포옹할 때는 이런 옥시토신 호르몬뿐 아니라, 소위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 도파민, 엔돌핀도 분비되면서 기쁨과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다고 하지요.

그래서 미국의 가족치료 전문가인 심리학자 ‘버지니아 사티어’는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서는 하루 4번, 그럭저럭 삶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하루 8번, 풍요로운 삶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루 12번의 포옹이 필요하다”라는 말도 했는데요. 사랑하는 사람이든, 가족이든, 심지어 반려견이나 반려묘든 꼭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정감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문득 서지오라는 가수가 2004년에 발표한 ‘하이하이하이’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특히 그 노래 후렴 가사가 재밌어서 기억하는데요. 이렇습니다.

♬ Hi Hi Hi 안아주세요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오늘 여태까지 포옹을 몇 번쯤 하셨나요? 갈비뼈가 으스러질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가볍게 안고 서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포옹은 좀 많이 하면 좋겠는데요. 혹시 여태까지 한 번도 포옹을 안 하신 분들은, 지금 당장 팔짱을 껴서 스스로라도 좀 꼭 껴안아 주세요.

KBS 3라디오 출발 멋진 인생 방송작가 권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