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나이 들수록 더욱 당당해지기
흔히 아이들 눈이 정확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제가 어렸을 때 선생님이
‘할머니를 그려 보세요’
하면 아이들은 일단 얼굴을 그려놓고 이마에 줄 두세 개 그은 다음, 머리 모양은 동그랗게 쪽을 지게 해서 비녀를 꽂은 모양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서서 걸어가는 모습이 아니라, 허리를 기역자로 구부리고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러다가 8,90년대 들어서는, 그 모습이 뽀글뽀글 라면 같은 파마머리에 고무줄 바지를 입고 머리에 짐을 이고 걸어가는 모습으로 바뀌었죠.
그렇다면 요즘 아이들더러 ‘할머니를 그려보세요’ 하면 어떻게 그릴까요? 아마 멋진 선글라스에 머리 모양도 다양하고, 옷도 2,30대처럼 보이는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 그리고 활기차게 자신의 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그리지 않을까 싶어요.
실제로 어떤 여자 아이는 자기와 엄마, 할머니 세 명을 나란히 그렸는데, 마치 세 명 모두 자매처럼 그렸답니다. 이렇게 노년의 모습이 세월 따라 달라지고 있는데요. 앞으로 노년을 보내는 나의 모습은 어떠하길 기대하시고, 또 어떻게 그려나가고 계신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노인들을 예전의 꼬부랑 할머니, 꼬부랑 할아버지의 차원으로 보면서 연령차별을 드러낼 때가 많습니다. 흔히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실제 생활하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지요.
전 그래도 미국은 좀 낫지 않을까 했는데, 미시간 대학이 50세에서 80세의 미국 성인 2천 명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약 80%의 노인이 내면화된 형태의 연령차별을 느꼈고, 93%의 노인이 매일 어떤 형태로든 연령차별을 받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3분의 2 가량이 정기적으로 노인에 대한 농담을 듣거나 ‘나이 든 사람은 매력적이지 않다’, ‘노인은 바람직하지 않다’ 등의 언어적 차별을 경험하고 있고요, 또 절반 가량은 개인적 상호작용에서 정기적으로 연령차별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노인이니까 못하겠지, 노인이니까 모르겠지, 이런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그런 연령차별을 하게 되는 건데요. 아마 젊은 사람들도 늙어봐야 그런 게 편견이고 선입견이라는 걸 알 수 있겠지요. 그래서 노년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그런데 우리 자신도 그런 편견과 선입견에 세뇌당해서, 스스로 나이 든 자신을 한정 지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툭하면 푸념처럼 쉽게 하는 이런 말이 대표적인 경우지요.
‘아이고 몸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네.’
이런 식으로 매사에 나이를 의식하는 말을 하는 분들은 그 원인을 잘 살펴보셔야 합니다. 젊어서부터 열심히 운동을 해오신 분들은 나이 들어서도 신체가 삐걱대지 않고, 여전히 건강하시잖아요. 그러니까 몸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는 푸념보다, 그동안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반성부터 하는 게 순서가 되겠습니다.
특히 우리 뇌는 그런 나이에 대한 푸념을 참 싫어한다고 하네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 심리학과 연구팀의 연구결과, 자신의 나이와 기억력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노인일수록, 실제 기억력도 빠르게 나빠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좀 더 잘 나이 들어갈 수 있고요, 나이 들어가는 자신에 대해서도 좀 더 당당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 들어가도, 또 나이 들수록 당당한 시니어들이 이 사회에 많아질수록, 노인을 대하는 사회 분위기도 변화되리라 생각합니다.
KBS 3라디오 출발 멋진 인생 방송작가 권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