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자존심 상하지 말고 자존감을 세워요
나이 들면서 화가 많아진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남자분들 중에 그런 분들이 많지요. 얼굴에서부터 ‘나 화났어!’가 잔뜩 드러나 있습니다. 가뜩이나 나이 들면 아무리 좋은 크림을 발라도 자꾸 주름이 지는데, 일부러 ‘나 건드리지마!’하는 식으로 잔뜩 인상을 구기고 다닙니다.
노인일자리지원센터에서 일하시는 분이 그러더군요. 특히 노인일자리지원센터 등을 찾는 50+ 시니어들 중에는 화가 잔뜩 나있는 사람들이 많다고요.
왜 그리 화가 나 있을까요?
원치 않게 일찍 직장에서 나와, 다시 일자리를 찾게 된 세상에 화가 난 걸까요?
하긴 평균수명이 길지 않던 예전에는 50대 정년퇴직이 당연했지만, 평균수명이 길어진 요즘은 노후준비가 제대로 돼있지 않은 분들이 많아서 생활비 마련 때문에 70대에도 일하는 분들이 많다고 하지요.
그런데 전 스스로에게 화가 난 거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콕 집어서 말하면, 자신의 자존심이 상처를 받았다고 여기기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닌가 싶어요.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도 모르고 그냥 세월을 보낸 데에 대한 자책이라고나 할까요?
우선 ‘세상의 변화를 좀 잘 파악하고 예측해서, 정년퇴직하기 전에 미리미리 노후 준비를 잘해 놨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로 마음이 많이 상했을 테고요, 자의건 타의건 어찌 됐건 퇴직 후에도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테지요.
그런데 아직도 그런 자존심에 휘둘리신다면, 나이로는 세상을 많이 사셨다 해도, 좀 더 성숙해질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는 오히려 나 자신의 상태를 솔직히 인정하고 분석하는 태도가 훨씬 도움이 됩니다.
‘아 내가 노후준비를 잘하지 못했구나. 그러니 지금이라도 노년기를 위해 일을 해야겠다. 지금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내가 지금에라도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이렇게요. 그러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의 방향이 서게 됩니다. 지금에라도 어디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또 앞으로 내 생각과 태도를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 나를 추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실천으로 옮기다 보면, 현재의 자신에 대해 신뢰가 싹트면서 자신감이 생기게 되지요.
흔히 자존감, 자신감, 자존심을 헷갈리기 쉬운데, 이 세 가지는 글자만 좀 비슷하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나이 들어 화가 많이 나 있는 분들이 상처를 입었다는 자신감부터 살펴볼까요?
자존심은 남에게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기보다는 남에게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이어서, 남이 우선인 마음인 거지요.
자존감은 자아존중감을 말하는 건데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남이 존중해주지 않아도 자존감이 있는 분들은 자존심이 상하지 않습니다. 가령 어떤 지적을 받아도 내가 옳고 그름을 따져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겁니다. 자존심은 기준이 남에 있다면, 자존감은 기준이 나에 있는 거지요.
자신감은 내가 가진 능력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입니다. 그러니 자존감이 높은 분들은 자신감도 높습니다. 반대로 자존감의 바탕 없이 자신감만 높은 분들은 자존심만 센 분과 똑같이 상처를 받기 쉽습니다. 나이 들수록 자기 생각이 아집이 되고, 자기 경험이 세상과 인간을 판단하는 선입견으로 작용하기 쉬운데, 이렇게 되면 자신감과 자존심만 세어진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나이 들수록 내 경험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배움도 중요하다고 여기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 살아야, 자존감이 충만해져서 자존심 상할 일도 없고, 자신감이 저절로 차오르게 됩니다.
한마디로 자존감은 타인이 세워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세우는 거니까, 스스로 자존감을 좀 높여보시기 바랍니다.
KBS 3라디오 출발 멋진 인생 방송작가 권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