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7.20 10:28 | 수정 : 2022.07.20 10:35

<중년을 넘어선 그대에게 띄우는 안부편지>

27. 내 인생은 나의 것

엄마: 아들아. 어서 일어나서 학교 가야지.
아들: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요. 
엄마: 그러지 말고 어서 일어나.
아들: 엄마 정말 학교 가기 싫어요. 아이들도 싫어하지만 선생님들도 다 저를 싫어한다고요. 
엄마: 그래도 가야 한다.
아들: 아이 참, 왜 꼭 학교를 가야 하는데요?
엄마: 넌 지금 50살이고, 학교 교장이잖니.

이 유머의 웃음 포인트는 바로 나이 든 교장 선생님도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가기 싫어한다는 거지요.

학창 시절에 부모님께 아침에 깨워달라고 하신 분들 많으시죠. 저도 그랬는데요. 그때는 ‘나는 자명종을 맞춰 놓고 자도 못 일어나는데, 부모님은 어쩜 그렇게 잘 일어나서 날 깨워주실까? 어른이 되면 아침에 힘들지 않게 일어날 수 있나?’ 그런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정작 어른이 돼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일어나기 힘들고, 일어나기 싫어도, 자식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제시간에 일어나는 거였어요.

그럼 그런 책임감이 없어진 노년기에는 어떤가요? 

자유로워져서 좋으신가요, 아니면 그런 책임감이 없어지니까 본인의 생활도 느슨해져서 오히려 안 좋으신가요?

하지만 노년기에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내가 제시간에 자서 제시간에 일어나도록 하고, 식사도 제대로 영양소를 잘 챙겨서 하도록 하고, 운동도 빠뜨리지 않고 꾸준히 하도록 하면서, 건강을 지킬 수 있게 말이에요. 나에 대한 이런 책임감은 나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살다 보면 ‘오늘 뭐 먹을까’부터 시작해서, 챙겨야 하는 약이나, 외출하기 전 우산을 들고나갈지 그냥 나갈지 등등, 매일 내가 생각하고 선택하거나 판단할 게 참 많은데요. 그런 걸 귀찮아하거나 힘들다는 생각부터 하지 말고, 나를 위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생각하고 선택하거나 판단하면 좋겠어요.

물론 요즘은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인공지능이, 내가 생각하고 선택하거나 판단할 수고를 많이 덜어주지요. 가령 내 취향을 파악해서 ‘이런 게 어때요?’ 하고 제안해주기도 하고, 약 먹을 시간이라고 알려주고, 우산을 들고나가야 할지, 선크림을 챙겨야 할지도 꼼꼼하게 조언해줍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공지능에 의지하다 보면, 내가 생각하고 선택하거나 판단하는 능력이 점점 퇴화되는 것 같아요.

일단 휴대폰을 쓰고부터 지인들 전화번호, 심지어 자기 전화번호도 잘 외우지 못한다는 분들이 많아졌잖아요. 또 문자 보낼 때 내 감정 하나 제대로 글로 표현하기 어렵고 어색해서, 그냥 이모티콘으로 대신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매일 직접 내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간단하게 적어놓고, 하나씩 하면서 지워나가는 수고로운 방법으로, 나를 좀 불편하게 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또 남의 시선보다는 내 취향이나 내 느낌을 우선으로 하시길 권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보세요. 그야말로 남이 뭐라고 하건, 내가 좋으면 그만입니다. 옷차림만 해도 한 여름에 긴 부츠를 꺼내 신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있던데요. 아마 지금 장노년 되시는 분들은 어려서부터 남의 이목에 신경을 쓰고 살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살아서 그런지, 지금도 내 취향이나 내 느낌보다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시지요.

‘함께 사는 세상에서 어떻게 나만 생각하느냐?’ 할 수도 있지만, 함께 사는 세상에서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과, 남의 시선을 먼저 의식하고 사는 건 완전히 다릅니다. 그건 생활의 중심에 내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니까요.

더욱이 나이 들어 자존감은 낮아지는데 자존심만 강해지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참 힘들어지게 됩니다. 나 자신을 좋아하고 아낄 줄 알아야 남도 그렇게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나 자신을 좀 잘 살펴봐주세요.

마음에 여유도 가지시길 바랍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것도 아름답다고 느끼질 못하잖아요. 이 세상을 아름답게 느끼면서 살아가려면 내 마음에 여유부터 챙기셔야 해요.

노년기의 행복을 위해 더 늦기 전에 다른 누가 아닌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돼서, 내가 기뻐하는 삶을 펼쳐나가려고 하시면 좋겠습니다.

KBS 3라디오 출발 멋진 인생 방송작가 권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