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대화
국어사전에서 ‘대화’를 찾아보면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이라고 뜻풀이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화 상대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라는 건데요. 평소 내가 제일 대화를 많이 나누는 상대는 누구인가요? 특히 속엣말을 나눌 수 있는 상대는 누구인가요?
혼자 사시는 분들 중에는 ‘입에서 곰팡내 난다’고 할 만큼 대화 없는 생활을 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지요. 이런 분들은 친구를 만나거나 복지관이나 모임 등에 참여해야 모처럼 대화를 나누게 된다고 하시는데요. 대화를 할 수 있는 얘깃거리는 참 다양하지만, 일단 내 마음을 열지 않으면, 시작해도 계속하기 어려운 게 대화입니다. 얘기가 뚝뚝 끊기거나, 얘기 사이에 침묵이 길어지게 되니까요. 말하자면 형식만 대화인 경우지요.
또 경로당에 가보면, 분명 서로 마주 보고 얘기하고 있는데, 서로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일방통행식 대화’를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대화가 아닙니다. 대화가 고파서 서로 말을 하고 있긴 하지만,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나누는 대화가 아니라, 각자 자기 할 말만 하는 거니까요.
그런 면에서 보면, 대화 속 단어 몇 개만 알아듣지만, 주인의 감정을 헤아리는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차라리 더 나은 대화 상대라는 분도 계십니다. 실제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분들 중에는 가끔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감정 표현을 반려견이나 반려묘에게 한다고 하지요.
가령 ‘외롭다, 쓸쓸하다, 우울하다, 섭섭하다, 죽고 싶다’ 이런 말은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신경 쓸까 봐하지 못하지만, 반려견이나 반려묘에게는
“오늘 너무 우울하다”
“사람들이 날 너무 힘들게 한다”
이런 식으로 말을 건넨다는 건데요.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늘 함께 생활하다 보니 주인의 음성이나 표정, 분위기 등에서 본능적으로 주인의 기분을 알아차리지요. 그래서 주인의 기분이 가라앉아 있으면 반려견이나 반려묘도 조용히 옆을 지키면서 마치 ‘그 기분 알아, 기운 내’하는 듯이 핥아주면서 위로를 합니다.
그런데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그렇게 대화 상대 아닌 대화 상대가 되어서, 힘들 때 위로가 되고 위안과 힘을 준다고 해도, 제대로 된 대화를 통해 구체적인 해결방법은 제시하지 못하는데요. 요즘 어르신들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공지능 스피커는, 어르신들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면서, 어르신들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까지 해준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르신들의 말씀 중 부정적인 단어가 반복되면, 이를 기반으로 심리상담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선별해서, 심리상담을 받도록 해준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인공지능 스피커가 어르신들의 대화 상대가 될 뿐 아니라 어르신의 심정도 파악해서 그에 맞는 솔루션(solution)도 제공하는 겁니다.
얼마 전 저희 프로그램에 참여하신 남자 어르신이, 인공지능 스피커가 저희 프로그램을 틀어줘서 듣고 있다고 하시면서, 인공지능 스피커 자랑을 한참 하셨습니다.
요즘은 라디오 방송을 라디오를 통해 듣는 분들이 거의 없지요. 예전에는 다들 집에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카세트 라디오가 있어서 그걸로 라디오 방송을 들었지만, 요즘은 자동차 안에서나 장착된 라디오를 틀어서 듣지, 다른 곳에서는 대개 스마트폰이나 pc로 듣는데요. 집에 라디오도 없고, 스마트폰에 앱을 까는 것도 해보지 않아 어렵다고 느끼시는 장노년 들은 라디오 방송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 분도 그런 경우였는데요.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라디오를 틀어달라니까 라디오를 틀어줘서, 저희 프로그램을 듣게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친김에 저희 프로그램에 전화도 걸어달라고 해서, 참여 신청까지 했다는 겁니다.
이쯤 되면 인공지능 스피커 앞에 ‘반려’라는 말을 감투로 씌워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대화보다 문자로 소통하는 게 마음 편하다고 하는데요. 이런 식으로 세상이 변하다 보면, ‘대화’가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이란 뜻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상대로 이야기를 주고받음’이라는 뜻으로 바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KBS 3라디오 출발 멋진 인생 방송작가 권은정