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물어보고 싶어요. 당신들은 매운 고추를 좋아하나요. 좋아하면 어떻게 먹나요. 땡고추라는 고추를 먹으면 혀가 아릴 정도의 맛이라는데 저는 일반 고추의 맵기 정도가 그 정도라 생각해요. 남들은 그런 매운 고추를 된장찌개나 부추전에 썰어 넣으면 알싸한 맛이 제격이라는데 저는 혀가 아려 후후 대면서 물 한 컵을 다 먹어야 해요. 하다 못해 꽈리고추도 어떤 경우엔 매워서 다 버려야 할 경우도 있어요.
오늘이 그랬어요. 아파트 옥상 텃밭에 심어놓은 꽈리고추가 매일매일이 30도가 훌쩍 넘는 날씨에 아기 손가락만 하게 자라더니 독기만 가득 품어 땡고추 매운 것은 저리 가라예요. 왜 아니 그렇겠어요. 말이 30도가 연일 넘는다지만 그늘 한 뼘 없는 아파트 옥상이야 40도가 훌쩍 넘을 거예요, 어쩌다 한낮에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면 훅 끼치는 열기에 숨이 막히니 꽈리고추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독기만 가득 서렸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그 뜨거운 사막 같은 곳에서 살아남지 못했겠지요.
올해는 상자 텃밭이라도 농사가 잘됐어요. 오이 고추도 일반 고추도 가지가 찢어 저라 달리더라고요. 가지도 마찬가지예요. 3그루 심은 가지가 얼마나 잘 자라는지 아들네와 두 집에서 나누어 먹어도 미쳐 먹지 못할 만큼 달렸지요. 방울토마토는 또 어떻고요. 엄마나 달렸는지 내 생애 그렇게 많이 달린 방울토마토는 보지 못했어요. 친구들에게 사진 찍어 보냈더니
“얘, 그 토마토는 샤인 머스켓 같네.”
“무슨 방울토마토 송이가 포도처럼 그렇게 열리냐.?”
“너 농사꾼 다 됐네. 축하! 축하!”
했지요. 지금 이야기하는 꽈리고추도 3그루 심었는데 아들네와 나누어 먹어도 넘쳐서 주변 지인들을 불러 나눔도 했지요.
문제는 아들네나 우리나 매운 것에 적응이 안 돼 있어요. 매운 걸 먹으면 물부터 찾는데 8월의 강한 햇살 탓에 크게 자라지도 않은 매운 고추로 변한 꽈리고추를 두고 고민에 빠졌어요. ‘저걸 어쩌지?’ ‘따서 반찬으로 해봐야 아무도 먹지 않을 텐데....’ ‘장아찌를 만들까?’ ‘그래도 매운맛이 어디 가겠어?’ “아무도 안 먹을 텐데 괜히 수고롭기만 하잖아.‘ 혼잣말로 내게 주고받고 했어도 답이 없었어요. 일단 따기는 해야 했어요. 고민은 그 후에 하기로 했던 것이지요.
그날, 밤이 이슥해서야 꽈리고추 생각이 났어요. 냉동시킬까 하다가 문제 있을 때마다 물어보던 만능 해결사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로 했어요. 땡고추 조림이라는 게 눈에 들어왔어요. ’ 땡고추를 조림으로 먹는다고?‘ ’ 그 매운 걸?‘ 어찌 됐든 말미에 적혀있는 매운맛이 사라진다는 말에 끌렸어요. 한밤중 꽈리고추 조림을 시작했어요. 밤중에 음식 만드는 건 익숙해서 별거 아니거든요. 오랜 직장 생활하는 동안 퇴근해 와서 늘 한밤중에 음식 만들었으니 몸에 배어 있어요.
글쓴이의 친구 시어머니가 하던 것을 며느리가 배웠고 글쓴이는 그 며느리 친구란다. 어쩌다 방문한 그 친구 집에서 이 땡고추 볶음을 삼겹살에 얹어 먹으니 삼겹살의 느끼한 기름 맛이 사라지고 깔끔하고 개운한 끝 맛에 반했단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글쓴이 입에서도 그다지 맵지 않더라는 거다. 글쓴이도 된장찌개에 들어 있는 고추가 매워 건져내고 먹는다는데 땡고추 볶음이 맵지 않더라는 거다. 그러니 찌개에 들어 있는 고추도 골라내는 같은 습성을 가진 나로서는 ’ 혹‘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후다닥. 매운 고추 잘게 다지고, 양파와 마늘도 다지고, 멸치를 살짝 볶아 비린내를 날려 버리고 간 멸치 가루와, 다진 고추, 양파, 마늘을 넣고 액젓과 진간장. 그리고 들기름을 넣는다. 여기에 물을 약간 넣어 약한 불에서 자작하도록 푹 끓여주면 끝이란다. 이럴 땐 정말 난감해요. 땡고추 볶음 재료 말미에 그냥 ’ 비율은 적당히‘라 되어 있으니.... 혹시 다른 사람들이 올려놓은 게 있을까 해서 만능 해결사 인터넷을 열어 찾아보아도 없네요. ’ 어쩐다?‘ 고민하다가 그냥 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한국 음식이라는 게 적당히 이것저것 섞어 맛을 내는 것이니 말이에요.
그 후엔 일사천리로 매운 고추 볶음에 들어갔어요. 8월의 따가운 햇살에 독기가 잔뜩 오른 꽈리고추 배를 갈라 씨를 털어내고 대충 썰었어요. 조금이라도 덜 맵게 할 요량이었지요. 다음엔 고추 양에 비례해서 양파도 대충, 마늘도 대충 썰었어요. 먼저 볶아놓은 멸치를 믹서기에 넣고 고추와 양파, 그리고 마늘을 믹서기에 넣고 다졌어요, 제가 쓰고 있는 믹서기가 반자동이라 엄지손가락으로 슬쩍슬쩍 눌러주면 제가 원하는 크기만큼 갈리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요, 불 위에 올려놓고 뭉근히 오래 끓였어요. 형체가 사라지면 안 될 만큼 적당히 끓였지요.
끓이는 동안 숟가락으로 조금 떠서 계속 맛을 봤지요. 정말 매운맛이 사라질까? 그게 제일 궁금했지요. 처음 떠먹어 봤을 때는 처음엔 매운맛이 아주 강했어요. 그러다 차츰 매운맛이 줄어들더라고요. 맛있었냐고요? 물론이에요. 매운맛도 차츰 누그러졌어요. 아니 정확히 맛을 말하자면 요즘 맛을 표현하는 유행어 중에 맵. 단. 짠.이라는 말이 있지요. 딱 그 맛이에요. 아니, 아니, 거기에 고소한 맛이 첨가됐지요. 그리고 순서를 바꾸어야겠어요. 단. 짠. 고. 맵으로....
안 매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매웠어요. 안 매운 줄 알고 달콤하고 짜고 고소한 맛 뒤에 매운맛이 찾아들더라고요. 매운맛이 들기름과 멸치가루와 양파의 단맛을 품어 앞에 놓고 자신의 매운맛은 뒤로 돌렸더라고요. 그러면서 독기 품었던 매운맛이 한결 순해졌고요. 그러니 원래의 매운맛이 깔끔하고 개운한 매운맛으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매운데도 입맛을 당기는 그런 맛이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물의 양이 너무 많아요. 질척거리는데 더 끓였다간 고추고 양파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은데 이건 아니다 싶어 별수 없이 파는 쌈장을 사다가 쌈장을 만들었어요. 별미 쌈장이 탄생했어요. 고소하고 개운하고 깔끔한 쌈장이.......
올해는 오이고추 4그루, 일반고추 2그루, 꽈리고추 3그루를 심었어요. 오이고추가 많은 것은, 매운 고추를 싫어하는 맛이지요. 오이고추가 푸를 때 따 먹는 게 아니라 붉게 익었을 때 따서 음식 만들 때 사용했어요. 오이고추도 익으면 약간의 매운맛을 가지고 있지요. 우리 집에서는 딱 그 수준의 매운맛을 원했거든요. 이제는 땡고추 볶음 요리를 배웠으니 걱정이 없어요. 아무리 8월의 태양이 강렬해 고추마다 독기 가득 품은 매운맛을 가진다 해도 그 매운 고추를 볶음으로 해 먹으면 되니..... 그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엣 어른들 말씀이 오늘도 진리로 자리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